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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편 ; 독립지사 동양자 김광제(東養子 金光濟)

1, 들어가며 동대 사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가로변 공원에 서 있는 황동색 동상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에 들어온다. 일제 강점기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서 진행 하였고, 대구 등의 경상도 지역에서 민족계몽운동을 추진하며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에 전념을 다하여 일생을 바친 우리고장 웅천 평리 출신의 독립지사 동양자(東洋子) 김광제(金光濟) 선생을 기념하는 동상이다. 우리 지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보령에서의 활동이 미약해서인지 지역민들은 김광제 선생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지, 시민들은 무심하게 동상 앞을 스쳐 지나간다. 김광제는 부친 김상하(金商夏), 모친 풍천임씨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명은 홍제(弘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고, 본관은 경주이다. 17대조인..

고조선 연구(古朝鮮 硏究) 상, 하

1, 들어가며 저자 윤내현은 1939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으며,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임하였으며, 문광부 문화재의원, 단군학회 회장, 남북역사학자 공동학술회의 남측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중국의 원시시대」,「한국고대사신론」,「상주사(商周史)」,「중국사(전 3권)」,「고조선 연구」,「한국열국사 연구」,「고조선의 강역을 밝힌다」등 한국의 상고사에 대한 연구저서를 많이 발표하였다. 우리나라 고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학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 이견을 좁히지 못하여 일반 대중들은 혼돈스러운 우리역사에 의구심을 갖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역사를 관심갖고 연구하는 사학계는 대체로 세 분류로 나뉘게 되는데, 강단학계라 칭하는 주류사학계와 비주류사학계, 그리고 비주류 중에서 재..

독후글 2022.10.11

제161편 ; '보령의 섬' 기획 특별전

1, 들어가며 보령박물관에서 기획특별전으로 2022년 8월 20일부터 2023년 2월 28일까지 '보령의 섬'이 기획전시실 1관에서 전시된다. 보령에는 유인도 15개소, 무인도 75개소, 미등록 무인도가 58개소로 도합 145개소의 섬이 존재한다. 현재 보령의 섬에는 유인도 15곳에는 1,500여 가구의 3,000여명 주민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대표적 도서로는 근래 연육교와 터널로 연결된 원산도, 서해의 비경 외연도, 호도, 녹도, 화살촉 같은 지형의 삽시도, 고대도, 장고도, 효자도, 불모도, 월도, 육도 등이 있다. 보령지역에 사람이 살았었다는 증거로 이지역에서 출토된 구석기 유물들로 추정하여 대략 5만년 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서해바다가 빙하기에는 중국대륙과 연결된 평편한 내륙이었고, 차츰 간..

제13편 ;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여주6)

1, 들어가며 조선시대 왕릉은 고려 공양왕릉의 형식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으로 규모가 커져서 분묘 주위에 곡장(曲墻, 담장)을 두르고 석마(石馬) 등 문무인석을 배치하는 방법을 취했다. 서울 근교의 양주, 광주, 여주 등의 배산임수한 명당을 찾아서 언덕 중턱에 분묘를 만들었다. 왕릉에 들어서는 입구에 홍살문을 세우고, 석교(石橋)를 지나 제실(齊室)인 정자각(丁字閣)에 이른다. 정자각 동쪽에는 비각이 배치되고, 정자각 뒤쪽으로 언덕 위에 분롱(墳隴)이 위치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분롱(墳隴)의 형식은 초기에 고려식을 따라 상자형 석실묘에 호석을 두었으며, 면석 상부에는 12지상을 조각하고, 석실 내부에는 천정에 일월성진도, 벽면에는 사신도를 그렸으나, 세조의 광릉(1467년)부터 광을 파고 관을 내린 후..

제12편 ; 신륵사의 부도(여주5)

1, 들어가며 사찰에 세워진 부도는 큰 스님이 입적을 한 뒤 제자들에 의해 사리를 모시는 무덤과 같은 존재이고, 부도탑비는 큰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전기나 다름이 없다. 부도에는 주인공의 이름이 명문으로 새겨놓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명문을 표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탑비가 파손되거나 없어지면 주인공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주인공의 행적을 알 수가 없게 된다. 원래 부도(浮屠)는 불(佛, Buddha)을 말하고, 부도(浮圖)는 탑파(塔婆, stupa)라는 뜻을 가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부도가 고승의 유골이나 사리를 안치하는 탑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신라의 부도는 기본형식으로 팔각당식(八角堂式)이 주를 이루며 석종형식(石鐘形式)이 일부 남아 있다. 신라 말엽과 고려시대 ..

