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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편 ; 대청도 둘러보기(대청 5)

1. 들어가며 대청도는 백령도에 비해 농경지가 적고 척박하여 살기가 고단한 세월을 감내했을 것 같다. 섬을 둘러보면서 본 논은 불과 몇 마지기 되지 않고, 밭뙈기들도 농가 주변으로 좁게 형성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섬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다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청도에는 아직도 당집과 같은 무속신앙이 존재함이 어업활동의 불안함을 신앙으로 이겨내려 하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백령도와 대청도는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두 섬 주민들 간의 긍지와 자부심은 서로 경쟁적인 인식이 배어있는 것 같은 말투가 자연적으로 스며 나옴을 대화속에 나타나기도 한다. 관광지로서 기반시설이 부족하여 불편한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편리함 보다는 불편함이 존재하는 여행이 추억에 오래 남..

제40편 ; 서풍받이와 광난두해변(대청 4)

1. 들어가며 대청도 둘레길 제8코스인 서풍받이길은 광난두 정자를 출발하여 마당바위까지 왕복 두시간 반 가량 걸린다. 이곳에서도 문화관광 해설사의 안내를 도움받을 수 있다. 광난두 정자는 이 섬의 최고봉인 삼각산(해발 343m) 등산로의 분기점이며 반대편 서풍받이 둘레길의 출발점이 된다. 정자 바로 밑에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누워있는 초묘가 두 기가 있다. 한국전쟁 후 이곳을 해병대가 들어와 국토를 지키는데, 초창기에는 물자의 조달과 보급이 형편없어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부대 앞에서 작은 점포를 꾸려 생계를 유지하던 할머니는 장병들의 옷가지들을 꼬매주고 자식처럼 돌보았다고 한다. 그 고마움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해병대 장병들은 직접 이곳에 장례를 치러 드렸다고 한다. 초입 전망대에서 까마득히 내려다 보..

제39편 ; 모래울 해변(대청 3)

1. 들어가며 '모래울'이란 지명이 정겹다. 섬 지역의 지명에서 우리의 옛 말들의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모래울이란 지명은 아마 '모래(沙)+울(墻, 丘)' 정도로 풀이 될 듯 한데, '모래로 둘러쳐진 담장' 또는 '모래로 된 언덕(沙丘)'이란 뜻일게다. 모래울 해변은 대청도의 서쪽에 면한 바닷가로 서풍에 의한 파도와 바람에 의해 바닷속에 있던 모래들이 해안으로 밀려와 거대한 언덕을 형성하였고, 뒷편으로는 바람을 막아주는 언덕 때문에 일찍이 마을이 형성될 수가 있었다. 그 언덕에서 자라는 적송들도 아마 사구의 모래바람을 막고자 하는 섬주민들에 의해 방풍림으로 조성된 듯 한데, 세월이 지나 유전자 보호 수림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적송은 울진 지역의 곧바르게 자란 나무가 아니라 해풍에 의해 이리..

제38편 ; 농여해변(대청 2)

1. 들어가며 대청도는 해변의 섬이라고 불린다는데, 그 명성답게 질 좋은 해변이 널려 있다. 그중 농여해변은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며, 바닷물이 빠지면 풀등이 나타나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맑은 해수욕장이 된다. 거기에다가 지질학적으로 희귀한 지질명소인 나이테 바위가 농여해변 내에 위치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농여해변의 암석은 지층이 퇴적되어 고압에 의한 열과 지각의 운동으로 뒤틀리는 습곡작용을 받아 90도로 세워지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쳐 오늘날의 고목나무의 나이테처럼 보이게 되었다. 파도는 해변의 모래를 깎아내어 바닷속으로 끌어들이는 작용도 하지만, 역으로 바닷속의 모래를 해변으로 이동시키는 작용도 한다. 농여해변의 파도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하여 바닷속..

제37편 ; 옥죽동 해안사구(대청 1)

1. 들어가며 예전에 여객선을 타고 백령도로 들어려면 먼저 대청도에 들리게 되는데, 여객선에서 대청도를 바라보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곳이 새하얀 모래 언덕과 농여해변의 풀등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산자락을 덮고 있었던 모래 언덕이 보이지 않아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현장을 와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청도는 백령도와는 달리 평야지대가 없고, 높은 산(삼각산, 해발 343m)이 사방으로 골짜기를 내주고 둘러처져 있어 도로가 험하다. 현재 1,000여 세대로 인구 1,500명을 밑돌고 있는데 대부분 어업에 종사를 하고 있다. '대청도는 고려 충혜왕 1년에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가 11세 태자 시절에 600여명의 식솔을 거느리고 옥지포(현 옥죽동)로 유배되어 현재 대청초등학교 자리에 궁궐을 짓고..

