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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편 ; 성주사지 (2, 보령 성주사지 삼층 석탑)

1. 들어가며 신라의 석탑이 화려함과 웅장함의 극치를 보여준다면, 백제의 석탑은 단아하면서 우아함을 보여준다. 성주사지 금당지 후편에 위치한 3기의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면서도 백제탑의 형식을 배제하지 않은 지역적 특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신라시대 보편적인 가람 형식을 벗어나 금당 후편에 3기의 석탑을 다시 세운 것은 극히 파격적인 행위라 볼 수 있다. 왜 그들은 보편성을 배제하고 독특한 구도로 이 탑들을 세웠을까? 성주사지 천년 역사관의 자료에 의하면 중건기 성주사에서 「 창건기 성주사는 13세기 중엽 화재로 인하여 절 내부의 상당수 건물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실된 성주사는 '대덕5년(1301)'이 새겨진 청동 광명대나 청자 편 등의 유물을 통해 13세기 후반 경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제141편 ; 성주사지 (1, 창건기의 성주사지)

1.들어가며 성주사지 천년역사관을 관람하고 오랫만에 성주사지를 살펴 보았다. 참 많은 발길을 하였지만, 차분하고도 세세하게 훓터본 것이 언제인지 집에 돌아와 블로그를 살펴보니 대충 관람한 답사기 뿐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을 모시던 금당을 중심으로 한 일탑일금당의 배치로 본 창건기의 성주사지 유물을 한 편으로 하고, 금당 후편 후기에 세워진 3기의 탑으로 한 편으로 하고, 성주사 대낭혜화상비를 또 한 편으로, 또 오층석탑 앞에 세워진 석등과 강당 오른쪽에 세워진 석불입상을 한 편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적지의 답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전에 그 지식을 찾아 알아보고, 현장에서 역사해설가의 설명을 꼭 들어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 지역의 역사는 그 지역 역사해설가 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순서를 ..

제140편 ; 성주사지 천년 역사관

1. 들어가며 몇 해 동안 성주사지 앞길을 지나치면서, 한동안 역사관을 건립하는 공사현장을 바라보며 언제, 어떻게 개관을 할 것인가 궁금하였는데, 올 봄 드디어 개관을 한다고 하여, 비 그친 토요일 오후에 시간을 내 찾아 보았다. 천년 역사관은 2000년도 부터 사업비 약 70억원을 들여 지상 1층에 연면적 917m2(약 278평) 규모로 홍보실, 영상 체험실, 어린이 전용 체험관, 휴게실 등으로 구성하여 금년 3월 21일 기관장들과 함께 개관식을 하였다고 한다. 홍보실을 들어서니 정면에 성주사를 축소 복원한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고, 벽면에는 성주사의 역사와 가람 배치, 또한 발굴을 통한 유물들을, 사진과 화면을 통해 학습할 수 있도록 전시장이 꾸며져 있다. 올해 유월까지는 개관을 기념하여 무료로 관람..

보령의 산(제33편 ; 주산 장태봉)

1. 들어가며 2020년 12월부터 2022년 3월까지 보령지역의 높고 낮은산 39개소 정상을 밟아 보았다. 처음에는 개략 보령의 산이 30개소 정도 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직도 밟지 못한 산들이 이름을 달고 있으니 계속 발걸음을 해야 할까보다. 육지쪽에 있는 남은 산들은 등산로가 없기에 개척산행을 해야 할 것이고, 섬지역의 산들도 차츰 시간을 내서 다녀와야 할 터인데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느긋이 하기로 한다. 미산의 옥녀봉을 찍고, 주산의 장태봉으로 향하였다. 장태봉은 보령의 주산면과 미산면, 서천의 비인면과 경계하는 해발 365.5m의 산이다. 미산면사무소를 지나 주산으로 향하는 간재를 올라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고갯마루에서 등산로로 들어섰다. 산행객이 별로 없어서인지 산행길은 낙엽으로 수북하..

보령의 산 2022.03.21

보령의 산(제32편 ; 미산 옥녀봉)

1. 들어가며 보령의 미산면과 부여의 옥산면을 경계로 하는 옥녀봉은 해발 367.9m로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소가 누워있는 것처럼 나지막한 지형으로 이루어졌다. 옥현리 모과나무골과 남은재골에서 시작하는 등산로가 있는데, 남은재골 시내버스 종점에 차를 세우고 들머리인 비닐하우스 옆 밤나무 단지로 들어섰다. 동네 개들이 외지인을 경계하는지 꽤나 짖어댄다. 밤나무 단지의 위쪽으로 향하니 꽤나 커다란 발자욱이 엊그제 내린 비로 도장을 찍듯 흔적을 남겼다. 주변을 주둥이로 헤집어 놓은 폼이 멧돼지가 시시때때로 마을까지 내려오는 모양이다. 옥녀봉의 산자락을 감아도는 임도를 만났는데, 능선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보이질 않는다. 잠시 잡목이 덜 우거진 소나무밭을 개척산행 하여 등산로에 도달한다. 능선로에는 제법 산행객들이..