제11편 ; 신륵사의 탑(여주4)

1, 들어가며 신륵사를 감아 돌아 도도히 흘러가는 남한강을 이곳 사람들은 여강(驪江)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곳을 본향으로 하는 가문에서는 본관을 여주, 여강, 여흥으로 쓰기도 하였다. 불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무덤으로 금당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부처님의 말씀과도 같다는 사찰의 상징성을 갖게 되는데, 대부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지는 않았더라도 그와 버금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신륵사에는 특별한 탑들이 있는데, 대리석과 벽돌을 사용한 석탑과 전탑이 그것이다. 대부분 사찰에는 석탑의 재질을 화강석으로 하여 비와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으로부터 영구적인 보존성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곳 석탑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되어있다. 대리석은 색상이 부드럽고 질감이 좋아 건축공사에서 실내 마감재, 또는 예술 조각품 등..

제10편 ; 신륵사 1 (여주3)

1, 들어가며 신륵사는 횡성과 원주를 관통하는 물줄기와 단양과 충주를 거치는 물줄기가 합류하여 사행천을 이루며 흐르다가 여주에 이르는 남한강변에 위치한다. 옛부터 한양에서 내륙 깊숙히 물류를 옮기던 황포돛배와 뗏목의 운행이 번성하였던 곳으로 시인묵객들의 발길 또한 그 못지않게 많았다고 한다. 여주를 본향으로 하는 명문가들이 많은 데, 한강을 통하여 도성으로 들어서기 가까워 여주를 근거지로 한 향족들의 중앙 정계 진입이 수월하였던 것도 한 몫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2교구인 용주사에 속하는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진 않다. 신륵사의 홈페이지의 절 이름에 관한 유래를 살펴보면,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는데 하나는 고려 우왕 때 절 앞 강변의 마..

제9편 ; 고달사지 2 (여주2)

1, 들어가며 문화재 지정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들이 있어왔다. 논쟁의 종류로는 숭례문의 국보 1호로서의 상징성 결여, 문화재 지정 번호 부여로 인한 서열화, 문화재 지정번호 폐지 시행의 미흡, 국보와 보물의 지정기준의 모호함 등이 지적된다. 사전적 의미에서 국보는 '나라의 보배로, 법률에 의해 정해진 중요한 문화재' 이고, 보물은 '매우 드물고 귀하여 가치가 있어 보배로운 물건, 또는 국보 다음으로 중요한 유형 문화재'라고 명시되어 있다. 문화재 보호법 시행령 제 23조에 따르면, '1)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정할 수 있다. 2) 문화재청장은 제1항의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

제8편 ; 고달사지 1 (여주1)

1, 들어가며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고려시대에 들어와 선종사찰로 국가가 관장하는 대사찰로 왕실의 비호를 받았던 곳이란다. 창건 당시의 사찰은 광대하여 지금의 상교리 일대가 전부 사역이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절 부근에는 큰 마을이 형성 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고 한다. 원종대사가 869년에 태어나서 958년에 90세에 입적하였다. 성주사의 무염대사(801~888)처럼 오랫동안 불가에 있었으니 고승의 위치에 있었고, 제자들도 많았을 것이라고 하겠다. 넓게 자리잡은 고달사지 초원에 들어서니 말 구유를 닮은 석조가 길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요즘의 욕조보다 크기가 제법 크다. 이곳에 쌀을 씻는다면 주변의 냇가엔 쌀뜨물로 하얗게 한참이나 흘러갈 것 같다. 당시의 가람의 규..

제7편 ; 외로운 섬(獨島)(울릉4)

1, 들어가며 올해엔 동쪽과 서쪽의 끄트머리 땅을 다녀오겠다고 봄부터 작정을 하였었는데, 바닷길 사정으로 한두 번씩 연기하다가 결국 인천 연안부두까지 올라가 한나절 동안 대기하다가 배가 뜨질않아 백령도길은 무산이 되었다. 다행히 울릉도길은 한 번의 지연만으로 열려 울릉도까지 도착하였지만, 독도행 선편의 출항은 전날까지도 미정이었다. 그 다음날 오전에서야 선편운행이 확정되어 독도행 페리호에 몸을 싣고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맑은 날이면 울릉도에서 87.4km(운행시간 1시간20분) 떨어진 독도가 보인다고 하는데, 울릉도가 육지와의 최단거리가 죽변에서 130.3km이니 육지보다는 가까운 거리이다. 그래도 항구를 벗어나자 한참 동안이나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독도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