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외 유적지 탐방

제25편 ; 홍성읍성(홍성3)

푸른나귀 2023. 5. 12. 16:00

1, 들어가며

 

   홍주는 삽교천의 상류에 위치하는 홍성천과 월계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선사시대부터 비옥한 땅으로 사람들이 거주하기 좋은 곳으로, 이지역 향토사학자들 중에는 진번. 목지국의 거점이 홍주지역이라는 가설을 내놓고 있으며, 백제 부흥군의 거점인 주류성을 홍주로 비정하기도 한다.(보령의 흔적따라 제128편 참조)

 홍성은 내포지역 문화창달의 주요 지역으로 기호학파 유림학자 한원진을 계보로하는 남당학파가 형성되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이 일제강점기 항일의병운동의 선봉이 되어 1906년 홍주의병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홍주읍성에서 이뤄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고을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1975년도에 처음으로 홍성을 방문하였었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친구들과 홍성출신 학우의 집에 방문한 길에 수덕사를 함께 가기로 하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는 길에 조양문을 지나쳤었다. 그때는 성문 안으로 차량과 인파가 출입을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왜곡된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이 가기도 한다.

 홍주성 주변이 유적지로 잘 정비되어 시민들의 휴식과 교육의 장으로 변모된 것이 오랫만에 방문한 외지인으로서 반갑기 그지없다. 성벽을 따라가다보니 이 지역 출신 인물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손곡선생의 시비가 눈에 뛴다.

 

 국문학을 하다보면 허균의 소설 중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이라는 한문소설을 만난다. 손곡은 홍주출신 이달(李達, 1539~1612)의 호이다. 이달은 이수성과 홍주 관비 사이에 출생하였는데, 조선시대의 서자출신은 관직을 가질 수 없기에 뜻을 펴지 못하고 원주에 숨어 살았던 인물이다. 허난설헌과 허균의 스승으로 송시와 당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시인으로, 불운한 인생 후반은 평양의 여관에 얹혀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의 묘는 전해지지 않으며 그가 태어난 홍성에 시비가 세워져 그를 아는 우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한다.

 

 

     田家少婦無夜會  

     시골 밭집 젊은 아낙네 저녁거리 떨어져서

     雨中刈麥林中歸

     비 맞으며 보리 베어 숲속으로 돌아오네

     生薪帶濕煙忘起

     생나무에 습기 짙어 불길마져 꺼지도다

       入門兒子啼牽衣

     문에 들어서자 어린 아이들 옷자락 잡아끌며 울부짖네. (손곡시비에서)

        

 

2, 참고자료

 

     @ 위치 ;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412-6

     @ 지정 ; 조양문,홍주아문,안와당 ; 사적 제231호

 

 

   @ 홍주성의 남문으로 2013년 12월 복원한 후 '홍화문'으로 이름을 지었다.

   @ 홍주성의 내부에서 바라본 홍화문, 우측으로 관찰사,현감,목사 등의 직위로 된 공덕비가 세워져 있어 이 지역의 흥망성쇄를 엿볼수 있다. 

   @ 성벽 위에 세워진 '홍화문'

    @ 홍주읍성의 복원된 남쪽부분 성벽

   @ 홍주읍성의 동문인 '조양문'앞에 세워졌던 홍주목사 5인의 공덕비를 역사관 옆으로 옮겼다.

   @ 역사관 뒷편 공원에 세워진 기념비로 1906년 이지역에서 일어난 '병오항일의병기념비'

   @ 홍주성 역사관

   @ 역사관내 전시된 유물

   @ 홍주의병 관련 남당학파와 화서학파 활동상

   @ 손곡 이달의 시비 - 허난설헌과 허균의 스승으로 서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재야에 묻힌 시인 

   @ 홍성의 인물 중 만해 한용운선생 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