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겨울에 들어서서 남포의 들판에서 바라본 옥마산은 이지역의 주산임을 확연히 보여준다.
동쪽에 면하여 남북으로 넓게 옷자락을 펼치듯 주름마다 마을을 품어 안고 옥마봉의 정상이 때마침 내린 은설로 겨울 속 따스함이 느껴진다.
향교 입구에 하마비(下馬碑)가 주차장 옆 한켠에 세워져 있다.
성인이 모셔저 있기에 누구든 이곳에서 부터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 가야하는 금기의 구역을 표시하는 하마비는 이젠 말 대신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하는 표식으로 대체된 성 싶다.
홍살문을 들어서니 구린 냄새가 온통 가득하다.
외삼문(外三門) 앞 은행나무의 은행이 떨어져 바닥에 지천으로 깔려 밟이고 으깨어져 코를 쥐게 하지만, 그래도 그 향기가 싫지만은 않다.
향교 부지를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고 천천히 돌아 보는데, 향교 앞으로 펼쳐진 간사지 땅과 서해바다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옛 선인들의 글 읽는 소리가 그곳 까지 떨쳐지는 듯하다.
외삼문 옆을 살펴보니 주먹만한 자물통의 열쇠가 보인다. 열고 경내를 돌아볼까 하는 흑심이 생겼지만, 그 마음을 바로 접었다. 굳이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유생들에게 방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사당이나 사원의 구성 양식인 동재와 서재의 구분이 없는 구조가 이 곳의 특징이라 하겠다.
남포읍성과 가까우니 함께 들러보면 좋을 것이다.
2. 남포향교(藍浦鄕校)
* 지정 ; 지방기념물 제 111호
* 위치 ; 보령시 남포면 옥동리 산 9번지(읍성향교길 133)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의 교육과 문묘제향(文廟祭享)을 위하여 고을마다 세워져서, 중앙에서 훈도(訓導)가 파견되어 지방 중등 교육을 담당하던 기구이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조 13년(1413)에 웅천읍 대천리에 건립 되었다가, 이어 남포 지역으로 이전 되었고, 그 후 몇 차례 더 옮긴 끝에 헌종 9년(1843) 현재의 위치로 이전 되었다.
향교의 건물 배치는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 서재(西齋)를 갖춘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일반 배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위시한 줄국 5성과 4현, 우리나라의 18현을 봉안하고 제향(祭享)하는 곳이며, 명륜당은 강학을 하는 강당이다. 본 향교에는 동재(東齋)는 없고 서재만 있는데, 이곳은 강학 공간이면서 향교의 관리 기능을 하는 고직사(庫直舍)를 겸하고 한다. (현장 안내판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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