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40편 ; 성주사지 천년 역사관

푸른나귀 2022. 3. 26. 16:47

1. 들어가며

 

  몇 해 동안 성주사지 앞길을 지나치면서, 한동안 역사관을 건립하는 공사현장을 바라보며 언제, 어떻게 개관을 할 것인가 궁금하였는데, 올 봄 드디어 개관을 한다고 하여, 비 그친 토요일 오후에 시간을 내 찾아 보았다.

 천년 역사관은 2000년도 부터 사업비 약 70억원을 들여 지상 1층에 연면적 917m2(약 278평) 규모로 홍보실, 영상 체험실, 어린이 전용 체험관, 휴게실 등으로 구성하여 금년 3월 21일 기관장들과 함께 개관식을 하였다고 한다.

 홍보실을 들어서니 정면에 성주사를 축소 복원한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고, 벽면에는 성주사의 역사와 가람 배치, 또한 발굴을 통한 유물들을, 사진과 화면을 통해 학습할 수 있도록 전시장이 꾸며져 있다.

 올해 유월까지는 개관을 기념하여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추후로는 관람료를 받을 예정이라 하였다.

 

 역사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봄비에 잔디가 푸릇하게 오름을 느끼면서 성주사지를 돌아본다.

 역사관의 의미는 학습관 뿐만 아니라 박물관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수 많은 사업비를 들여 건축물은 번듯하게 지어놓고 내실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아마 지자체에서 추후에 알차게 꾸며가리라 믿지만, 그때까지 외지에서 성주사지를 답사오는 관광객들의 불평이 걱정스럽다.

 지난 시절 보령시에서 불교단체와 협의하여 성주사를 복원해 굴지의 사찰로 조성하여, 지역발전에 크게 향상 될 것으로 보고 사업을 추진하다가 무산된 적이 있는데, 나는 무산된 것이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복원이라 함은 고증이 충분하게 이루어져 과거의 양식과 방법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야 하는데, 그것을 상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질 않는다.

 무리하게 복원을 하느니 무너졌으면 무너진 채로, 타버렸으면 타버린 채로 그 현상 그 자체로의 보전도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복원된 성주사 보다는 스러져간 성주사지가 더 역사적으로는 중요하다고 본다.

 

 역사관으로 이름하는 명소에는 서대문 형무소가 있다.

 그곳에도 각종 미니어처나 마네킹, 학습을 위한 패널이 전시되어 교육의 자료로 크게 활용된다. 하지만 형무소로 사용되던 시절의 각종 물품과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어 한눈에도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역사관을 교육관의 수준을 넘어 박물관으로써의 효율을 극대화 한 것이다.

 성주사지 천년역사관은 천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낸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는 장인데, 사진과 미니어처만으로 내부를 채우기엔 너무 부족하다. 성주사지 발굴 조사현황을 보니 11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는데, 어찌 유물 한 점 전시하지 못한 것일까?  발굴조사한 학계의 수장고에는 햇볕을 보지 못하는 성주사지의 유물들이 그득할 것이고, 하물며 보령박물관의 수장고에도 적잖게 있을텐데 왜 직접적인 유물들을 확보하지 못하여 사진과 영상으로만 대체 했을까?

 얼마전 학성리 공룡 발자국을 보러 갔다가 바닷가에 세워진 플라스틱 공룡 모형만 보고 온 씁쓸함이 여기서도 느껴졌다.

 성주사지 역사관이 학습관의 역활은 물론, 박물관으로써의 기능을 함께하길 바라면서, 역사를 이어주는 유물들은 발굴된 지역에서 보존해야 그 가치가 더욱 상승한다는 개념으로 수장고 속의 유물들을 회수하는데 노력해야 하고 전시되어야 마땅하다.

  

  

2. 성주사지 천년 역사관 

 

      @ 위치 ;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104 (성주사지 남서쪽 부지)

 

 

   @ 성주사지 천년역사관 전경

   @ 성주사지 천년역사관 전경

   @ 내부 성주사의 역사 게시물

   @ 전시실 성주사 미니어처 복원물 측면

   @ 전시실 성주사 미니어처 복원물 정면으로 일탑일금당 형식이다.

   @ 일탑일금당 형식의 가람으로 초기에는 목조탑으로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 화재로 인하여 한동안 폐사가 되다시피 하다가 우측으로 삼천불전을 더한 중건기를 거쳤다.

   @ 발굴조사 현황에 대한 판넬

   @ 신라 말기 선종의 구산선문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