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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편 ; 어청도 구불길 (군산1)

1. 들어가며 보통사람들은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어청도(於靑島)가 행정구역이 바뀐 것을 금산군과의 빅딜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어청도가 충청수영의 관할의 홍주목에서 1901년 오천군으로 이전이 되고, 1914년에 전라북도 옥구(현 군산)로 이전된 것이며, 금산이 충청도로 행정구역이 바뀐 것은 한참 후인 1963년의 일이니 전혀 빅딜과는 상관이 없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곡류와 광물, 수산물 등의 일본 반출을 위한 수탈기지로 발전을 거듭하는데, 어청도는 지형이 U자형으로 깊숙한 항구를 가지고 있어, 일본인들에 의해 고래를 포획하는 전진기지로 이용되며 군산과 가깝기에 일본인에 의해 행정편의를 위하여 충청권에서 전북권으로 행정구역을 바꾼 것이다. 전라도쪽에서 생산된 곡물을 운반하던 ..

제25편 ; 홍성읍성(홍성3)

1, 들어가며 홍주는 삽교천의 상류에 위치하는 홍성천과 월계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선사시대부터 비옥한 땅으로 사람들이 거주하기 좋은 곳으로, 이지역 향토사학자들 중에는 진번. 목지국의 거점이 홍주지역이라는 가설을 내놓고 있으며, 백제 부흥군의 거점인 주류성을 홍주로 비정하기도 한다.(보령의 흔적따라 제128편 참조) 홍성은 내포지역 문화창달의 주요 지역으로 기호학파 유림학자 한원진을 계보로하는 남당학파가 형성되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이 일제강점기 항일의병운동의 선봉이 되어 1906년 홍주의병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홍주읍성에서 이뤄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고을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1975년도에 처음으로 홍성을 방문하였었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친구들과 홍성출신 학우의 집에 방문한 길에 수덕사를 함..

제24편 ; 우리 겨레 박물관 (홍성 2)

1. 들어가며 1980년대 중엽 일반 대중에게는 대동이족에 대한 책들이 민족의 참역사와 정신적 뿌리를 찾고자하는 열의에 돌풍을 일으켰다. 김정빈의 장편소설 '丹', 김태영의 '다물', 박문기의 '맥이', 임승국 번역의 '한단고기' 등이 그것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사학계에는 주류사학계와 비주류사학계 그리고 재야 사학계 등으로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며 의견을 좁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수용과 비판이 다른데에서 나왔다고 보여진다. 비주류 사학계는 고대사를 바라보면 시각이 주류사학계와는 크게 다르게 고조선의 영역을 넓게 보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사의 시원인 단군을 전설이 아니라 역사 속에 살아있음을 강조한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로 요동땅과 만주벌판에서 일어났던..

제23편 ;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홍성 1)

1. 들어가며 오랜 봄가뭄에 농심이 타들어가던 중에 촉촉히 적셔주는 봄비가 반갑기 그지없다. 잠시 호미를 내려놓은 기회에 백야 김좌진 생가터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보령 청소에 위치한 김좌진 장군의 묘소는 보령시 지자체에서 추모하는 제향을 비롯하여 지나치는 길에 수시로 방문을 하였지만, 생가터는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으니 흠모의 정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 것 같다.(보령의 흔적따라 제163편; 백야 김좌진장군 추모제 참조) 장군은 1889년 안동김씨로 아버지 김형규와 어머니 한산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904년 해주오씨와 결혼을 하였다. 1905년 가노해방과 토지, 재산을 분배를 시행하였으며 1907년 호명학교를 설립하는 등 계몽적인 활동을 하였다. 1916년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민족종교인 대종교를 기..

제169편 ; 청라초교 개교 100주년

1, 들어가며 성주산과 오서산 사이 푸른 벌판에 세워진 청라초등학교가 2023년 5월 10일이면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다. 그에 앞서 총동창회는 2023년 4월 22일(토) 10시 30분부터 청라관에서 시장 및 교육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과 옛 은사님, 그리고 동문 선후배들이 함께 즐거움을 나누면서 기념행사를 가졌다. 학교교육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쇄국정책으로 외부와 단절되었던 조선은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게 된다. 조선시대 지방의 교육정책은 주로 서원과 서당을 통하여 유교이념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 하였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서 신교육이 확대되면서 일본제국의 신민을 양성하는 식민사의 교육으로 변질되었다. 보령지역 소학교(초등학교)의 설립은 아래 표와 같이 웅천이 대천보다..