보령의 산 2022.03.21

제139편 ; 미산 열녀 장씨 정문각

1. 들어가며 미산면사무소에서 내평리 쪽으로 약 400m 정도 가면 도로 우측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인 정려각이 늦은 시기에 건축되어서인지, 혹은 마을과 집안에서 잘 관리한 탓인지 아름답게 세워져 있다. 보령은 예부터 양반동네로 알려졌 듯이 정려각이나 열녀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는데 이곳의 정려각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미산에는 용수리를 비롯한 깊숙한 산세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쌓고 제자들을 길러낸 학자들이 많았다. 초기 성리학의 대가 이제현 선생이 이곳에 자리하였음은 그 사상들이 이곳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공자가 이상국가로 생각했던 주나라를 닮고자 사상을 구축하며 이상향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지만, 공자의 꿈은 중원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한반도로 건너..

백운거사 이규보

1. 농민의 눈물을 시에 담아낸 이규보 망년회 회원들은 불우한 가운데에서도 한 시대를 진작 시키는 문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는 의식은 부족했다. 또 중국의 고사와 문체를 따르기에 열중하여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비평을 듣는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한 문인은 이들보다 훨씬 길게 활동한 이규보이다. 이규보의 아버지 이윤수는 여주의 토착세력인데 개경으로 와서 낮은 벼슬을 종사하였다. 이규보는 개경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릴적 이야기를 쓸 때 개경을 배경으로 하였다. 이규보는 20세 이전에 과거를 세 번 보았으나 번번히 낙방하였다. 한미한 집안 탓도 있겠지만 그의 말대로 술을 퍼 마시며 방탕하게 생활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세 초반에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좋은 자리를 주지 않아 사직..

제138편 ; 외연도 수호신 전횡(田橫) 장군

1. 들어가며 우리 지역의 섬 외연도에는 '보령 외연도 당제'를 매년 음력 2월 15일에 지내고 있다. 이 당제는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 54호로 2017년 12월에 지정이 되었는데, 당제(전횡장군 사당)과 산제(산신당), 용왕제후 안당고사(마을 어귀) 순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외연도 상록수림 내에 외연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2천 여년 전 산둥반도 주변에 위치했던 제나라의 전횡장군을 풍어의 신으로 추앙하면서 위패를 모시고 있었는지 궁금하여 짬짬히 자료들을 모아보았다. 제나라를 이끌던 전횡장군이 항우와 한고조에게 패망을 하고 그를 따르던 오백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산동반도 앞의 섬(전횡도)으로 피하였다고 하는데, 결국 한고조의 부름을 받고 낙양으로 가는 도중에 자결을 하게된다. 전횡도에 남아 있던 그의 ..

제137편 ; 토정선생의 자식들

1. 들어가며 '조선의 수퍼스타 토정 이지함'의 저자는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보령시 천북 출생의 이태복이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서고에 꽂혀있는 이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문구의 '토정 이지함'을 읽어본 것이 오래전의 일인데 저자 역시 이문구의 책을 여러 도서 중에 자료로 이용하여 이 책을 발간한 것이다. 토정선생이 보령의 인물임을 익히 알고 있지만, 고만에 웃대의 묘를 쓰면서 자신에게는 운이 닿지 않음을 알면서도 후대 집안의 번영을 위해 자기 희생을 치루었다. 형들의 집안에서는 산해와 산보가 조정으로 나가 이름을 떨치었으나, 자신에게는 안타까움만 후세에 전해진다. 이 책에서 토정선생 직손들의 불운했던 인생 이야기가 펼쳐저 선생이 살아가던 시대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보령의 안물 중에 ..

제136편 ; 천덕산 가교비

1. 들어가며 미산면 도흥리는초입새인 봉성리 삼거리로부터 아미산 골짜기인 백제골을 비롯해 도흥천을 따라 월명산과 천덕산으로 둘려처진 10여 리 길의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어 있다. 아마도 70년대 전 만해도 빈농을 벗어날 수 없었던 산촌이었을 것 같다. 우연히 천덕산 가교비를 답사하면서 '도흥리에 있던 한 사찰의 스님이 이 길을 개척하고 이곳에 돌다리를 놓은 뒤 비문을 새겨 두었다'라는 안내판의 글을 보고 지도를 놓고 한참이나 생각해 보았다. 불가에서 덕을 쌓는 일 중 가장 큰 것이 길을 내거나 냇가에 징검다리를 놓는 일을 큰 보시로 생각하였다. 큰돌을 옮겨 징검다리를 놓거나, 통나무를 엮어서 나무다리를 설치하는 일은 개울을 건너던 동네사람들이 모여 두레로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화강암으로 교각을 설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