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물때에 따라 바다에서의 하루 일과가 정해진다.
농사꾼은 비가 오지 않는 한, 새벽에 일어나서 밭으로 나가 온 종일 일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지만, 어촌 사람들에게는 달과 태양이 지구에 미치는 기조력에 의한 조수간만의 물때를 보면서 일터인 바다로 나가게 된다.
보령지역의 갯벌은 보령방조제와 남포방조제의 축조로 한 없이 줄어들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령방조제의 특성으로 인하여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보령방조제는 보기 드물게 일직선이 아닌 'ㄱ'자형 방조제로 대천천의 물줄기를 따라 간석지와 대천시내를 감싸고 축조 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군두리 해안의 갯벌은 보령화력이 들어서기 전에는 해태양식의 천혜 없는 자연환경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천에서 생산 되는 김들의 모든 원료가 남해에서 올라오니 명색은 대천김인데 원자재는 대천산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렸고, 보령머드의 원산지였던 앞 바다의 머드가 오염에 의해 이제는 서천 등지에서 들여와 만들고 있으니 보령은 유명세만 세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해바다에서 밀려오는 해류가 풍부한 플랑크톤을 옮겨주고, 대천천으로 흘러 들어오는 민물이 각종 유기물질을 공급해줘야 갯벌이 살아 날 터인데 저수지와 대천천 고수부지가 영양공급에 저해를 가져오고, 시내에서 버려지는 오염 하수들 등으로 갯벌은 점차 황폐화 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아직은 자연 스스로의 자정능력이 발휘되고, 지역 어촌계와 지자체가 협심하여 종패를 뿌리고, 어장을 관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망산 앞쪽 바다에는 보령시민들과 체험학습을 오는 도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촌계에서는 종패를 뿌린 곳을 관리하느라 호루라기를 불며 일반인들이 범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다.
서해안과 남해안의 지역의 달력에는 물때가 기록되어 어민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준다.
대체로 서해안은 조수간만에 의한 해수면의 높이가 8m 정도로 높낮이가 달라지며, 이는 바닷물이 많이 빠질때에는 10km 정도 가량 바닷물이 빠져 나간다.
물때를 말할 때, 경기도와 충청 지방에서는'매', 충청과 전북지방에서는 '마', 전남과 제주지방에는 '물', 남해지방에서는 '무새'로 말하며, 동해안에서는 간만의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물때의 표현이 없다.
물때는 음력으로 1일과 16일의 간만의 차이가 가장 큰 날을 '일곱매'로 기준을 잡고, 일곱매~열매, 한객기, 대객기, 아침조금, 한조금, 무심, 한매~여섯매로 달의 인력으로 인한 보름간의 조석활동으로 표현을 하며 보통 '두~세매에서 물이 살아나고,열한매 열두매에서 물이 죽는다'고 표현을 한다. 갯벌일을 할때에는 주로 여섯매에서 열매쯤에 물이 멀리 나가기 때문에 일곱매 전후로 뻘에 나가 작업을 하게 된다.
해안도로를 따라 어항쪽으로 가다보면 물때를 맞춰 도로 한켠으로 차량들이 나래비를 선다.
해안 방파제를 따라 등대쪽으로 가다보면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로 지역주민들로 보통 물이 빠진 두세시간 동안 작업을 하면 적당량을 잡을 수가 있다.
물이 빠지고 갯벌이 열리면, 예전에 조석간만의 차로 물고기를 잡던 죽방렴의 한 형태인 그물을 설치하던 쇠기둥(철근)이 여럿 보이나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특히, 조개를 채취할 때 물이 들어오는 것을 수시로 확인을 하며 작업을 해야 하는데 조개를 채취하는데 정신을 팔아 매년 한두번의 수상사고가 일어나 아까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를 하여야 한다.
세척을 하고 간수에 하룻동안 해금을 시키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눠 먹거나 조금씩 국을 끓일 때 넣어 먹으면 별미이다. 봄철에 두 세번 바다에 나가 짠내음을 맡으며 채취의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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