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대청도는 백령도에 비해 농경지가 적고 척박하여 살기가 고단한 세월을 감내했을 것 같다. 섬을 둘러보면서 본 논은 불과 몇 마지기 되지 않고, 밭뙈기들도 농가 주변으로 좁게 형성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섬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다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청도에는 아직도 당집과 같은 무속신앙이 존재함이 어업활동의 불안함을 신앙으로 이겨내려 하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백령도와 대청도는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두 섬 주민들 간의 긍지와 자부심은 서로 경쟁적인 인식이 배어있는 것 같은 말투가 자연적으로 스며 나옴을 대화속에 나타나기도 한다.
관광지로서 기반시설이 부족하여 불편한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편리함 보다는 불편함이 존재하는 여행이 추억에 오래 남는다는 설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요즘 대청도에는 홍어가 많이 잡히는데, 이 홍어들이 대부분 전라도쪽으로 팔려 나간다고 한다. 하기사 서해바다를 오르내리는 어족자원들이 중국어선에 잡히면 중국산이 되고, 대청도 어선이 잡아 홍도로 내려가면 홍도산이 되는게 아닌가? 전라도쪽은 홍어를 많이 삭히어 먹지만, 서해 5도에서는 싱싱한 그대로를 회로 먹거나 무쳐먹는 풍습을 가진다. 음식점 마다 홍어무침이 별미로 내놓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좀 쉬다가 옥죽 방파제로 나가 보았다. 작은 포구는 한가하게 어선 몇 척만이 정박되어 있고, 갈매기만 한적하게 잠자리를 찾아 헤매는지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린다. 포구에는 방갈로 비슷한 콘테이너가 여럿 설치되어 있는데 아마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로 쓰여지는 듯 하다.
군 초소가 군데 군데 있어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 같아 주춤거리며 방파제 끝으로 걸어가는데,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하늘과 바다를 수 놓는다. 한참동안 셔터를 눌러대며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대청도에서의 일몰을 제대로 구경하는 기회가 우연한 기회에 절묘하게 다가옴을 대청도가 준 선물이라 생각한다.
2. 참고자료
@ 어부상(漁夫像)
대청도는 옛부터 유배지로 이름난 곳이다. 고려 충렬왕때 중국 원나라 황제의 태자 신황이가 계모의 모함으로 태자의 근친 일백여 호를 데리고 대청도에 도착하여 정착을 하고 대궐을 짓고 생활하였다고 하여 이곳을 태자의 도읍지라 하며 대궐 앞에 우뚝 솟은 제일 높은 산을 삼각산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여기 대청도는 농경지가 척박하여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면서 살아가는데 이 어부상은 풍요한 삶을 위해 화합, 단결하여 힘차게 노력하는 섬 주민들의 염원을 표상하였다.(대청도 선진포구에 설치된 어부상의 현장 안내판 발췌)
@ 대청도 선진포 항구와 마을 전경
@ 옥죽 선착장 방파제에서 바라본 해넘이
@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정경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 붉은 태양이 구름에 절반 정도 가리워져 몽환의 목가적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 점점 어둠을 향해 빠져드는 밝음의 끄트머리
@ 오른쪽 백령도와 태양이 지는 곶의 너머에는 농여해변이 있다.
@ 대청도의 하루를 마감하는 옥죽 선착장의 해넘이 쇼는 내일도 이어질 것이다,
@ 다음 기회로 미루어 놓은 소청도를 여객선에서 바라보다.
'지역 외 유적지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43편 ; 최치원 역사공원(함양 2) (0) | 2023.09.22 |
---|---|
제42편 ; 상림원 최치원 신도비(함양 1) (1) | 2023.09.22 |
제40편 ; 서풍받이와 광난두해변(대청 4) (0) | 2023.06.29 |
제39편 ; 모래울 해변(대청 3) (0) | 2023.06.28 |
제38편 ; 농여해변(대청 2) (0) | 2023.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