제36편 ; 백령면 둘러보기(백령 7)

1. 들어가기 30년 전 서너달을 생활했던 백령도의 추억을 불과 1박 2일이란 짧은 일정으로 회상한다는 것이 가당치도 않은 일이겠지만 주마간산을 하듯 바쁘게 돌아 다녔다. 그땐 먹고살기 위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와서 객지생활 하느라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이 인생의 석양이 뉘엇해지는 지금은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내 젊었던 시절에 남겨 놓았던 발자취에 지금의 발자욱을 얹어 놓았는지 모르겠다. 또 오늘의 발자욱에 미래 어느땐가 다시 이곳을 찾아와 허리굽은 노인네의 발자국이 합쳐지길 바라는 것이 욕심일까? 백령면민 만큼이나 많은 군인들이 상주하고, 매일 여객선이 천여 명의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데도 진촌리 면소재지의 밤길이 어둑한 것을 보니 관광지로써 활발한 상권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음을 알겠다. ..

제35편 ; 심청각(백령 6)

1. 들어가며 '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흥행했던 판소리가 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변형되어 독자들에게 크게 흥행한 판소리계 소설이다. 판소리 12마당에는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적벽가 등이 있는데 이들 작품은 대체로 설화가 판소리로 진행되고, 그 판소리가 소설화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학계는 주장한다. 판소리 사설이 유식한 문자와 상스럽고 발랄한 말이 적절하게 혼용함으로써 양반층과 하층민층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예술로 발전이 되었고, 충효와 권선징악의 유교적 가치와 윤회의 불교적 색채가 짙게 배여 소설로서도 크게 민중에게 호응을 받았다. 심청전에는 여러 이본들이 존재하며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이것은 판소리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창자에 의해 조금씩 윤색이 되고 각색이 되었기 때문인데, 이 과정 또한 ..

제34편 ; 용기포 등대해변(백령 5)

1. 들어가며 여객선을 타고 백령도에 들어서면서 용기포 선착장의 모습이 많이 변하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30년 전에 오가던 선착장은 구 선착장으로 어선들이 정박하는 항구로 변하였고, 용기포 신항이 더욱 크게 조성이되어 민간용과 군사용으로 확장 신설되어 운용중이었다. 구 선착장의 대피소 옆을 끼고 등대해변으로 향하는 숲길은 더위를 가려주는 울창한 수풀로 우거져있다. 용기포항을 드나드는 선박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등대를 끼고 돌아 넘어가면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용기포 해안에 들어선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 절벽에 파도에 휩쓸려 와르륵 소리를 내는 몽돌의 색상이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파도에 의해 깎겨 넓게 뚫린 해식 동굴에 들어서자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이 파도와 함께 밀려온다. 잠시 바위에 걸터..

제33편 ; 사곶천연비행장과 콩돌해안(백령 4)

1. 들어가며 바위가 부서져 돌이 되고, 돌이 부서져 모래가 된다는 동요가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무시된다면 간단한 이치 일텐데, 시간이라는 물리적 힘이 보태져서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곳이 사곶사빈과 콩돌해안이다. 백령도의 지질이 약 10억년 전에 퇴적되어 형성된 사암에서 강한 열과 압력으로 규암이라는 바위가 되었고, 그후 바람과 파도에 의해 풍화가 진행되면서 떨어져나가게 되는 윤회의 길로 들어선다. 떨어져 나간 돌들은 바닷속에서 파도에 의해 모서리가 깎기고 닳면서 콩돌로 변해 해변을 수놓게 되었으니 이것이 콩돌해안이다. 지금도 절벽에서 떨어진 돌들이 바닷속에서 깎기는 통증을 인고하느라 구르릉대며 울부짖는 듯 소리를 토해낸다. 그 콩돌이 가루가 되어 모래가 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지 ..

제32편 ; 중화동 교회와 백령 천주교회(백령 3)

1. 들어가며 백령도는 3천여 가구에 약 오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한국동란 당시 이주한 황해도민과 원주민, 그리고 군복무하면서 정착한 다양한 형태의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전협정이 되어 3.8도선 이남의 해주, 장연 등이 북으로 귀속 되면서 서해 5도는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 되었다가 인천광역시로 다시 편입이 되어 생활권이 인천으로 변하게 된다. 섬의 면적이 51Km2로 인천에서 228Km 떨어져 있지만, 황해도 장연과는 불과 17Km 떨어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대체로 섬지역들은 어업을 주 산업으로 하나, 평야가 많고 물이 풍부한 백령도는 농업인구가 어업인구보다 약 세배나 많아 농업이 주업이며 식량 자급도는 섬 전체인구를 먹여살리고도 남아 육지로 내보내는 정도이다. 주민들의 종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