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미륵사지는 사적 제 150호로 백제 무왕(제위기간 ; 600~641)이 사자사를 방문할 때에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자 왕비의 청에 의해 절을 세웠다고 하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다. 익산의 평원에 우뚝 솟은 미륵산(해발 430.2m) 아래에 위치하는 미륵사지는 서쪽에 흉물스럽게 일제강점기 콘크리트로 보강하여 보존 했었던 탑을 다시 복원하여 단장을 하였다.
1980년대 본격적인 발굴조사로 동탑과 서탑 사이에 목탑을 세워 3탑 3금당의 형식을 취했던 것으로 확인 되었고, 2009년 1월 서쪽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미륵사와 백제 무왕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사리봉영기가 발굴되어 백제시대에 익산의 중요도가 한층 높아지고, 지역민들에게는 백제의 마지막 왕도라는 확실한 자부감을 갖게 하였다.
'익산'이라는 지명은 조선 태종 때였다고 하는데, 미륵사지가 있는 금마면은 만경강과 금강을 가까히하고 서해로의 교통이 용이하여 전라도 서북부의 역사와 문화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은 부여를 떠나 새로운 수도를 이곳에 세우고자 하였다고 한다. 왕궁리 왕궁터 유적, 1탑 1금당으로 가람배치한 제석사지, 백제의 마지막 왕릉이라 주장하는 쌍릉 등을 무왕과 연계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공주와 부여, 그리고 익산이 함께 지정되어 긍지를 갖게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무왕은 익산사람으로 마를 캐서 시장에 내다 팔며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뱅이였다고 한다. 그런 의미로 사람들은 그를 서동(薯童 ; 마를 파는 아이)이라 불렀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신라의 도읍인 경주로 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공짜로 나누어주며 노래를 가르쳐 주곤 부르게 하였는데, 그 노래가 '서동요'라는 향가이다.
'선화공주니믄(善花公主主隱)/ 남그스기 얼어두고(他密只嫁置古)/ 서동방을(薯童房乙)/ 밤에 몰래 안겨가다(夜矣 卯乙抱遺去如)/'
이러한 로맨틱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화공주가 신라의 공주가 아니고 백제의 귀족인 좌평(현재의 국무총리급) 가문의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었음이 서탑 발굴로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에 의해 확인이 되었는데, 내용은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황후가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라는 내용이 금박판에 적혀있다.
전설같이 내려오던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수많은 세월속에 윤색 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역사의 진실을 알게 해준 한편의 기록이 익산 박물관에 보존 되어 있으니 익산박물관 내에서 가장 중요한 국보급 보물이라고 생각이 된다.
2. 참고자료
@ 위치 ;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 미륵사지 목조탑 모형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전래와 함께 처음 만들어진 탑은 목탑이었습니다. 미륵사지에도 거대한 목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 있습니다. 목탑이 언제 무너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덕왕 18년(719)에 '금마군 미륵사에 벼락이 쳤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발굴조사로 목탑지 주변에서 확인된 불에 탄 흔적을 보아 남북국시대(통일신라)에 대규모의 화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목탑의 기단은 석탑과 유사한 형태이고 목탑기단 한 변의 길이는 18.5m에 이릅니다. 미륵사지 석탑 기단 한 변의 길이가 12.5m인 것을 고려하면 목탑의 높이는 최소 40m 이상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시된 모형은 목탑의 본래 모습을 추정하여 20분의 1로 만든 것입니다.
● 사리봉영기
사리봉영기는 사리를 탑 속에 봉인한 내용을 적은 기록이라는 의미입니다.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영기는 가로 세로 채 1cm도 되지 않는 글자들을 끝이 뾰쪽한 끌이나 정을 이용하여 여러 차례 두드려 파내는 파새김기법으로 새겼습니다. 앞면 99자, 뒷면 94자, 전체193자로 되어있습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음각한 다음 그 안쪽에 붉은색 물감인 진사(辰砂)를 덧칠했습니다.
시리봉영기의 내용은 부처님에 관한 서술, 백제 왕후에 관한 서술, 왕후 바람에 관한 서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발원자, 석탑의 건립 연대 등을 정확히 밝혔습니다.(박물관 내 해설판 참조)
@ 국립익산박물관 전시실 입구에 세워진 미륵사지 목조탑 모형(1;20)
@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굴된 금동제 여래입상과 청동방울(국보 제123호)
@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굴된 유리제사리병과 금제 사리병(국보 제123호)
@ 미륵사지 서측탑에서 발굴된 사리봉영기(보물 제1991호)
@ 미륵사의 창설에 대한 기록이 남겨진 사리봉영기(639년)
@ 미륵산 아래 위치한 미륵사지 터
@ 미륵사지 서측탑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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