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며
죽청리 고인돌을 보고 나오던 길에 607번 지방도에 들어서 달리려던 중 언뜻 좌측으로 비각이 보이는 듯 하였다. 차를 돌려 봉오재 버스정류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보니 동복오씨(同福吳氏) 정려각이다.
보령지역이 양반의 고장이라더니 예전에 잘 보지 못하고 지나치던 정려각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눈에 자주 띄게 되나 보다. 정려각 내부의 현액을 읽어보니 전주이씨 가문의 열녀비이다.
효자통덕랑이기주(孝子通德郞李基周)의 처 동복오씨(同福吳氏)의 정려각인데, 이기주의 관직이 통덕랑이다.
통덕랑이란 관직은 조선시대 음서로 주어지던 직책인데 주로 실제 관직에 임하지 않고 명예직이라 할 수 있다. 보령지역의 정려각이 대부분 1990년대 보수가 진행 된 것 같은데, 30여년의 세월 속에 스러지는 세월의 무게를 느낄수가 있었다. 30년이란 세월은 한 세대의 시간으로 보통 대동족보의 수단 세월이 듯 건축물도 유지보수하여야 할 기간인 듯 하다.
2. 열녀 동복오씨(同福吳氏) 정려각
* 시대 ; 1772년(1991년 개축)
* 위치 ;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산 7-6
웅천읍 죽청리 작은 봉오재 마을 입구에 있다. 정면 측면 1칸의 4각 지붕의 형식이며, 내부 중앙 상단에 열녀학생이기숭처동복오씨지려상지사십팔년임진팔월일정려(烈女學生李基崇妻同福吳氏之閭上之四十八年壬辰八月日旌閭)라 각서된 현액이 걸려 있고 현액의 상단에는 국한문 혼용으로 묵서(墨書)한 열녀정려개축이전기(烈女旌閭改築移轉記) 현액이 걸려있다. 정려 좌측으로 1m떨어진 곳에 효자증조봉대부호조좌랑이기상(孝子曾祖奉大夫戶曹佐郞李基商) 효자통덕랑이기주(孝子通德郞李基周) 열녀학생이기숭처동복오씨지려(烈女學生李基崇妻同福吳氏之閭)라 각서된 비석이 있다. 이기숭의 처 동복오씨는 남편을 따라 순절함에 1772년(영조48)에 정려가 내려졌다. 이기상의 본관은 전주이며 지성으로 부모를 공양하여 그 높은 뜻으로 호조좌랑에 증직 되었다. 이기주는 그의 동생이다. (현장 안내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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