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188

제77편 ; 관암(冠巖)

1. 들어가며 대천해수욕장의 남쪽 해변 끝 부분의 송림이 우거진 숲 앞 해변에는 큰 바위군이 몰려있다. 이곳은 예전에는 군사지역이라고 출입을 통제하기도 하였었고, 대체로 해수욕장을 이용하는 피서객들마저 잘 찾지 않는 지역으로서 바위들과 높은 파도로 인하여 위험이 상존하는 구간이었다. 대천해수욕장에서 남포방조제에 이르는 구간이 바닷쪽으로 불쑥 튀어 나간 곶의 형태로 이곳을 예로부터 관암(冠巖)이라 하였다. 관암은 갓바위라고도 불리었는데, 고려 말 김성우장군이 왜구를 혁파하고 갓을 벗어놓았었던 바위라 하여 지명 이름으로 굳어졌다 한다. 어떤 바위가 관암으로 명명 되었었는지 궁금도 하여 발길을 옮겨 보았다. 한겨울 추운 날씨에 바닷가는 한산하고 낙시꾼 두어명이 바다를 향해 낙싯대를 던지고 있다. 군부대 철망 ..

제70편; 가소정 정자

1. 들어가며 근 2년 넘도록 쇠스랑질 하면서 틈나는대로 고향 고을을 쏘 다녔는데도 발길이 미치지 못한 곳이 많다. 우연히 친구와 이야기 하던 중에 그의 조상에 대하여 대화가 이어졌는데, 그 친구가 어릴때 집안 어르신이 이곳에 조상의 흔적인 편액이 걸려 있다고 해서 같이 찾아 가 보았다. 장현리 은행마을에는 수없이 발길을 했는데도 마을 한 가운데에 정자가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는데, 불과 신경섭 가옥에서 100여m도 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비록 정자는 들판 한가운데 오래된 은행나무 밑에 위치하고, 규모는 보통의 정자보다는 작지만 아기자기하면서 단조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예전 이 동네 지주 양반이 집 앞에 정자를 세우고 부근의 향리 선비들을 모셔 시를 짓고 풍월을 읊은 모양이 듯 목판으로 각인 된 수수한..

제69편; 이천휴당 신도비각

1. 들어가며 보령시 죽정동에서 청고을로 들어가는 지방도로에서 로타리를 지나 보령병원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독정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그 옆 밭 가운데 쓸쓸하게 비각이 세워져 있다. 그 앞을 지나치는 운전자의 눈에는 비각 앞에 세워진 결혼상담소 안내 간판만 눈길을 주곤 무심결에 지나친다. 그래도 그렇지 보령에서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 조선시대 옳곧은 유림의 선비로 추앙을 받는 이천휴당 이몽규의 신도비각 일진대 안내판 하나 없이 보존을 하고 있는 꼴이 너무하다 싶다. 이천휴당은 화암서원에 토정 이지함선생과 함께 모셔진 보령의 선비이다. 이분은 장산리에 기거하셨던 광성부원군 김극성의 사위로 이지함선생과도 같이 광산김씨가를 외척으로 삼아 청고을에서 세를 키운 양반가이기도 하다. 현재의 독정마을이 대천동으로 ..

제68편; 청천저수지 정자 만취당(晩翠堂)

1. 들어가며 예전에 충남에서 두 번째로 큰 농업용 저수지로 이름을 떨치며 강태공들의 사랑을 받았던 청천 저수지가 지금은 순위를 아래로 하고 있겠지만, 조금만 더 투자를 한다면 수려한 경관과 풍경으로 시민들의 휴양시설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근래에 일부 구간인 향천리 부근의 수변 데크를 설치하여 산책할 수 있도록 시설을 설치 하였고, 또 일부 구간은 저수지 주위로 둘레길을 조성하여 운동과 휴식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지만 여러면에서 미흡함이 보이는 것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저수지의 제방을 돌아보면서 미천한 생각이나마 나름대로 구성해 보았다. 대천천 하안에서 부터 약 5km의 하상 산책로를 청천저수지의 제방과 연결한 산책로를 만들고, 제방의 우측에서 말미산의 등산로를 만들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