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38편 ; 저승으로 가는 꽃길

푸른나귀 2019. 4. 30. 21:23



1. 들어가며


   사람은 부모의 은덕으로 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태어나면서 생노병사의 질곡을 겪어야 하는 것이 모두에게 주어진 짐인데, 그 중에 죽음은 보내는 사람이나 죽는 당사자는 죽는다는 것에 혼란과 두려움을 갖게한다.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날을 즈음하여 인간의 마지막을 장식해 주던 상여집을 찾아 보았다.

 전부터 지인들을 통해 청고을에 남아 있는 상여집이 있는지를 탐문해 보았지만, 흔적없이 사라진 빈터 뿐이라는 답변 뿐이었다. 불과 몇십 년 사이에 머리카락이 쭈볏 서던 돌담집의 음산한 상여집은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옛 추억이 되어 버린 것에 아쉬움이 남아있기에 더욱 찾아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둔터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상여집 이야기를 하니, 그 동네 상여집이 허술하게나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단숨에 달려가 보았지만 역시 잡초에 뒤덮인 채 폐허로만 자리를 지키고있었다.

 2016년에 발간 된 보령문화원의 '보령의 상여'라는 책에 의하면, 청고을 각 마을마다 위치한 상여집의 상태는 철거 23개소, 현존이 5개소로 파악 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이 발간될 때 현존으로 파악되던 스므티고개 아래의 점촌 건너편에 있었던 상여집도 3년이 채 못되어 완전 무너져 폐허가 되어 있음이 확인되니 추억속에 간직 되어 있었던 상여집의 모든 것들이 이젠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유물로 변하여 버린 것 같다.(위치; 보령시 청라면 소양리 산8-2)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가정의례준칙에 의한 관혼상제의 간소화가 정책적으로 강력히 추진되면서 상여집도 사라지게 된다. 마을의 후미진 곳에 흙돌담으로 벽을 쌓고 초가지붕을 얹은 상태로 수백년을 지켜오던 상여집이 시멘트블록에 스레이트 또는 함석지붕으로 개량되어 근래까지 보존 되다가 매장문화가 화장문화로, 전통상여가 꽃상여로 변하면서 자연적으로 상여를 쓰지않게 되고 소외되어 버린다.

 스레이트와 함석이 낡아 빗물이 스며들어 그 안에 있었던 상여와 장신구들 또한 홰손이 급속히 이루어진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와 유물들 또한 흙으로 돌아가 버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버리니 보고 싶고, 듣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으로 변하였다.


 꽃상여에서는 볼 수 없는 조각 장식이 투박하면서도 화려한 모양으로 각자가 뜻을 가지고 있었음을 기억하고, 남아 있는 유물들도 어느 귀택의 장식품이 아니라 모두가 보고 즐길 수 있도록 공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요령잽이의 구슬픈 소리마저 일년에 한번 듣기 어려운 실정이니 요즘 망자는 꽃상여 타고 저승 가는길이 무척 외로울 것 같다. 

 

  

2.상여의 유래


 사람이 죽으면 사자의 시신은 화려한 꽃상여를 타고 애절한 상엿소리와 요령 소리와 함께 이승을 떠난다.

 산 자의 집에서 죽은 자의 무덤까지 상여를 운반하는 사람들이 상여꾼이다. 상여꾼은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신앙공동체인 향도(香徒) 조직에서 비롯되었다. 향도란 명칭은 신라의 김유신이 15세 때 화랑이 되자 그를 따르는 낭도들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 부르는 데서 유래했다. 용화라는 말은 불교의 미륵신앙에서 내세불인 미륵불이 도솔천에서 용화수(龍華樹) 아래로 내려와 3번 설법한다는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낭도는 미륵을 따르는 무리로, 화랑을 미륵의 현신으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여소리는 만가(輓歌)라고도 부르는데, 상여를 끌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망자를 애도하여 그가 이승에 남긴 행적을 가리고, 저승에서 좋은 곳으로 가도록 인도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상두꾼, 유대꾼, 역군, 담예꾼, 부역꾼 다위로 불리는 상여꾼들은 보통 12명 이상으로 조직된다. 상여 앞에서나 상여 위에서 상여꾼을 지휘하는 선소리꾼이 요령이나 북 또는 꽹가리를 치면서 앞소리를 메기면 상여꾼들이 뒷소리를 구성지게 부른다.

 통상 상가집에서 발인이 끝나면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망자의 집앞을 한바퀴 돌고 난 뒤에 집을 보고 서서 상여 앞을 낮추고 세차례의 절을 한다. 이때 상여 어르는소리 발인소리, 염불소리, 관암보살 등 다양한 소리를 느리게 부른다. 여기에는 망자가 이승을 하직하는 슬픔, 유족과 친지와 나누는 인삿말,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뜻이 담아있다.

 상여소리는 출상 순서에 따라 서창, 행상소리, 자진상여소리, 달구소리로 나뉜다. 서창은 상여를 메고 망자의 영혼이 집을 떠나기 서러워하는 심정을 나타내기 위하여 느리게 부르는 부분이고, 행상소리는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자진상여소리는 산으로 올라가면서 부르는 소리, 달구소리는 하관 뒤 무덤을 다지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상여소리는 장례의식과 상여운잔에 관한 절차가 포함된 내용상의 의식요이면서 노동요의 성격을 함께 띠고 있다.


  상여는 옛날부터 한국인에게 생사를 넘게 해주는 도구로, 조선시대 신분의 높낮음을 불구하고 혼례식 때 신랑이 문무백관의 사모관대를, 신부가 공주나 옹주가 입을 수 있는 원삼 대례복을 입었듯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에 최상의 혜택을 주듯이 상여의 단청을 허용하고 연꽃과 봉황새의 장식도 허용하였다.

 상여는 향약이나 향도계의 규율에 따라 마을마다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한 다음 마을에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상여집에 보관하였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썼다.


 상여는 지방마다 장식되어 있는 조각이 다른데 경상도 지방의 상여에는 특히 목각인물상이 많이 부착되어 있다. 상여에 장식한 인물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사자, 호랑이, 말, 해태, 봉황, 학과 같은 신령한 동물을 타고 있는 사람의 장식과 둘째는, 동자나 여인이 손을 모은 자세를 하거나 두루마리, 붓, 칼, 연봉, 책 형태의 명부를 든 모습의 장식이 있다.

 한국인은 사람이 죽으면 육신인 백(魄,넋)은 땅에 묻히고, 영혼인 혼(魂,넋)은 저승사자에게 끌려가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다고 여겼다. 때문에 상을 당하면 제일 먼저 사자밥을 차려 저승사자를 달래고 상여에 그의 마음에 드는 여러 상징을 묘사해 망자의 저승행이 순조롭기를 바란 것이다. 그 가운데 동자는 생전에 선악 행위를 명부에 기록하고 신에게 보고하는 존재이다. 연꽃은 청정세계를 상징하며, 신령한 동물을 타고 있는 인물은 무한한 신통력을 가진 천상의 존재로서 외경의 대상이 된다.

 이처럼 상여에 새겨진 조각에는 육신은 사라져도 영혼은 영원불멸이라는 한국인의 사생관이 담겨있다. (조선팔천, 이상각, 서해문집, 2011, 상여꾼 항목 참조), (아래사진 참조; 보령의 상여, 보령문화원, 황의호,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