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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편 ; 두무진 지질공원(백령 2)

1. 들어가며 두무진 항구에서 수시로 운항 중인 유람선을 탑승하면 약 40분 정도로 연화리 앞바다까지의 두무진 해안절경을 즐길 수 있다. 수 억년전에 생성된 지구의 나이테를 바라보면 인간의 나이테가 얼마나 무의미한 지를 느낄 수 있다. 새끼를 키우기 위해 바위 주변을 맴도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뱃고동 소리보다 요란하고, 온종일 자맥질로 물고기를 잡아대던 가마우지들의 휴식도 마냥 한가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유람선 선장의 안내방송에 귀 기울여 보지만 수 많은 바위에 얽혀있는 전설과 이야깃거리는 눈이 먼저 풍광에 빠져들어 윙윙거리는 잡음으로만 생각들기도 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창작할 수 없는 조각품을 바람과 파도에 의해 자연은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시간이라는 도구로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 놓았다. 인..

제30편 ; 두무진 비경길 (백령 1)

1. 들어가며 북쪽땅을 장기집권하던 독재자가 사망하던 날(1993.07.08), 서울은 라면과 생수가 파동이 날 정도로 혼란에 휩쌓였었다. 신혼초임에도 불구하고 백령도로 출장을 와 서너 달 근무 중이었는데, 마눌님은 돈도 필요없으니 빨리 들어오라며,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며 전화기에 불똥이 떨어진 듯 애원하였었다. 지금은 장성하여 그 시절의 아들처럼 손주를 키우고 있는 아들내외를 바라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꼭 30년 전의 일이며, 한 번 그곳에 다녀오리라 마음을 먹고 연안부두에서 대기도 하여 보았지만 날씨 탓에 불발로 끝나길 수 차례 였다. 이번에 답사할 기회가 다시 생겨 불안한 마음을 한켠에 두고 연안부두에 도착하였는데 다행히 순조로운 답사길이 열리게 되었다. 30 년을 지내며 이따금 눈에..

제29편 ; 어청도 봉수대 (군산 4)

1. 들어가며 조선이 건국 되면서 중앙권력을 강화하고 지방행정을 원활이 하고자 역참과 봉수제도를 정비하고 강화하였다. 조선팔도의 변방 네 곳에서 출발하는 봉수로는 도성으로 위급함을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한동안 자리매김을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봉수대의 관리가 소홀해지며 효능이 떨어지자 폐기하게 된다. 어청도의 봉수대는 서해로 침범하는 외적의 동태를 어청도에 알리고, 어청도 봉수대는 녹도를 경유하여, 녹도, 원산도, 망해정을 연결하여 충청수영으로 전달되는 지방관의 관할하에 설치되었던 권설봉수였다. 섬주민들에게 봉수대를 설치하고, 외적을 감시하며 관리의 의무 등을 부여하면서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음에 애초에 의도한 대로 역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날씨가 궂으면 봉수의 ..

제28편 ; 어청도 초등학교 (군산 3)

1.들어가며 해안 산책길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등대길로 접어들었다. 섬주민들의 치안과 건강을 지키는 파출소와 보건소를 지나는 길에 약간 높은 지대에 초등학교 건물이 있다. 사람들이 사랑나무라 부르고 있는 향나무 두 그루가 마치 연리지처럼 손을 맞잡고 있는 형태로 시멘트 계단 위로 대문을 대신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악동들이 뛰쳐 나올 듯하여 멈칫 기다려보지만 조용하다. 열댓 계단을 올라서니 사랑나무에 머리가 부딪힐 것 같다. 목을 움추리며 운동장에 들어서니 잡초가 무성하고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기구도 움직임이 없다. 풀밭이 된 운동장을 지나 교사동 현관으로 가보니 붉은 글씨의 경고문이 붙어 있다. '본교는 2021년 3월 1일자 휴(폐)교 되어 모든 재산권(토지,시설물,수목 등)은..

제27편 ; 어청도 치동묘 (군산 2)

1. 들어가며 전횡장군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섬이 서해안에는 다수 있다. 특히 주변의 섬 외연도에는 전횡장군의 당집이 있으며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한 제를 성대하게 모시고 있다. ( 보령의 흔적따라 154편, 138편 참조) 비운의 영웅인 전횡장군을 신으로 승격 시킴으로서 날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섬사람들에겐 불안을 해소시키고, 믿음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같은 믿음이 섬 특유의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게 되었고, 척박한 섬 살림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곳 치동묘는 외연도의 당집과는 달리 마을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나즈막한 돌담으로 둘러처져 있고, 흙을 치대서 자연석을 아기자기하게 사람 키 정도로 쌓은 모습이 정겹다. 태극문양이 그려진 외문의 빗장..

