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편 ; 느긋한 산책길 죽도 1, 들어가며 지난 10월 보령시에서는 1996년부터 보령의 8경과 8미를 선정하여 홍보를 하던 것을 근간에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보완하여 9경 9미를 발표하였다. 새로 선정한 9경에는 대천해수욕장, 성주산 휴양림, 죽도, 개화예술공원, 청라냉풍욕장, 외연도, 무창포해수욕장, 보령호, 충.. 보령의 흔적따라 2018.12.17
제13편 ; 청라 이 석구씨 공덕비 1, 들어가며 예전에는 관직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위한 애민정신으로 위민정치를 행한 수령이 임무를 마치고 고을을 떠날 때 백성들은 고을 어귀에 공덕비를 세워 그를 기억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나중에는 변질되어 관직에서 물러난 고을 수령의 후손들이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사비를 들여 공덕비를 세우기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남포 읍성이나 충청수영(오천)의 관아 앞뜰에는 나래비로 선 공덕비의 수로 볼 때에 고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한데 모아 보존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청고을에 남아있는 공덕비는 청보초등학교 교문 앞과 화암서원 입구, 그리고 안골마을 입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암서원 입구의 공덕비는 전형적인 고을수령의 공덕을 치하한 비이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고, 청보초등학교 교문앞 공덕비 중 3기는 초.. 보령의 흔적따라 2018.12.13
제12편 ; 한내돌다리 1, 들어가며 세상에 태어나 덕을 쌓는 일 중에서 개울을 건너가는 행인들을 위해 징검다리 돌 하나를 바르게 놓는 일도 있다고 하였다. 실개천의 징검다리야 동네사람들이 두레를 통해 혹은 부역을 통해 수시로 보수를 하여 오갈수 있었겠지만 행인이 많이 오가는 개천을 건너는데에는 관청에 의한 국가사업이나 그 지역 유지들의 재력과 힘으로 이룰 수 밖에 없는 큰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장항선이 생기고 기차역이 대천읍내에 들어서기 전에는 남포현에서 보령현(현 주포면)으로 가는 길목에 한내천을 건너는 돌다리가 우마차도 다닐 수 있는 주요 도로 역활을 하여 왔다고 볼 수 있겠다. 일제에 의해 신작로가 뚤리고 콘크리트로 된 다리가 생기면서 볼품이 없어진 이 돌다리는 본래의 자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제 역활을 하지 못하고 고.. 보령의 흔적따라 2018.12.12
제11편 ; 이웃마을 서천의 역사 (기벌포) 1. 들어가며 보령사람들은 서천사람들을 어떻게 보고있을까??? 비인과 남포사람들은 오랫동안 서로 교류하며 특히 혼인관계로 근래까지 인연을 이어왔지만 근래에는 특별히 이렇다 할 교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장항제련소가 문을 닫고 군장 산업단지의 기반시설이 군산 쪽.. 보령의 흔적따라 2018.10.24
제10편; 토정 이지함선생과 화암서원 1, 들어가며 오서산 남쪽의 청고을 동네를 우리는 통털어서 옥계라고 불렀었다. 보령아산병원을 지나 장골이라는 큰동네를 가진 장산리가 있으며, 황룡과 은행나무 전설이 전해지는 옥계리와 장현리가 명대 계곡 황룡천을 따라 마을을 이룬다. 화성으로 넘어 가기전 지금도 우리에겐 낯.. 보령의 흔적따라 2018.10.16
제9편 ; 화산동 고인돌 1, 들어가며 보령. 청양간 국도 공사가 한창인데 무심결에 지나치던 향천리 입구 삼거리에 보이지 않던 큰 돌이 보여서 이곳에도 고인돌이 있었나하고 호기심에 차에서 내려 확인을 해보았다. 근간에 화산리의 도로확장공사 때문에 이 자리에 옮긴 고인돌이 확실하였다. 고인돌은 석기시.. 보령의 흔적따라 2018.10.15
제8편 ; 은행마을 신경섭 전통가옥... 1. 들어가며 오서산(791M)의 남향받이인 황룡리와 장현리는 높은 산세에도 불구하고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출향인 중에 재계나 정계에 진출한 인물들이 많은 것을 보면 풍수상의 이론도 세상살이에는 영향이 있나 보다. 천년묵은 구렁이가 황룡이 되어 승천 하였다는 전설.. 보령의 흔적따라 2018.10.13
제7편 ; 신(神)들이 숨어 살던 골짜기...(은선동과 선바위) 1. 들어가며 성주산 장군봉의 맥은 동쪽으로 문봉산과 성태산, 그리고 백월산을 들러 북으로 고개를 숙여 스므티고개를 지나 오서산으로 다시 치솟으며 청고을을 감싸 안는다. 장군봉의 서쪽맥은 왕자봉을 거쳐 옥마봉을 향해 달리다가 서해 바다에 고개를 숙이며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 보령의 흔적따라 2018.10.08
제6편 ; 남곡동의 '탑동' 유래 1, 들어가며 우리동네 입구에 3층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누군가가 '탑동'이라는 지명에 걸맞게 하려고 탑을 세웠나 보다 하고 조잡스러움에 무심하게 지나치기를 번복했는데, 어제는 그 앞에 발길이 멈춰졌다. 탑 옆에 표지석을 읽어 보고 새삼 나의 무관심이 너무 했구나 싶어 10여 년전에 인천에서 근무할 당시 기록하였던 글을 찾아 보았다. 7월 30일자 인천일보의 3면에 "일제시대 인천 이전 추정 충남 3층석탑 반환요구" 라는 기사가 눈에 띠었다. 1910년 중반 일본인에 의하여 불법으로 이전되어 인천시립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소장하고있는 3층석탑의 반환을 보령시와 의회가 공문서로 요구 하였다는 소식과 더불어 보령시 남곡동 탑동마을에 이 석탑의 지석대인 큰바위의 바탕이 존재하고 인천시립박물관 문서에도 보령에서.. 보령의 흔적따라 2018.10.04
제5편 ; 왕대산 마애불 1. 들어가며 단기 4351년 하늘이 열린날,.. 점심을 먹고 뒷산인 왕대산의 능선 등산로에 사부작사부작 올랐다. 이곳에 이사온 후 이따금 한적한 산행길을 즐기었는데 오늘은 샛길로 빠져 왕대사쪽으로 발길을 하였다. 성주산 능선을 따라 산행하며 바라보던 보령시의 경관을 오늘은 바다쪽.. 보령의 흔적따라 2018.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