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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편 ; 백제부흥운동의 흔적기행(2, 홍성의 학성)

1. 들어가며 몇 해전에 봉수산의 임존성(제29편; 백제부흥군의 정기 어린 임존성, 2019.4.1)을 답사하였으나, 오서산의 '도독의 성'이 백제부흥운동의 일환으로 축성되었을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아 보았다. 백제가 멸망하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백제의 유민과 왜와 연합한 부흥군과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를 치뤘던 주류성의 위치가 인접한 홍성의 학성산성이라는 설에 그곳을 답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두루미城 =두루성=鶴城 =周留城'이라는 논리에 어느정도 일치 하는지 궁금하기도 해 발길을 재촉 하였다. 학성의 위치는 사운고택 뒷편 산으로 지방도 619번과 지방도 96번이 교차하는 장곡면 산성리에 위치한다. 지리적으로 부여나 공주에서 예산이나 당진쪽으로 지나가는 조선시대의 '금정도'가 중..

보령의 산(제24편 ; 만수산 장군봉)

1. 들어가며 만수산은 보령땅과 부여땅을 경계로 하면서 외산면 만수리를 포란형으로 감싸안고 둘려처진 형국의 산세를 하고 있다. 대체로 보령사람들의 만수산 산행길은 성주면 화장골 휴양림에서 임도를 따라 계곡으로 올라가서 만수산 전망대를 들른 후에 무량사 뒷편의 능선길을 이용하여 편백나무 숲을 지나 원점회귀하는 등산길을 이용을 한다. 한참 젊은 시절에 수리바위에서 부터 만수산 능선을 따라 정상을 밟은 후에 태조암으로 하산 하였던 기억이 남아 그 발길을 되짚어 보려 했으나 행하지 못하고 몇 십년 만인 오늘에서야 발길을 하게 되었다. 애마를 수리바위 캠프장에 세우고 계곡따라 우뚝한 암벽을 바라보니 의문이 남는다. 수리바위라는 명칭은 안양에 있는 수리산의 봉우리처럼 바위의 형상이 독수리의 머리처럼 붕긋하게 솟아오..

보령의 산 2022.01.05

제128편 ; 백제부흥운동의 흔적기행(1)

1. 들어가며 오서산 중턱에 위치한 '도독의 성'이 백제부흥운동시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인식하고는 주변의 백제부흥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서천의 금강입구에는 기벌포 1,2차전으로 백촌강 전투를 설명하고 있고, 예산 봉수산의 임존성은 백제부흥운동의 주력 산성으로 기록되어 있어 금강하류와 임존성에서의 항거가 당연하다고 인식해 왔는데, 좀더 살펴보니 위치비정에 이론(異論)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학자와 그를 계승한 학자들 사이에 부흥운동시 항전의 장소로 주류성의 한산설(건지산성)과 백촌강의 금강하류설이 우세하였으며, 주류성을 부안 변산반도에 있는 위금암산성이며 백촌강은 동진강이라는 설, 그리고 김정호의 대동여지에 의한 홍주읍성이 주류성이라는 설, 그리고 향토사학자에 의한 보령의 웅천천을 백강..

제127편 ; 청라 신산리 고인돌

1. 들어가며 예전에 청라에 남아 있는 고인돌을 답사하면서 (제110편 ; 청고을에 남아 있는 고인돌 참조) 신산리 고인돌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답사를 차일피일 미루게 되어 한 해가 지나가게 되었다. 그 글에서 대보문화 6집을 인용하여 ≪ 신산리 고인돌 ; 청라면 신산리 143-3번지의 서북쪽 끝 도로변에 1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곳은 낮은 구릉의 말단부로 구릉과 평지가 접하는 곳이다. 해발고도는 110m정도이지만 주변과의 차이는 3~4m밖에 되지 않는 언덕이다.≫라고 간략하게 설명하였었다. 대부분의 고인돌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들판에 널브러저 잡목속에 덩그러니 있으려니 생각하며 인터넷 지도를 로드뷰로 검색하여 보니 이곳 또한 잡목과 풀섶으로 뒤덮여 있음을 확인하고 늦가을 낙엽이 지면 찾으리라 마음을 ..

보령의 산(제 23편 ; 오서산)

1. 들어가며 오서산(해발 790.7m)은 지리적으로 충남의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자락을 펼쳐 내포지방을 품어 주기도 하고, 그 중심에 만세보령의 정기를 복돋아 주는 명산이다. 이 산줄기에서 발원한 대천천과 광천천은 비옥한 토지를 적시며 서해로 급하게 빠져드는 형상이나, 청양의 화성땅으로 흘러든 무한천은 예당저수지로 흘러든 후에 예산, 당진의 벌판을 적셔주곤 아산만을 향해 북으로 완만하게 달린다. 또한 홍성쪽의 산자락 물줄기는 삽교천으로 흘러들어 내포평야를 기름지게 하고 무한천과 합류하여 아산만으로 흘러들게 하니 오서산의 정기가 내포지역을 감싸안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뚝 솟은 오서산의 모습이 동쪽의 청양땅이나 홍성의 북쪽, 또는 보령의 남쪽에서 바라다보면 삼각형 모양으로 높게 솟은 모습을..

