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74편 ; 보령 죽청동 고인돌

푸른나귀 2019. 12. 22. 10:30


1. 들어가며


    돌멘(dolmen)이라 불리는 고인돌은 원시시대에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관념 내지는 신앙으로 생겨난 것으로, 시신을 매장할 때에 영혼이 조화를 부리지 않도록 무거운 것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안전책을 강구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한반도에 분포된 고인돌은 서울을 중심으로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로 나뉘는데, 북방식은 넓다란 판석을 전후좌우 사면에 세우고 그 위에 크고 넓은 돌을 얹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남방식은 사면의 판재를 대체적으로 땅 속 지면 이하로 설치한 후 판석을 땅 위로 덮는 형식을 취하는데 대체로 북방식의 규모가 크다.

 보령 죽청리 고인돌 군락은 무창포ic에서 무창포 해수욕장쪽으로 가다가 관당초교를 지나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죽청휴계소를 약간 지나 좌측의 농로를 따라 들어서야 한다.

 우슬장터 마을 안에 작은 정자가 있으며 그곳에 북방식 고인돌 1기와 남방식 고인돌 11기가 펼쳐있다.

 뒷산을 등에 지고 앞으로 주교천 냇가를 좌우로 평지가 조성 되어 있고, 바닷가가 멀지 않으니 청동기 시대에 많은 토착인이 살기에는 적당하였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가장 큰 북방식 고인돌의 덮개가 어림잡아 20톤 가량의 무게로 추정하면 그 역사를 추진하던 시기의 주민의 수가 2,000여 명으로 추산되니 이곳을 기반으로 청동기인들이 수렵과 농업으로 집단생활이 크게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보령 죽청리 고인돌


      * 지정 ;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 372호

      * 위치 ;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363-3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청동기 시대 이 지역에 취락이 형성되어 많은 사람이 거주 했음을 보여주며 당시 지배층이 가진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잘 반영해 주는 유적이다.

 마을 전역에 수 십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는데 이곳의 고인돌이 가장 크고 대표적이며 보령지역에서는 드물게 북방식 형태도 보인다. 대부분의 고인돌이 편마암인데, 동북쪽 산지에 많은 편마암 바위가 있어 이곳에서 옮겨다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 안내판 참조)


 웅천읍 죽청리 장터 마을(기현마을)에 있는 12기의 고인돌이다. 이곳은 장터 마을의 중앙으로 많은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장터 마을에는 이곳 외에도 많은 고인돌이 있었으나 이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훼손되었다. 이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대부분의 고인돌은 편마암인데, 동북쪽 산지에는 많은 편마암 노두가 있어 이곳에서 옮겨다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00년 9월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으며, 보령시에서 토지를 매입하여 정비하였다. (보령시청 문화재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