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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산(제38편 ; 청라 서산)

1. 들어가며 서산(西山, 해발 179.0m))은 오삼전 사람들에게 해가 지는쪽의 산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산을 복병리 사람들은 복벵이산, 서원마을 사람들은 안산으로 불리었으며, 옛 문객들은 만천봉, 화악(花嶽) 또는 매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60년대 청천 저수지가 생기면서 서산을 기대고 살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한동안 잊혀진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전 청천저수지 둘레길이 조성되면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하는 듯하다. 산 중턱으로 3.1km의 임도가 생겨 더욱 좋아지는 것 같다. 옛 선비들의 싯귀에 많이 응용되는 산이라 한번 올라보리라 생각을 했지만, 등산로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어 주춤거렸는데, 오락가락하던 봄비가 주춤하자 발길을 떼 보았다. 가느실 주차장..

보령의 산 2024.02.14

보령의 산 (제37편 ; 대천 건지산( 뒷산))

1. 들어가며 옥마산의 줄기가 남서쪽 방향으로 고개를 푹 숙여 궁촌천을 건너서 둘릴산(환산)으로 솟아나 삼지창이 된다. 한 끝은 왕대산 줄기를 형성하여 해망산, 생앵산으로 이어지고, 또 한 끝은 당경산이 되어 소송리쪽으로 끝을 날카롭게하여 바다를 향한다. 삼지창의 가운데 날에 해당하는 건지산은 남곡동과 제석리 사이에 맥을 이어 바다를 향하는데, 주민들은 산 이름은 모르고 대부분 뒷산으로만 알고 재낸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지명을 표기한 지도의 자료가 찾을 수 없다. 위성 지도로 그 부근의 산형태를 살펴보면, 마치 서해바다로 처들어오는 왜구들을 향해 날카롭게 간 삼지창을 겨누고 있는 형상이 보인다. 몇 번인가 한번 오르려고 다짐을 했었지만 어디에서 산의 들머리를 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기에 미루고 말았는데..

보령의 산 2024.02.11

제176편 ; 화산리 상엿집

1. 들어가며 평생을 고닮프게 살아왔던 인생도 이승을 떠날 때에는 곱게 단장을 해서 보내는 것이 우리네 관습이었다.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동네 어귀 으슥한 곳에는 돌담에 초가 이엉을 얹은 상엿집이 흔하게 있었는데, '70년대 초 새마을 운동이 전국으로 펼쳐지면서 시멘트블록 벽에 함석지붕의 상엿집으로 바뀌게 된다. 세기가 바뀌면서 그것도 꽃상여라는 농협를 통해 간편한 형식으로 바뀌더니, 이젠 매장문화도 화장를 주로하게 되어 상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사라졌다. 농촌의 젊은층이 사라지자 상여를 멜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일게다.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 이제 가면 언제 오나 / 오는 날이나 알려주오 / 청사초롱 불 밝혀라 / 잊었던 낭군이 다시 온다./ 어허야 어혀 어이야 어여..

보령의 산(제 36편 ; 청라 말미산(駒山))

1. 들어가며 한 갑자 전 초등학교 다닐 때 청라초에서 청천저수지 제방 위로 소풍을 다녀온 기억이 있다. 십 여리가 넘는 신작로를 걸어 궂고개 전에서 말미산 고개를 넘어 제방을 가는 산길 밑은 시퍼런 저수지 물로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60년대 초 읍내 간사지의 농수확보와 생활용수 및 홍수로 인한 대천천의 범람을 막기위해 만든 저수지 제방은 '60년대 중반 초등학교 소풍지로 자리매김을 하였던 것 같다. 고향에 돌아와 수시로 궂고개를 지나면서 언제 한번 그때의 소풍길이 흔적으로 남아있는지 가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발길을 내디뎠다. 소풍길은 향천리 궂고개 아래 양조장에서 말미산 능선이를 넘어 저수지 제방으로 향하였던 길이었으나, 이번엔 말미산 능선이를 쭉 돌아보고..

보령의 산 2024.02.05

제60편 ; 남은들 상여(예산 5)

1. 들어가며 남연군의 묘역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박공지붕을 한 건물이 보인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보니 상여가 안에 전시되어 있다. 남연군을 이장할 당시에 쓰였던 상여를 광천리 사람들이 증여를 받아 보관해오다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이 되고, 이곳에는 2012년에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에 남은들 상여를 검색해 보면 광천리는 이곳에서도 12.0여 km 떨어져 있는 동네로, 광천리 입구 삼거리(덕산면 광천리 519-1)에도 남은들 상여 보호각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원래 광천리에서 보존하였던 상여를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되고, 복제품을 광천리로 보내지 않고 상가리 남연군의 묘역으로 옮겨 전시 중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보니 어렸을적에 보아왔..