제26편 ; 어청도 구불길 (군산1)

1. 들어가며 보통사람들은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어청도(於靑島)가 행정구역이 바뀐 것을 금산군과의 빅딜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어청도가 충청수영의 관할의 홍주목에서 1901년 오천군으로 이전이 되고, 1914년에 전라북도 옥구(현 군산)로 이전된 것이며, 금산이 충청도로 행정구역이 바뀐 것은 한참 후인 1963년의 일이니 전혀 빅딜과는 상관이 없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곡류와 광물, 수산물 등의 일본 반출을 위한 수탈기지로 발전을 거듭하는데, 어청도는 지형이 U자형으로 깊숙한 항구를 가지고 있어, 일본인들에 의해 고래를 포획하는 전진기지로 이용되며 군산과 가깝기에 일본인에 의해 행정편의를 위하여 충청권에서 전북권으로 행정구역을 바꾼 것이다. 전라도쪽에서 생산된 곡물을 운반하던 ..

제25편 ; 홍성읍성(홍성3)

1, 들어가며 홍주는 삽교천의 상류에 위치하는 홍성천과 월계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선사시대부터 비옥한 땅으로 사람들이 거주하기 좋은 곳으로, 이지역 향토사학자들 중에는 진번. 목지국의 거점이 홍주지역이라는 가설을 내놓고 있으며, 백제 부흥군의 거점인 주류성을 홍주로 비정하기도 한다.(보령의 흔적따라 제128편 참조) 홍성은 내포지역 문화창달의 주요 지역으로 기호학파 유림학자 한원진을 계보로하는 남당학파가 형성되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이 일제강점기 항일의병운동의 선봉이 되어 1906년 홍주의병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홍주읍성에서 이뤄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고을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1975년도에 처음으로 홍성을 방문하였었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친구들과 홍성출신 학우의 집에 방문한 길에 수덕사를 함..

제24편 ; 우리 겨레 박물관 (홍성 2)

1. 들어가며 1980년대 중엽 일반 대중에게는 대동이족에 대한 책들이 민족의 참역사와 정신적 뿌리를 찾고자하는 열의에 돌풍을 일으켰다. 김정빈의 장편소설 '丹', 김태영의 '다물', 박문기의 '맥이', 임승국 번역의 '한단고기' 등이 그것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사학계에는 주류사학계와 비주류사학계 그리고 재야 사학계 등으로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며 의견을 좁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수용과 비판이 다른데에서 나왔다고 보여진다. 비주류 사학계는 고대사를 바라보면 시각이 주류사학계와는 크게 다르게 고조선의 영역을 넓게 보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사의 시원인 단군을 전설이 아니라 역사 속에 살아있음을 강조한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로 요동땅과 만주벌판에서 일어났던..

제23편 ;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홍성 1)

1. 들어가며 오랜 봄가뭄에 농심이 타들어가던 중에 촉촉히 적셔주는 봄비가 반갑기 그지없다. 잠시 호미를 내려놓은 기회에 백야 김좌진 생가터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보령 청소에 위치한 김좌진 장군의 묘소는 보령시 지자체에서 추모하는 제향을 비롯하여 지나치는 길에 수시로 방문을 하였지만, 생가터는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으니 흠모의 정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 것 같다.(보령의 흔적따라 제163편; 백야 김좌진장군 추모제 참조) 장군은 1889년 안동김씨로 아버지 김형규와 어머니 한산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904년 해주오씨와 결혼을 하였다. 1905년 가노해방과 토지, 재산을 분배를 시행하였으며 1907년 호명학교를 설립하는 등 계몽적인 활동을 하였다. 1916년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민족종교인 대종교를 기..

제169편 ; 청라초교 개교 100주년

1, 들어가며 성주산과 오서산 사이 푸른 벌판에 세워진 청라초등학교가 2023년 5월 10일이면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다. 그에 앞서 총동창회는 2023년 4월 22일(토) 10시 30분부터 청라관에서 시장 및 교육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과 옛 은사님, 그리고 동문 선후배들이 함께 즐거움을 나누면서 기념행사를 가졌다. 학교교육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쇄국정책으로 외부와 단절되었던 조선은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게 된다. 조선시대 지방의 교육정책은 주로 서원과 서당을 통하여 유교이념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 하였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서 신교육이 확대되면서 일본제국의 신민을 양성하는 식민사의 교육으로 변질되었다. 보령지역 소학교(초등학교)의 설립은 아래 표와 같이 웅천이 대천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