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청고을을 흘러가는 하천을 살펴보면 두 줄기의 하천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오서산의 명대계곡에서 발원하여 각 골짜기에서 흘러 들어오는 지류들과 합류해 청천저수지로 흘러드는 황룡천이 있으며, 둘째로는 백월산과 성태산, 문봉산이 겹쳐지는 늦은목고개에서 발원을 하여 상중저수지에 모이고, 다시 익낭, 원모루, 수랑뜰을 적시며 새터를 지나 청천저수지로 유입이 되는 대천천이 있다.
대천천이 원모루를 지나 벼락바위(현재는 제방으로 설치됨)와 부딪치며 방향을 틀고 서쪽으로 오랜세월 동안 흐르면서 수랑뜰다리까지 흘러가면서 침식작용을 해 의평리와 나원리 대지의 고저차를 확연하게 만들어 놓았다.
성주산 지맥이 북쪽으로 벌판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대천천의 흐름이 평야지대를 두 군데로 나누어 놓았다고 볼 수 있겠다. 번덕지는 갬발의 샌동마을부터 지금의 청라중학교 부근까지의 평편한 대지를 통털어 지칭하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 벼락바위의 흔적을 찾으려 이곳을 방문하였었는데 우연한 일로 다시 이곳을 찾았다.
전에는 좁은 농로에 차를 주차할 수 없어 금방 나와야 했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주차시키고 개울건너 번덕지까지 올라가 두루두루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윗갬발로 다니던 징검다리는 샌동 골짜기에 외지인이 농장을 차려놓고 밭을 일구면서 돌과 판자로 간이다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간이창고 옆 울타리를 넘어서자 오십년 전에 다니던 언덕길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어 지금이라도 고개 위에서 청고을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굵은 소나무와 잡풀들이 오십년전 그 때의 그 모습과 한 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고개마루를 올라서니 고향 마을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갬방저수지 제방과 벌판, 그리고 어려서 매번 봐왔던 소나무 한그루...
갑지기 그곳에서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외사촌 동생을 따라 집과는 반대 방향인 안골동네로 놀러가면 그곳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 한참을 동무들과 놀다 외갓집에 들어서면 외할머니와 외숙모는 절구통에 찐 찹쌀을 절구질하여 인절미를 만들어 내 놓으셨다. 외사촌들 몰래 집 뒤에 심어 놓은 큼직한 배도 가방속에 담아주셨다. 어둑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따리를 챙겨 주시면서 마중을 나오시는데 안골동네 입구에서부터 청라까지, 그리고도 못 미더워서인지 번덕지 이 소나무까지 바래다 주셨다. 달빛에 논길이 빛나서 집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이 나무 아래서 외할머니는 서 계셨던 기억이 흑백 활동사진처럼 지나간다.
아버지와 엄니는 신혼생활을 이 번덕지에서 움막을 짓고 하셨다. 그 흔적이 소나무 사이로 보였다.
나 또한 이곳에서 태어났으니 내가 만약 유명 인물이 되었다면 생가터라고 잘 보전하였을려나 하고 헛된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지금까지 인생을 헛되게는 살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으니 만족해야 되지 않을까?
찌걱찌걱 돌아가던 물레방앗간 수차소리와 왁자지껄 떠들며 헤엄치던 갬발 아이들이며, 자운영꽃을 넘나들던 벌떼들 소리를 기억하면서 그곳을 빠져 나왔다.
2. 번덕지의 어원
번덕지, 번던길, 번둔마을...
번덕, 번던, 번둔이란 낱말은 국어사전에는 찾아 볼 수 없는 낱말들이다. 그렇지만 전국 어디에서든 쉽게 지명에 나타나는 이름이며 대체로 구릉진 평편한 마을의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 '번덕지'가 번번한 언덕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으나 이도 미덥지가 않아 사전을 찾아보았다.
사전적의미에서 '반반-하다'와 '번번-하다'라는 형용사의 낱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뜻에는 '㉠, 바닥이 거칠 것 없이 펀펀하고 번듯하다. ㉡, 생김새가 곱살스럽다. ㉢, 물건이 보기 좋고 꽤 쓸만하다. ㉣, 지체가 남만 못지 않게 상당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때, 형용사 '번번하다' 가 지명이라는 명사화 과정에서 '번번한 땅', '번번한 마을'이 '번번지', '번번마을'이라 불리다가 음운변화현상을 겪으면서 '번덕지', '번둔마을' 등으로 변화했을 가는성이 짙다고 본다.
아뭏든 번덕지라는 지명은 아주 평평한 땅이라고 보기 보다는 약간 비스듬하면서도 번번한 땅, 완만한 경사의 반반한 들판이란 뜻을 가진 의미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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