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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산(제29편 ; 만수산 비로봉)

1.들어가며 설 연휴를 맞이해 심연동으로 향하였다. 올 초 만수산 장군봉을 들르면서 비로봉까지 산행하려 하였으나, 잔설이 남아있어 중간에 무량사쪽으로 하산 하였었다. 이번엔 심연동 골짜기 능선을 따라 전망대를 거쳐 비로봉을 찍고, 상수리재를 경유하여 임도로 물탕골 정수장으로 하산 하기로 예정하고 발길을 시작하였다. 심연동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개울 돌다리를 건너 가파른 경사의 능선길을 올라탄다. 몇 년전에 이 길로 올라본 적이 있는데 중간에 가랑잎에 산행로를 이탈하여 잠시 혼쭐이 날 뻔하였다. 산행인들이 자주 찾는 길이 아니라 구간구간 희미한 산행길이 길을 잃게 만드는 모양이다. 주차장 150고지에서 능선 550고지까지 가파르게 숨을 몰아쉬며 오르니 500능선으로 완만하게 오르내리게 된다. 화장골에서 심..

보령의 산 2022.01.30

제134편 ; 오천 선림사 불상

1. 들어가며 선림사(禪林寺)는 마곡사(麻谷寺)를 본사로 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의 말사이다. 오천 소성리 도미부인사당 주차장에 들어서기 전 직진을 하면 천년고찰 선림사에 닿게 된다. 입구인 일주문에는 '오서산 선림사(烏棲山 禪林寺)'라는 현판이 달려있어 근동으로 오서산의 정기를 배후로 한 사찰임을 밝히고 있으며, 도미부인의 설화가 깃들인 상사봉 아래 오천항 내륙 깊숙히 들어온 만(灣)을 바라보며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 대웅전안 불단에는 충남 도유형문화재로 등록된 '선림사 목조관음보살좌상(禪林寺 木造觀音菩薩坐像)'과 '선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禪林寺 木造釋迦如來坐像)'이 모셔저 있는데, 조선 후기시대의 작품으로 제작자는 미상으로 불단 중앙에 모셔저 있는 목조석가여래좌상과 우측으로 모셔진 목조관음..

제133편 ; 보령 학성리 공룡발자국 화석

1. 들어가며 인류가 경험한 빙하기로는 2만 년 전 쯤에 일어난 것으로 그때에 베링해협을 통하여 아메리칸 인디언의 조상들이 아시아대륙에서 옮겨 갔다고 한다. 빙하기에는 중국대륙과 한반도가 육지로 연결되었고, 서서히 온난화로 간빙기가 되면서 빙하가 물러나 해수면이 상승하게 된다. 학성리의 지층이 8500만 년 전에 형성된 퇴적층이라 연구되고, 그 퇴적층 위에 공룡의 발자국이 찍혔다고 하니 겨우 백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선 시간의 무게를 가늠하기 힘들다. 몇 해 전, 학성리 공룡발자국 화석이 도기념물로 지정 되었다고 들었지만 물때를 맞추어야 하고, 지리적으로도 조금 떨어져 머뭇거리다가 시간이 흘러가고 말았다. 천북지역을 돌아보는 기회에 가장 물이 빠져나가는 물때를 맞추어 현지에 도착하였다. 평일이라 답사객..

보령의 산(제28편 ; 오천 상사봉)

1. 들어가며 서울에 살던 시절 보령향우회의 고향나들이 행사로 오천 도미부인사당 둘레길을 걸어본 것이 벌써 15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후 영보정과 도미부인 사당은 몇번 더 찾아보았지만 둘레길(솔바람길)은 발길을 잊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오천을 지나가면서도 산 중턱에 설치된 해안경관 조망대를 눈으로만 바라보고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큰맘 먹고 둘레길을 다녀오고자 발길을 하였다. 도미부인 사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소성리 읍내쪽으로 난 완만한 임도를 따라 산허리를 굽어도는데 솔바람길의 전체 거리는 약 4.5km 정도이며, 전망대까지는약 2.3km에 해당된다. 평일임에도 산책길을 거니는 사람들이 이따금 마주친다. 차량이 통행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산행길은 오른쪽으로 오천항과 보령방조제를 전망하며 걷기에..

보령의 산 2022.01.24

보령의 산(제27편 ;천북 봉화산)

1. 들어가며 천북땅은 서해바다의 원산도를 비롯한 여러 도서와 함께 구한말 홍성땅에서 보령땅으로 흡수된 지역이다. 보령과 남포가 통합될 당시 오천은 현감보다도 직위가 높은 충청수영 수사가 임용되어 관할하던 지역으로 주민의 자존감이 유난히 높았다. 이에 오천은 홍성목에서 관할하던 천북과 충청수영이 관할하던 서해바다를 끌여들여 오천군을 만들게 되고, 일제시대 때 세군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보령땅이 된, 보령으로 보아선 은혜로운 땅이라 할 수 있겠다. 지리적으로 오서산에서 흘러내리는 광천천과 홍성군내에서 흘러내리는 금리천으로 감싸안고 둘러쳐진 형국의 퇴적층으로 인해 농토가 기름지고 서해의 풍부한 어족자원으로 풍요로운 동네로, 낮은 산과 구릉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면내 중앙부에 주산인 봉화산(해발 20..