보령의 산 2021.12.24

제 126편 ; 미산 보령댐 애향 박물관

1. 들어가며 청천저수지를 상수원으로 하던 보령지역의 수원지를 광역화하여 내포지역을 아우르는 급수난과 공업용수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부터 1998년 까지 보령댐을 건설하였다. 성주산의 깊은 계곡과 아미산과 양각산으로 감싸안은 형국의 지형은 백제시대부터 서해바다에서 백제도성으로 통하는 주요한 길목으로 통일신라시대 성주사로 향하는 믿음의 길이기도 하였다. 웅천천을 따라 뱃길이 댐이 설치된 곳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상류쪽으로는 달구지를 이용하여 협로를 통하여 성주와 무량, 그리고 홍산,부여, 공주로 교류가 이루어졌으리라 본다. 양각산과 중매산의 협곡을 막아 보령댐을 세우면서 미산면의 평라리, 용수리, 풍계리,봉성리를 터전으로 삼고 살던 많은 이들이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만 하였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위..

제125편 주산 동오리 선돌과 고인돌

1. 들어가며 보령에서 발굴된 고인돌 중에 규모가 가장 큰 것은 동오리 선돌마을에 있는 덮개돌로 가로 775*세로 470 * 높이 180cm 정도로 무게가 개략 160톤 가량이 될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렇게 큰 고인돌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청동기 시대에, 웅천천을 주변으로 한 강력한 지배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겠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좌측 밭으로 선돌 하나가 우뚝 서있고, 우측으로 고인돌이 논 가운데 앉아 있으며 몇 기의 고인돌이 더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선돌과 고인돌에 전해지는 마을 전설에 의하면, 옛날 옥녀(갱구 할멈)가 앞치마에 바위를 싸들고 고깔모양 바위를 머리에 쓰고, 지팡이를 짚고 산을 내려오다가 치마가 찢어지는 바람에 떨어트린 바위가 마당바위가 되었으며, 고깔모양 바위는 고깔바위로, ..

밤비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꿈결 속에 헤매다 뒤척거린다. 언뜻 지나간 청춘이 언제였는지 매듭을 이어가는 한줄기 인생을 오늘도 빗소리에 놀라 다시 이어간다. 가느다란 거미줄에 바동대며 탈출하려는 잠자리와 명주실 뽑아내며 옭아매려는 거미가 끈을 놓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거미줄 같은 삶의 이어감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으며 살아간다. 다시 잠들기 어려운 밤의 전령이 창문을 서성이며 줄다리기를 조르고 있는 중이다. * 작가와 문학 20호(2021.10) 기고 작

서정시(탈고) 2021.10.18

가설극장

장마당이 높은 광목천으로 가려지고 북과 나팔을 울리며 한 무리 광대가 마을을 돈 후엔 달님도 깊은 잠에 빠져들고 별빛 어스름한 논두렁 길 어른, 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잰걸음 소리에 놀라 풀벌레 개구리울음 멈추게 하고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 빗줄기 퍼붓는 장막에 부딪혀 화면이 춤을 추어도 눈물 그렁그렁 두 눈 반짝거리던 ‘저 하늘에도 슬픔이’ 살짝 열어둔 창문 틈새로 고해 속 뒤척임에 빠진 아스라이 건너편 그 개구리 그날처럼 함성 지르며 장막 속으로 어여 오라 하네. * 어여 ; ‘어서’의 사투리 * 작가와 문학 20호(2021.10) 기고 작

서정시(탈고) 2021.10.18

보령의 산(제 22편 ; 옥마산)

1, 들어가며 금북정맥 중 성주지맥의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옥마산은 해발 599m로 서해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성주지맥의 백월산부터 성태산, 문봉산, 성주산, 장군봉, 옥마산, 봉화산, 잔미산, 화락산을 잇는 능선길 중에서 발길을 하지 못한 옥마봉에서 말재까지 3.3km의 능선길을 오늘에서야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옥마산은 백제시대 호국의 터였고, 신라 말 경순왕의 애닮픔이 서려있는 명산으로, 지금은 서해바다를 항해하는 어선들의 등대 역활과 보령시내를 감싸안으면서 서해바다와 하늘을 지키는 기지로 군부대가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맞이해 지난 여름동안 더위와 농삿일로 못하였던 산행을 다시 시작하기로 하였다. 옛날 성주로 넘어가던 바래기재의 초입새인 대영사 입구에 차를 세우고, 옥마봉을 향하는 ..

보령의 산 2021.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