제59편 ; 가야사지 터(예산 4)

1. 들어가며 남연군의 묘역을 조성하면서 폐사된 가야사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져오는 오래된 절이었다. 묘역 아래로 절터를 2012년 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굴조사를 진행 중인데, 현재는 7차 발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남연군의 묘역 아래로 넓은 공터가 가야사지 터인데, 그곳에서 불전지로 추정되는 건물을 비롯한 8채의 건물터가 발견 되었으니 대단히 큰 절이었음을 증명하고, 남연군의 묘에 부속되었던 건물터도 중복되어 발굴 됨으로인해 묘 이장에 의한 사찰의 홰손이 사실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잔디밭 위에 소나무와 각종 활엽수가 군데군데 그늘을 만들어 주고, 겨울 햇볕에 영화롭던 건물의 초석만 덩그러니 절터임을 말해준다. 요즈음은 각종 제향행사에 유교식과 불교식을 겸해서 진행하는 방식이 존..

제58편 ; 가야산 남연군의 묘(예산 3)

1. 들어가며 상가리 미륵불을 답사하던 중 건너편 작은 동산 위에 무덤이 있는 것이 보였다. 지도를 보니 남연군의 묘이다. 전국의 풍수가들이 답사하여 학습하는 코스 중 유명한 곳이라, 예전부터 나도 한번 방문하리라 마음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방문하지 못하였는데 우연치않게 기회가 온 것이다. 미륵불과 묘역까지는 직선거리로 500여m에 불과하지만, 차량을 옮길 필요가 있기에 아랫동네로 내려가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여 남연군 묘역에 주차를 시키고 경내로 들어갔다. 흥선대원군이 아버지의 묘를 경기도 연천에서 이곳으로 이장을 하게된 연유가 후손들 중에 왕이 나올자리라 하였다는데, 과연 풍수에 밝지 않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좋은자리임을 알 수 있겠다. 가야산 높은 줄기가 사방을 둘러쳐지고 남동쪽으로 수계가 빠져나가는 ..

제57편 ; 상가리 미륵불(예산 2)

1. 들어가며 덕산면 상가리는 남쪽으로 원효봉(해발 604.7m)과 서쪽엔 가야산(해발 678.2m)이 주봉을 이루고, 북으로 가면서 옥양봉(해발 621.2m)과 옥산으로 가는 고갯길을 내주고, 북동쪽으로 서원산(해발 473.2m)으로 산맥이 이어지며 남동쪽으로 덕산으로 통하는 길목을 내주는 형태의 지형을 가지고 있어 예전부터 명당자리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아버지묘를 이곳에 쓰고자 가야사라는 절을 폐사시켰다는 역사적 사실과, 병인박해 때 독일인인 오페르트가 1868년 덕산 구만포에 상륙하여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발각되어 달아난 사건 때문에 대원군이 더욱 쇄국정책을 쓰게 된 원인이 되었던 근원지이기도 하다. 상가리 미륵불이 가야사 경내에 위치하다가 폐철 당시 이곳으로 옮겨졌는지, 혹..

제56편 ; 석곡리 미륵불과 석탑(예산 1)

1. 들어가며 대천천과 지곡천이 삽교천으로 합류하는 곳의 평야지대 부근에 위치한 석곡리는 야트막한 구릉으로 형성된 지형을 가진다. 옛 절터가 마을회관 동쪽 150m되는 지점이라고 하니 용고길 옆 밭 부근(석곡리 389-1)인 것 같고, 폐사의 원인이 난리 중 화마라는데, 18세기 초이면 외세의 침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쟁에 의한 정국혼란으로 충청, 경상, 전라도에서 일어났던 무장반란인 '이인좌의 난(1728)'에 의한 홰철로 추측할 수도 있겠다. 옮겨진 불상의 높이는 대략 높이 250cm, 몸통 넓이 100cm이고, 몸통 두께는 40~50cm이며, 얼굴의 크기는 60~70cm로 4등신 정도로 몸통에 비해 얼굴이 크다. 머리에 보관을 썻는데 윗부분이 평평한 것은 보개를 얹기위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

제55편 ; 영인 신현리 미륵불(아산)

1. 들어가며 보령의 미륵모퉁이라는 미륵불에 대하여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해 주변의 미륵불및 석불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우선 근동의 기호지방에 있는 미륵불을 지자체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문화재로 등록된 미륵불의 조사하고, 아산과 예산 지역에 있는 영인 신현리 미륵불, 석곡리 미륵불, 상가리 미륵불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아산에 위치한 영인 신현리의 미륵불을 방문하기 위해 아산시 홈페이지에 기록된 주소인 '신현리 186번지'를 찍고 현장에 와서 보니 공사현장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근간에 공사 때문에 미륵불이 옮겨졌는지 당황스러웠는데,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버스정류장에서 야산쪽으로 들어서야 한다고 한다. 주민의 말대로 그 위치에 가서보니 미륵불이 남쪽을 향해 웃는 모습으로 서 있다. 지자체는 홈페이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