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외 유적지 탐방

제37편 ; 옥죽동 해안사구(대청 1)

푸른나귀 2023. 6. 26. 20:06

1. 들어가며

 

    예전에 여객선을 타고 백령도로 들어려면 먼저 대청도에 들리게 되는데, 여객선에서 대청도를 바라보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곳이 새하얀 모래 언덕과 농여해변의 풀등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산자락을 덮고 있었던 모래 언덕이 보이지 않아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현장을 와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청도는 백령도와는 달리 평야지대가 없고, 높은 산(삼각산, 해발 343m)이 사방으로 골짜기를 내주고 둘러처져 있어 도로가 험하다. 현재 1,000여 세대로 인구 1,500명을 밑돌고 있는데 대부분 어업에 종사를 하고 있다.

 '대청도는 고려 충혜왕 1년에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가 11세 태자 시절에 600여명의 식솔을 거느리고 옥지포(현 옥죽동)로 유배되어 현재 대청초등학교 자리에 궁궐을 짓고 1년 5개월 간 귀향 생활을 하면서 삼각산과 소청분바위 등에서 경치를 즐기고 망향의 한을 달랬다고 한다. 고려인으로 원나라에 잡혀간 기씨는 왕궁에서 시중을 들던 중 황후가 되었고, 기황후는 30년간 황실의 주인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 하였다.(대청면 팜플렛 참조)'라는 역사적 흔적이 이야기로 전해지는 섬이다.

 

  대청도의 해안사구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파도를 일으켜 바닷속의 모래를 농여해변 쪽으로 밀어내어 풀등을 만들고, 풀등의 모래는 바닷물의 들고남에 농여해변으로 이동을 한다. 해변의 모래는 바람에 의해 사구 언덕을 형성 시키면서 산능선 쪽으로 계속 운반을 하여 넓은 모래 사막을 만들게 되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래언덕이 80년대 후반 방풍림을 조성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던 것이 30여년 지난 지금은 소나무 숲이 되었다. 그 숲이 모래의 유입을 막게 되자 예전에 온 산능선이가 모래 사막이었던 것이 초지로 변하면서 세를 위축시키고 있는 형편이라 여객선에서 보이지 않았음이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해안사구의 형성을 보존하여야 한다는 자연보호의 타당성과 모래 바람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불편이 어느 선에서 조절이 되어야 서로 윈윈하는 방책이 될까? 초지로 변하여 가는 대청도의 해안 사구를 바라보며 다시 30년 후에 찾아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걱정이 앞선다.   

 

 

2. 참고자료

 

    @ 소나무숲과 모래사막

        대청도는 예로부터 "옥죽동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을 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으로 모래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80년대 후반부터 해안가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러자 모래로 인한 피해는 줄었지만, 사구 형성의 사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힐링숲길 안내판 발췌)

 

    @ 경이로운 모래사막

         한국의 '사하라 사막' / 길이 약 1.6km / 폭 약 600m / 해발 40m / 옥죽동 사구는 오랜세월 모래가 바람에 날려 이동하면서 거대한 모래 산을 이루었으며, 계절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는 활동성 사구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모래사막이라는 점만으로도 이곳은 참으로 흥미로운 곳이다. (주차장 부근 안내판 발췌)    

 

   @ 대청북로에서 해안사구 힐링숲길로 들어서는 입구에 설치된 목조 다리

   @ 산책로 우측 산 능선이 쪽으로 펼쳐진 해안 사구엔 방풍림 조성 결과로 해안 모래 유입이 원활하지 않아 초지로 변하고 있다.

   @ 마치 모래 사막의 일부분인양 모래 언덕을 형성하고 있는 해안 사구

   @ 낙타 조형물을 설치하여 사막에 와 있는 착시 현상을 음미하게 한다.

   @ 힐링숲길 중앙 주차장 부근에서 바라본 해안 사구

   @ 동쪽 전망대인 정자에서 바라본 해안 사구의 전경으로 초지로 변하는 모습이 아쉽다.

   @ 옥죽 선착장에서 바라본 옥죽동 해안사구

   @ 대청면사무소 주차장 벽에 실사된 모래사막 식목행사 사진(1975, 1976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