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외 유적지 탐방

제27편 ; 어청도 치동묘 (군산 2)

푸른나귀 2023. 5. 23. 19:20

1. 들어가며

 

  전횡장군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섬이 서해안에는 다수 있다. 특히 주변의 섬 외연도에는 전횡장군의 당집이 있으며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한 제를 성대하게 모시고 있다. ( 보령의 흔적따라 154편, 138편 참조)

 비운의 영웅인 전횡장군을 신으로 승격 시킴으로서 날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섬사람들에겐 불안을 해소시키고, 믿음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같은 믿음이 섬 특유의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게 되었고, 척박한 섬 살림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곳 치동묘는 외연도의 당집과는 달리 마을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나즈막한 돌담으로 둘러처져 있고, 흙을 치대서 자연석을 아기자기하게 사람 키 정도로 쌓은 모습이 정겹다. 태극문양이 그려진 외문의 빗장을 여니 습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치동묘 전각이 눈에 들어오며 판석 깔린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담장에는 양치류가 습기를 머금은 채 자리잡고, 담쟁이 넝쿨은 세를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사당의 문고리가 자물통에 구속되지 않았기에 슬며시 열어보니 근엄하게 옥좌에 앉아 있는 전횡잔군의 영정이 눈을 부라리며 악귀들을 몰아내려는 듯 앉아 있다. 잠시 문안인사를 드리고 내부를 살펴보니 제향 기구들이 어수선하게 놓여 있는데 이는 아마 제기를 보관하는 별채가 없어서 그런 모양이고, 좌우로 용이 그려진 벽화가 보이는데 전횡장군이 용왕을 거느리는 바다의 신으로 추대된 때문인 것 같다.

 조용히 쉬고 계신 전횡장군께 죄송스러움이 출입문을 살며시 닫아드리고 외문을 빠져 나왔다.

 

 치동묘 앞에는 어청도 구불길과 치동묘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관심을 갖고 읽어보고, 사진을 찍어 온라인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될 터인데, 여러가지 미흡한 점들이 눈에 뛴다.

 안내판은 언제 세워졌는지 스텐레스 판에 검은 글씨가 색이 벗겨저 읽어 내려가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읽는 도중 포기하는 관광객이 있을 것 같다. 안내판은 최대한 간결하고 읽기 쉬워야 하며,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하려면 뛰어쓰기나 맟춤법 등 국문학적 전문인과 역사적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사학자, 그리고 외국어 전문가와 공동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 섬의 이름을 전횡장군이 도착하면서 푸른섬이라 명명하면서 한자로 어청도(於靑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섬 이름이 전설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지명이란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입에서 귀로 서로 소통하기 위해 불려진 것이기에 푸른섬이라 해서 어청도라는 한문을 쓰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많이 부족해 보인다. 보령의 향토사학자(보령문화원 원장 황의호)는 외연도 주변의 뱃사람들은 외연도를 오얀도, 어청도를 올켠도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오얀도와 올켠도가 외연도와 어청도의 본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얀도란 오야잡이(왼손잡이)라는 옛말로 외연도의 섬 지형이 섬마을에서 남쪽바다를 바라보면서 왼쪽 봉화산(해발238.3m)이 오른쪽 망재산(해발171.4m)보다 높아 왼쪽산이 높은 섬이라는 뜻으로 오얀도가 외연도로 바뀌었다고 보았고, 올켠도는 오른켠(오른쪽)이라는 옛말로 어청도의 섬 지형이 섬마을 포구에서 남쪽바다를 바라볼 때에 오른쪽 당산(해발198m)이 왼쪽 안산(해발106.6m) 보다 높기에 오른쪽 산이 높은 섬이라는 뜻으로 올켠도가 어청도로 바뀌었다고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어청도의 뱃사람들에게 이 섬의 본이름을 조사 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군산 향토사학자들의 관심이 여기에 미쳤으면 좋겠다.   

  

  

 

2. 참고자료 

       @ 지정 ; 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14호

       @ 위치 ;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 286

 

       @ 치동묘(淄東廟)는 어청도 포구 마을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중국 제나라 사람 전횡을 모시는 사당으로 전횡장군은 백제시대 이래 어청도 주민들의 토속신앙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다. 치동묘는 2m 높이의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대문에는 태극문양이 새겨저 있고 전면 3칸, 측면 1칸, 높이 2m의목조기와 형태이다.치동묘에 얽힌 전설을 살펴보면 " 고대 중국 제(齊)나라 사람인 왕 담의 동생으로 전황(田橫)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횡은 훗날 제나라의 재상이 된 후 왕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횡은 한의 유방이 초나라의 항우를 이긴 후 천하를 통일하고(BC 202) 초패왕 항우가 자결하자 의지할 곳이 없게 되어 두명의 형제 및 측근과 병사 500여명을 거느린 채 돛단배를 타고 서해로 탈출한지 3개월 만에 어청도에 도착 하였다고 한다. 전횡 일행이 어청도를 발견한 날은 바다 위에 안개가 약간 끼어 있는데 갑자기 푸른 섬 하나가 우뚝 나타나자 전횡을 비롯한 전 군사들이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섬에 상륙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전횡이 이 섬의 이름을 푸른섬이라 하여 어청도(於靑島)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치동묘의 이러한 유래로 인하여 군산의 토반인 담양전씨들이 전횡장군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생각하여 1926년 군산시 둔율리에 치동묘를 세워 모시더니 최근에는 사당을 옥구 원오곡 마을로 옮겨 치동원이라 이름하고 제사를 모시고 있다. (현장 안내판 참조) 

 

    @ 쾌청한 날에 도비산에 올라보면 바닷길이 분명하고 해중(海中)에 위안도(蘶眼島), 오호도(嗚呼島)가 있다. 이 섬은 전횡의 제나라 지경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혹자는 이르기를 오호도는 전횡이 의사 오백 명을 인솔하고 한고조를 피하여 살던 섬이라 한다. (서산의 사찬읍지 '호산록(1619)'의 기록 발췌)

 

  

 

   @ 전횡장군을 모시는 치동묘 외문

   @ 전횡장군의 영정을 모시는 치동묘 사당 전경

   @ 치동묘 우측 전경

   @ 사당내 전횡장군 영정

   @ 사당 내 우측 벽화와 제향 기구들

   사당 내 좌측 벽화와 제향 기구들

   @ 어청도 치동묘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