제168편 ; 청라 의평리 정자제

1. 들어가며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마다 대동제를 지내던 풍속은 사라지고, 마을회관에서 새해 인사를 하면서 떡국을 나눠먹는 간단한 형식으로 바뀌고 있는데, 그것도 점차 없어지는 추세이다. 집단 노동력이 필요했던 농경사회에서는 향약이나 두레와 같은 조직이 필요불가결하기 때문에 정월 대보름을 끼고 입춘이 돌아오면 농삿일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에 마을사람들 모두 모여 당제, 산신제를 지내며 풍요를 빌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보름날을 설날보다 더 큰 행사로 생각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와 60년 전 정월 보름에 쥐불놀이 하면서 온동네를 뛰다니며 오곡밥을 얻어먹던 추억이 아스라이 생각나서 미리 갬발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지금도 보름 전날이면 중뜸 느티나무에 제를 지내고 달집 태우기를 한다고 하기에 시간..

제167편 ; 대천 산신당(1)

1. 들어가며 이제는 마을마다 지내던 당제나 산신제 같은 마을 공동체 행사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많은 요식과 격식이 생략되고 주민의 참여도도 떨어졌지만, 아직까지는 그 편린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대천초등학교 주변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주거지가 생기고, 그들의 천왕을 숭배하는 신사를 산 줄기에 세우고 우리 국민에게도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던 암울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오서산 줄기가 서해바다 쪽으로 흘러들어 봉황산이 되고, 봉황산 자락이 서남방향으로 펼처지며 대천 읍내를 품는 형국의 산세에 오래 전부터 지역민들이 모시던 산신당이 위치한다. 산신당이 세워진 것이 갑오년(1894) 부터라니 일제의 조선병합에 불안을 느낀 백성들이 민족정신 고취를 위한 ..

제166편 ; 오서산 도독의 성

1. 들어가며 오서산의 서측 사면 기슭에 산성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몇 번의 탐사 산행을 해보았지만 찾지를 못하였었다. 작년 초에도 성당골로 오서산에 오르면서 오서산 안내도에 표기된 '도독의 성' 주변 신암사 터 주위를 훓터보기도 하였는데 수목이 우거져 가늠하기 힘들기에 낙엽이 진 후에 다시 탐방하기로 하고 또 미루게 되었다. 지난 가을, 지인으로 부터 '도독의 성'이 던목고개에서 신암터를 경유하여 청라 명대계곡 월정사로 연결된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임도 아래쪽 밤나무 단지 끄트머리의 숲속을 유심히 찾아보면 있을거라는 말을 들었었다. 설 명절 차례를 지낸 다음날, 성연소류지에 차를 세우고 문수골로 들어가 임도에 도착하여 폭 넓게 넙티재를 향해 걸으면서 밤나무 단지를 찾기로 했다...

제22편 ; 에필로그(대만 8)

1. 들어가며 학우들과 함께한 3박 4일의 일정으로 대만의 일부분을 답사하고서 대만을 알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책으로 읽고, 뉴스로 듣고, 세계여행기의 대만편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들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나마 직접 경험하게 되니 모든것이 새롭다. 여행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점을 두서없이 서술해 본다. 대만의 명동이라는 시먼딩(西門町) 거리에는 젊음이 넘쳐나 활기에 차 있지만, 그 주위에 위치한 수많은 학원가의 불 밝힌 창문은 시먼딩의 젊음을 참아가며 학구열을 높이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좁은 땅 덩어리임에도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가 이 젊은이들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좁은 시가지 도로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

제21편 ; 야류 지질공원(대만 7)

1.들어가며 자연이 빗어낸 진귀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야류 지질공원(野柳 地質公園)은 대만의 북부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외적 요인으로 파도에 의한 침식과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에 지각운동이 보태지고 수많은 세월이란 시간이 얹어져 오늘날의 희귀한 지질과 경관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지질공원 입구로 들어서자 안내판이 설치 되어있는데, 바위의 형태에 따라 36개소의 특정 이름을 부여하고 약도로 그 위치를 표시하여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 관람하면서 대조해 보리라 생각했지만 해안가에 들어서면서 기암괴석에 도취되어 바위의 이름의 중요성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에머랄드 바닷빛과 흰 파도가 어우러져 눈길을 빼앗아 버리고, 땅 바닥에 박혀 있는 화석과 절리가 발자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