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던 길이냐고 묻진 않으마. 지나온 흔적마저 화석이 되어 논두렁에 멈춰버린 너의 나신(裸身)이 검은 가죽만 남긴 채 풀냄새 흙 내음마저도 느끼지 못하고 하늘의 빗소리만 기다리누나. 건너편 물 대인 논에는 백로의 긴 주둥이가 널 기다리고 트랙터의 뒷바퀴가 거대할진대 잠깐 내린 여우비에 온 세상이 네 세상인 양 그 길을 꼭 건너야만 했단 말이냐? 박제되어 꼬부라진 너의 몸뚱이를 누가 기억해 준단 말이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란 유채꽃 이파리만이 지렁이의 주검 위로 무심하게 흩날릴 뿐이다. * '작가와 문학 제19호' 기고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