보령의 산 2022.01.24

보령의 산(제26편 ; 청라 오봉산)

1. 들어가며 '70년대 초, 옥계와 황룡리에 살던 아이들이 진당산과 오봉산 사이 고갯길로 걸어서 주포에 있던 보령중학교에 통학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귀향한 후에 들었었다. 지금의 국도로 질재를 통하여 가늠해도 고갯길 8.5km이니 새벽밥을 먹고 다녀야 하는 고된 통학길이었을 성 싶다. 그래서 그들은 논길과 고갯길을 이용한 짧은 길을 선택하다보니 진당산과 오봉산의 허릿길을 삼년씩이나 다녔을 것이다. 고향산 둘러보는 것을 시작하면서 오봉산(해발 272.1m)에 올라보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제대로 된 등산로가 없다는 것을 알고 미루기만 하였다. 선지자들이 기록해 놓은 산행로가 인터넷으로 검색이 되지만 대부분 등산로가 구비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암서원 윗쪽 시궁골길에서 능선을 타고 오르는..

보령의 산 2022.01.22

보령의 산(제25편 ; 청소 아차산)

1. 들어가며 오서산 상봉에서 서쪽으로 허리를 굽히다가 던목고개에 허리를 내주고 아차산으로 솟아올라 북쪽으로 산맥을 이끌면서 광천읍내로 빠져드는 산세를 이룬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광천읍내 관음사에서 아차산(해발 423.9m)을 경유하여 오서산에 오르는 길을 택하게 되는데 헬기장 부터 산행길 우측으로는 보령땅이며 좌측으로는 홍성땅이다. 이번 산행길은 청소면 성연리 용못 조금 위에 위치한 성당길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던목고개를 거쳐 아차산 정상을 밟은 후에 회귀하는 길에 문수골 마을로 하산하는 것으로 하였다. 성당길 입구에서 문수골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길인데, 몇 일전에 내린 눈이 드문드문 녹지 않은 부분이 있고, 우측의 성당제는 얼음이 얼어 새하얀 눈밭을 만들고 있었다. 문수골 입구에서 우측으로 콘크리트..

보령의 산 2022.01.22

제132편 ; 백제부흥운동의 흔적기행(4)

1. 들어가며 흥미를 갖고 옛사람들의 흔적을 쫒다보면 수 많은 가설들을 만나게 된다. 현재라는 시각에서 옛 사람들의 흔적을 6하 원칙에 따른 정확성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함이 따르기에 정통사학과 민족사학이 대립된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저 흥미를 갖고 흔적을 찾아보는 일반인에게는 모든 이야기들이 그럴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수용하게 된다. 꼭 사실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들여다 보면 흥미를 잃게 되기에 상상의 나래를 펼 수가 없을 것이다. 백제부흥운동을 잠시나마 들여다보니 천오백 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적은 세월이 아니며, 그 시대를 살아 온 백성들의 생각들을 읽어낸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라 생각이 든다. 책으로 읽어보는 역사는 사람에 따라 시기나 위치의 비정이 서로 다르..

제131편 ; 고운 최치원선생의 유적지(장곡 마애금석문)

1. 들어가며 어린시절 내가 살던 고향의 냇가에도 작은 바위가 있었다. 온종일 동무들과 미역을 감으면서도 그 바위에 암각된 글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데 한 갑자 지난 근래에서야 200여 년 전에 새겨진 금석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제31편 ; 도화동 문(桃花洞 門), 2019.4.6 참조) 보령땅에는 최치원 선생과 관련된 유적으로 성주산 성주사지에 세워진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와 남포방조제부근 보리암 유적지가 있다.(제18편 ; 육지로 변한 보리섬(최치원선생 유적지),2018.12.30) 최치원 선생은 합천 해인사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저 있으나, 홍산의 무량사 뒷편에 뭍혔다는 설과 홍주의 쌍계계곡 주변에 뭍혔다는 이설들 등이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 홍주의 쌍계계곡에 있던 최치원 선생의 묘..

제130편 ; 백제부흥운동의 흔적기행(3, 홍성 장곡산성)

1.들어가며 오전에 학성을 둘러보고 주류성의 위치가 장곡산성이라고 하여 여기까지 온 김에 광시로 가서 갈비탕 한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대현리에 들어서 장곡산성으로 향했다. 도로변에 안전하게 차를 주차하고 마을로 들어서니 산성으로 가는 콘크리트 포장이 문지까지 경사지게 이어져 있다. 문지에 들어서기 전에 성벽에서 무너져 내린 돌덩이들이 넝쿨식물과 잡목에 가리어 얼굴을 드문드문 내밀며 내게 천 오백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말하려고 하는 것만 같다. 고갯마루엔 주류성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660년, 백제의 사비성과 웅진성의 나당 연합군에게 함락되자 백제부흥운동을 펼쳤던 성이다. 왜에 있던 풍(豊) 왕자를 모셔와 왕통을 잇고 주류성을 왕성으로 삼아 백제부흥운동을 맹렬하게 전개했던 곳이다. 주류성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