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41편 ; 성주사지 (1, 창건기의 성주사지)

푸른나귀 2022. 3. 26. 18:20

1.들어가며

 

  성주사지 천년역사관을 관람하고 오랫만에 성주사지를 살펴 보았다.

 참 많은 발길을 하였지만, 차분하고도 세세하게 훓터본 것이 언제인지 집에 돌아와 블로그를 살펴보니 대충 관람한 답사기 뿐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을 모시던 금당을 중심으로 한 일탑일금당의 배치로 본 창건기의 성주사지 유물을 한 편으로 하고, 금당 후편 후기에 세워진 3기의 탑으로 한 편으로 하고, 성주사 대낭혜화상비를 또 한 편으로, 또 오층석탑 앞에 세워진 석등과 강당 오른쪽에 세워진 석불입상을 한 편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적지의 답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전에 그 지식을 찾아 알아보고, 현장에서 역사해설가의 설명을 꼭 들어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 지역의 역사는 그 지역 역사해설가 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순서를 기다리더라도 요청을 해 역사적 배경과 전설을 비롯한 역사적 사실을 들어볼 수 있다.

 

 백제시대 가람(절,伽藍)은 대부분 '일탑일금당(一塔一金堂)' 형식으로 배치 되었다.

 그 영향이 통일신라에도 영향을 끼쳤으나, 이탑일금당(二塔一金堂, 예 ; 불국사) 형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가람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탑과 부처님의 존불을 모시는 금당은 그 절의 정신적인 중심이 된다.

 백제의 '오합사(615년)' 시기와 신라시대 무염대사가 847년에 조성한 '성주사' 시기에는 '일탑일금당'의 형식을 취한 가람으로 배치 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성주사지의 주탑은 백제시대 목탑에서 어느 시기에 신라의 석탑으로 바뀌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탑일금당(一塔一金堂)' 형식으로 세워진 성주사지를 관람하려면 우선 중문→탑→금당→강당으로 연결 된 구조를 알아보고 추후 중건된 삼천불전 터와 회랑의 규모를 돌아보기로 한다.

 가람의 정문 역활을 하던 중문은 집 터의 중앙 부분에 기둥을 받치던 초석(주춧돌)이 두 개가 남아 있고, 절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지방석이 낮게 화강석으로 턱을 다듬은 형태의 2조각으로 형성되어 있다. 역사관에서 본 미니어처를 보면 2개의 기둥으로 세운 일주문 형식이 아닌 것 같은데, 초석의 위치와 문지방석을 고려해 보면 고증이 잘못 되었던지 초석의 위치가 잘못 되었던지 검증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일설에 의하면 중문의 위치가 현재의 돌담 부근으로 도로쪽으로 나와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기사 예전의 절터가 돌담으로 둘러쳐진 것이 아니었기에 절의 부지는 개울가에 붙어 있을 것이고, 개울건너까지 부속시설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직 찾지 못한 당간지주도 마을 입구였던 현재의 성주초등학교 자리 부근에 있었을 것이다. 문지방석을 다듬은 곡선이 유려하다. 사천왕상의 험상궂은 얼굴과 함께 절로 들어서는 대문 돌쩌귀에서 과거로 들어가게 하는 삐~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중문을 벗어나면 성주사지 오층석탑이 우뚝하게 솟아 있다.

 이 석탑은 2단으로 된 기단부(基壇部)와 5층으로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 위로 탑신을 괴기 위해 평편한 돌을 따로 끼워 두었고, 각면의 귀퉁이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돌을 새겨놓았으며, 추녀 밑은 몸돌에서 수평을 이루다가 위로 살짝 치켜 세워 날렵하면서도 우아한 형태를 갖추게 한다. 몸돌에도 모서리 부분에 기둥을 돌출 조각하여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지붕석의 일부는 깨지기도 하였지만 대체적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탑신이 좁아져 안정감을 준다. 현재는 상륜부를 형성하는 보륜과 보개가 없어진 상태이다. 이 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부처님의 묘와 같은 성격의 존승 대상으로 믿음의 대상이라 볼 수 있다. 대부분 1층의 몸돌에는 문틀을 새기고 그 안에 자물쇠와 문고리를 형상화 하여 부처님의 사리가 내부에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 오층석탑에서는 선명하게 보이질 않는다.

 

 오층석탑의 뒷편으로 마당에서 약 1m 정도 높이로 금당 터가 위치한다. 

 금당을 오르는 석재 계단은 5단으로 양 옆 난간에는 보현보살이 타고 다니던 지혜로운 산예(狻猊 ; 사자 형태)가 조각되어 있다. 아쉽게도 1980년대 원래의 것이 도난을 당해 사진을 기초로 복원을 하여 설치 하였는데, 부처님을 지키며 불가의 진리와 지혜 등을 상징하던 이 산예가 지금 어느집 정원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방치되고 있는지, 빨리 제 자리로 돌아오길 기원한다. 금당 안 중앙에 불상을 안치하여 모시던 불대좌가 4조각으로 조합하여 기단 위에 설치되어 있다. 

