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며
오전에 학성을 둘러보고 주류성의 위치가 장곡산성이라고 하여 여기까지 온 김에 광시로 가서 갈비탕 한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대현리에 들어서 장곡산성으로 향했다.
도로변에 안전하게 차를 주차하고 마을로 들어서니 산성으로 가는 콘크리트 포장이 문지까지 경사지게 이어져 있다.
문지에 들어서기 전에 성벽에서 무너져 내린 돌덩이들이 넝쿨식물과 잡목에 가리어 얼굴을 드문드문 내밀며 내게 천 오백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말하려고 하는 것만 같다.
고갯마루엔 주류성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660년, 백제의 사비성과 웅진성의 나당 연합군에게 함락되자 백제부흥운동을 펼쳤던 성이다. 왜에 있던 풍(豊) 왕자를 모셔와 왕통을 잇고 주류성을 왕성으로 삼아 백제부흥운동을 맹렬하게 전개했던 곳이다. 주류성으로 불리는 곳은 여러 곳이 있는데 장곡산성 안에서 발견된 옛 건물터와 주변의 지형과 전해오는 전설 등을 통해 이곳 사람들은 장곡산성이 주류성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서기」에 주류성의 위치를 짐작하게 하는 내용 중 '험준한 산악지형에 있어서 농사짓기 어려운 당으로 백강과 가깝고 하루만에 사비성 공격이 가능하며 임존성과도 가가운 거리에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홍성군 장곡면의 장곡산성이 주류성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이 되어있다.
또한,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60호로 지정이 되었으며 이에 따른 설명에는
「횡성 장곡산성은 오서산(해발 791m)에서 북동쪽으로 연결되는 남족 봉우리(해발 255.5m)와 북쪽 봉우리(해발 208.8m)를 연결하여 돌로 쌓은 성이다. 전체 둘레는 약 1,352m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백제시대로 추정된다.
산성 주변은 계곡이 좁아 군사활동에 적합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동.서.북쪽에 출입문터의 흔적이 있다. 산성 안에서 건물 터 10여 개소와 주춧돌, 무덤 등이 발견되었는데, 석곽묘인 돌덧널무덤에서는 청동방울, 백제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자. '사시', '사시량', '사라', '관' 등이 새겨진 기와 조각도 발견되었는데, 이곳에 백제 사시랑현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는 백제의 산성인 학성산성, 태봉산성, 소구니산성 등이 띠를 이루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로서 백제부흥군의 거점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산의 임존성 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성 안쪽에는 건물터가 제법 형성되어 있고, 남북쪽 봉우리로 감싸 안은 골짜기에는 군사들이 충분하게 사용할 습지가 발달해 있기에 수량이 풍부했을거라 생각이 된다.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진 성곽의 흔적은 남아 있는데, 학성과 같이 산허리를 감싸안고 둘러쳐진 동쪽 방향의 성곽 흔적이 보이질 않는 것에 의구심이 들었다. 환상형 성곽으로 축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축성 방법인데 서쪽 방향을 방어하는 띠형 성곽인 것 같이 느껴진다.
백제가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되고 소정방은 당나라의 고구려 침공으로 인해 철수를 하게 되는데, 백제 유민들의 저항은 부모의 나라인 백제를 구하기 위해 백강으로 원정을 온 왜군들과 합세하여 나당연합군을 괴롭히게 된다.
그러나, 당나라의 유인괘 등의 2차 지원군과 신라군의 소멸작전에 의해 3년이란 시간동안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결국 부흥군의 내부 분열로 인하여 흑치상지 장군이 당나라에 투항을 하면서 칼날을 부흥군에게 돌리니 백제의 역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600년 넘게 한반도내의 강력한 국가로서 면모를 갖추고 가야와 왜, 그리고 신라를 지배하며 고구려에 맞서던 백제가 분열로 인해 사그라지니 그 문화와 문명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일본열도에 전한 백제의 숨결은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장곡산성의 흔적을 따라 발길을 하며 감상에 젖으면서, 비록 주류성의 위치가 정확하게 비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곳 또한 백제부흥군의 발자취가 확실할 것이라 여기면서, 구국의 념으로 칼을 들었던 백제 백성들의 함성을 지키지 못한 지배자들의 분열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정치권력자들에 의해 국민들의 안녕을 추구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이 그때와 다르지 않음이 인간사의 일이라 생각된다.
2. 답사길 여정
@ 답사 출발 지점 ; 홍성군 장곡면 대현리 69-2 (지방도 96번 도로 옆)
1월6일 14;00 주류성 입구 출발 ▶ 14;10 주류성 문지(우) ▶ 14;30 성 정상(해발 255m,직) ▶ 14;40 산성리 분기점(우) ▶ 14;50 주류성 문지(직) ▶ 15;00 원점회귀
@ 주류성 입구 표지판
@ 성벽의 흔적
@ 성 문지로 추정되는 고개 말랭이에 설치 된 안내판
@ 주류성에 대한 안내판
@ 홍성 장곡산성에 대한 안내판
@ 정상부로 오르는 서측 성벽의 흔적
2 성벽의 흔적
@ 산성 정상부 삼각 표지판
@ 성 내부의 넓은 건물지 터
@ 성문지였을 고갯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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