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185

제31편 ; 도화동 문(桃花洞 門)

1. 들어가며 옛날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해 글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자 실의에 빠져 그만 추운 겨울 날임에도 불구하고 담벼락에 기대어 해바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선비는 무심결에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윽한 향기를 따라 걷다보니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온갖 희귀한 새들이 지저귀는 무릉이란 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선비는 그곳에 초당을 짓고 아무 걱정 없이 글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행복에 젖어 있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에 얽힌 이야기이다. 내 어렸을 적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고 우리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깊이 빠져들다 보면 스르르 눈이 감기고, 큰바위의 문을 통해 들어가면 황홀하게 꾸며진 대궐과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동리가 펼쳐..

제29편 ; 백제부흥군의 정기어린 임존성(任存城)

1. 들어가며 예전에 예산에서 화성으로 고향길을 잡을 때에 예당저수지 길을 달리면서 오른쪽의 높은 산을 언젠가 한번 오르리라 마음만 가지고 있었던 봉수산(484m)을 오늘에서야 올랐다. 봉수산을 감싸 안으면서 둘러쳐진 임존성(任存城)은 백제의 테뫼식 석성으로 신라와 당나라의 침략으로 인한 백제 멸망 후 백제부흥군의 주요 거점으로 약 3년 간의 치열한 항거의 격전지로 남아 있어 백제의 정기를 후세에게 말하여 준다. 660년 7월 18일 의자왕은 태자 부여효와 부여태, 그리고 웅진을 방어하던 신하들과 함께 당나라의 소정방과 신라의 무열왕 앞에서 650년 간(서기18~서기660)의 백제 사직을 내 주며 무릎을 꿀었다. 신라와 당나라는 승전의 사후처리를 서둘렀으나, 백제의 남은 세력들은 쉽게 동화하거나 꺾이지 ..

제28편 ; 보령경찰서 망루

1. 들어가며 어린시절 방학 때 마다 고향 찾아오는 길이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장항선 완행열차를 타고 대천역에 내리면 어미 품에 안기는 듯이 마음이 설레이고, 그립던 모든 것을 가진 양 대천읍내가 신선해 보였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 앉히고 버스에 올라 청고을로 가다보면 차창 밖으로 돌덩이를 쌓아 만든 망루가 눈에 들어 왔었다. '도대체 저건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어나곤 하였는데 한참 후에서야 그것이 한국전쟁의 흔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 청고을에 지속적으로 다녀가곤 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차량을 이용 하다보니 그 길을 다시 지나갈 일이 없어졌고 그 망루도 내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언젠가 대천읍내를 다녀오다가 대천초등학교 부근 사거리에 그 망루가 있었는데 보이질 않아 ..

제26편 ; 벼락바위와 굉바위

1. 들어가며 10여년 전에 '신(新)청고을 이야기'라는 꼭지로 청고을의 고갯길, 바위, 지명, 인물에 대하여 어쭙지 않은 글을 쓴적이 있었다. 이순(耳順)에 다시 고향 길을 거닐며 그 흔적을 찾아보니 고려말 야은 길재 선생님이 읊은 시조의 싯구도 지금 세상에는 적합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 오백년 도읍지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 선생은 자연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간곳이 없음을 아쉬워 했는데, 지금의 시대에는 산천도, 사람도 짧은 시간에 변화가 진행 됨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신(新)청고을 이야기'의 5편 중에 2편에서 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서술했었는데 선바위, 말바위, 달걀바위, 벼락바위, 집진바위, 굉바위의 현재 상태는 어떠..

제25편 ; 백제인의 얼굴

1. 들어가며 서산I.C에서 덕산면 쪽으로 한 7km 정도를 달리다 보면 가야산(677m)이 품고 있는 용현계곡이 나온다. 예전에 '서산마애불'이라고 불리웠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의 미소가 이 계곡이 품고 있다기에 한 번 들르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쉽게 발길을 못 하였었다. 서산, 태안지역은 백제시대에, 백강의 기벌포와 함께 중국의 선진 문명과 문물이 들어오는 중요한 요충지로서 통로 역활을 하였다. 그러한 흔적들이 이곳 암벽에 남아 백제인의 숨결을 지금도 면면히 전해주는 것이 용현리매애삼존불이다. 태안 동문리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과 함께 백제가 공주와 부여에 도읍으로 한 백제 후기시대의 명작이라 일켤어 질 만하다. 용현계곡의 산자락에 자연스럽게 비껴 위치한 바위 속에 숨겨진 석가와 미륵불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