 불대좌 위에 철불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정유재란 당시에 왜군들이 성주사를 불태우고 불상을 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어, 위의 산예처럼 일본 땅 어디선가 남아있길 바래본다. 

 불대좌는 연잎이 펼쳐진 상태로 조각되어 있는데, 연구자에 의하면 코끼리의 눈 혹은 귀를 포함한 얼굴 모습을 형상화한 안상(眼象)으로 보고 있다. 불가에서 코끼리는 마야부인이 코끼리를 태몽으로 꾸었다 하며, 석가모니를 보좌하던 보현보살이 타고 다니던 성스러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금당에서 내려서면 뒷편으로 강당의 터가 나온다.

 성주사가 번성할 당시에 약 2천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을 하였다고 하니, 그에 따른 식솔까지 포함하면 지금 성주면민을 한참 웃도는 인구가 이곳에서 생활을 영위 하였을 것이다. 전하는 말로는 때가 되어 쌀을 씻는 뜨물이 개울을 덮어 한참이나 아랫마을 까지 흘러갔다고 하니 가늠하기도 힘든 대 사찰이었던가 보다.

 스님들이 강연을하고 설법을 듣던 강당을 오르는 계단이 특히 눈에 뛰는데, 예전에 이곳을 답사한 유홍준 전 문화장관이 계단을 오르는 중생들이 편하게 오를 수 있도록 계단 참의 너비에 변화를 주어 시각적으로도 편한한 느낌을 갖게 하는 신라 장인의 섬세함을 평하였다. 최 하단의 계단참보다 오를수록 점점 넓어져 사람들의 보폭에 안정화를 주도록 설계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의 계단에도 이런 변화를 주는 시스템을 적용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성주사를 둘러 담처럼 회랑이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기둥을 세웠던 주춧돌이 간격을 두고 위치하고 있으며, 벽을 이루던 기초석들이 줄지어 깔려있다. 대체적으로 화랑의 규모를 추측하게 한다. 

 성주사지 동북쪽 방향으로 13세기 후반 삼천불을 모시는 불전을 세웠다고 전해지는 터에도  주춧돌과 벽체 기초석으로 그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2. 성주사지 유적

 

    @ 위치 ;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성주사지)

 

 1)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 지정 ;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 보물 제19호

    @ 내용 ; 화강암으로 된 이 석탑은 성주사의 불탑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2중 기단(二重基壇) 위에 세운 5층 석탑으로 전체 높이는 634cm이다. 기단부와 옥개석, 탑신석이 완만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져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경쾌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1층 몸돌에 사리공(舍利空)이 있으며, 기단부와 1층 몸돌 사이에 괴임돌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 석탑 양식은 2중 기단 위에 3층 석탑을 세우는 것인데, 이 석탑은 2중 기단 위에 5층 석탑이 올려져 있다. 이는 이곳이 백제의 영역이었으므로 백제 탑과 신라 탑의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보거나, 이 시기에 나타난 다양한 탑 양식 가운데 하나로 보기도 한다. 현재는 상륜부가 없어진 상태이다.(현장 안내문 발췌)

 

2) 성주사지 석계단

    @ 지정 ;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40호

    @ 내용 ;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성주사 금당에 오르는 돌계단이다. 이 계단 양쪽에는 사자상을 조각하여 세워 놓았었는데 그 조각 수법이 뛰어났다. 그러나 1986년 도난 당하고, 현재의 것은 사진을 기초로 복원한 것이다.(현장 안내문 발췌)

  

 

   @ 돌담 너머 푸른 초원 위에 펼쳐진 성주사지

   @ 중문에서 바라 본 일탑일금당 형식의 성주사지 전경

   @ 금당 내 주기둥 기초석 2개소

   @ 금당에서 오층탑으로 들어서는 문지방 석의 곡선이 유연하다.

   @ 서쪽편에 있는 강당과 이어진 회랑 주춧돌과 터

   @ 금당 전면의 부처님 사리를 모신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 금당으로 오르는 석조 계단

   @ 금당으로 오르는 산예(狻猊 ; 사자 형태) , 언젠가 되돌아와 있던 자리에 다시 자리하길 기원한다. 

    @ 성주사지 석조계단 안내판

   @ 금당내의 부처님을 모시던 연꽃잎(안상 ; 眼象) 불대좌

   @ 금당 후편 강당의 부지내 주춧돌

   @ 강당을 오르는 계단석, 특히 상부로 오르면서 단의 너비가 넓어 편안하게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 강당에서 내려다 본 돌 계단

   @  성주사지 동북쪽의 중건기에 축조된 삼천불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