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외 유적지 탐방

제53편 ; 서안 비림박물관(중국 8)

푸른나귀 2023. 11. 4. 14:50

1. 들어가며

 

     비림(碑林)은 원래 공자를 모시던 사당이었다. 그러나 북송 원우 2년(1087년)에 건설된 것으로 지금까지 9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나라로 부터 근대까지의 비석, 묘지를 4천 개 정도 보존하고 있으며, 서안에서 수집한 비석 1,000여 점을 보유한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글과 그림을 새긴 비석들이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 섯다하여 비림이라 불린다.

 비림박물관은 무덤의 비석, 공적비, 서예가의 작품이라는 세가지 요건을 갖춘 비들을 모아 전시를 하는데, 비림에 보존하고 있는 비각은 시대의 순서가 완전하고 각종 서법이 겸비되어 가치가 높다. 

 

 정문을 들어서면 비림(碑林)이라는 비각이 세워져 있고, 그 안에 기단부과 몸체, 갓머리로 구성된 석대효경(石臺孝經)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당현종이 자식들에게 효를 행하라고 서를 쓰고 주해를 달아 적어놓은 비라고 한다. 현종이 황제가 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부모에게 불효를 저질렀으면 이렇게 천년이 가도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후손들에게 유시를 내렸을까하는 생각이 미친다. 각 전시실마다 파괴되고 망실된 비를 수집하여 질서정연하게 보관중이었다.

 왕희지(王羲之, 303~361), 구양순(歐阳詢, 557~641), 안진경(顔眞卿, 709~785), 조맹부(趙孟頫, 1254~1322) 등 저명한 서예가들의 필체가 한자리에 모여있어 많은 서예가들이 탁본을 해간다고 한다.

 

 전시관에 들어서기 전, 회원들이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려는 찰나 공원을 관리하는 공안원이 쫒아와 뭐라고 손사래를 친다. 촬영을 하려고 앞에 플랭카드를 펼쳐든 것이 이들에게는 정치구호를 내건 시위 현장으로 알았나 보다. 가이드를 통해 시위 문구가 아닌 탐방목적의 플랭카드임을 설명하였으나, 어디론가 무선통신을 나누더니 플랭카드는 접어야 사진촬영이 가능하다는 말을 전한다. 

 참으로 무서운 동네다. 공원이든, 도로든, 역사이든 어디에도 눈과 귀가 달려 감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다.

 자본주의의 시장은 개방됐지만, 아직도 정치적인 발언과 인권적인 요소에서 국민들은 자유롭지 못함을 답사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 장안성 성곽 옆으로 조성된 비림 박물관 공원 입구

    @ 비림 박물관 초입에 세워진 비각의 석대효경(石臺孝經)

   @ 당 천보 4년(745)에 당현종이 자식들에게 효를 행하라고 서를 쓰고 주해를 달아 적어놓은 비

   @ 전시실에 비치한 각 시대의 비들

    @ 제2실에 전시된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는 중국 외 문화교류를 연구함에 중요한 자료이다.

  @ 홍복사 잔비

   @ 명나라 시대(1470년)에 초서로 쓴 천자문이다.

   @ 북송시대(1080년)에 쓴 장욱의 단천자문 석각

   @ 제4 전시실에 보관중인 청시대(1734년)의 공자상 

   @ 청 강희 39년(1700년)의 태화전도(太華全圖)로 서악인 화산의 풍경을 조각한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