보령의 흔적따라 185

제41편 ; 용연(龍淵)과 용(龍)둠벙

1. 들어가며 우스개 소리로 오서산 정상에 떨어진 빗물이 반쪽은 청소면으로 흘러들어 소면 국물이 되고, 반쪽은 청라면 쪽으로 흘러들어 라면 국물이 된다고 해서 청소면과 청라면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우화(愚話)도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전설이 되어 후대의 사람들에게 회자 될런지도 모르는 것이 민담이다. 과거에 청라나 청소나 보령현에 속해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서산의 큰 산으로 인해 험한 고개길을 넘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청라에서 광천장이나 홍성을 가기 위해서는 용둠벙에서 용연을 거쳐 지나야만 하였다. 용연(龍淵)과 용(龍)둠벙은 모두 용(龍)못이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 연(淵)은 못을 말하는 한자어이고, 둠벙은 '웅덩이'의 방언으로 많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 낱말이..

제39편 ; 청고을의 콜로라도 둔터...

1. 들어가며 고려말 김성우장군이 청양, 공주로 넘어가는 길목에 군영을 설치하고 청고을로 진입한 왜적들을 퇴치하는 마지막 보루를 설치하였다고 하여 이 마을의 지명이 둔(屯)터로 전해지고 있다. 화성으로 넘어가는 스므티고개 아래 우측동네로 고개마루에는 장군의 애마를 묻었다는 말바위가 또한 여기에 있다. 둔터를 못미쳐 우측 백월산 자락으로 여닐곱채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은 옛날에 사기를 굽던 가마가 있었다고 하여 점촌(店村), 즉 사기와 도기를 판매하던 점포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에서 추측해보면, 예전에 지금의 소양주유소 뒷편 산자락에 찰흙을 채취할 수 있었으며, 길 건너편 양계장 골짜기(지명;지장골)에는 자기의 파편들이 근래까지도 흔하게 눈에 띠었었으니 아마도 양계장 골짜기에 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