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71편 ; 효자 서한경 비각

푸른나귀 2019. 12. 13. 19:17


1. 들어가며


  청고을에 그나마 제 모습을 갖추고 남아 있는 효자비 및 열녀비는 장현리 은행마을 신경섭 가옥의 대문위에 효자 신석붕 정려각과 의평리 버드골의 진주 정씨 열녀각, 그리고 옥계리의 효자 서한경 비각만이 남아있다.

 이 비각은 보령병원에서 옥계쪽으로 가다가 옥계초등학교 바로 못 미쳐 왼쪽으로 들어가면, 옥계2리 마을회관이 나오는데, 한 50여m 더 가다보면 도로변 좌측으로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유교에 의한 효행덕목을 장려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전국의 효자와 효부의 행적을 추천 받아 국가적으로 정려문, 정려각, 정려비를 세워 주었다.

 이러한 비각과 정려문이 세워지는 것이 마을의 큰 경사요, 집안의 축복이 아닐 수 없기에 일부는 너무 미화화 되어 당사자의 희생이 강요 되기도 하였다.

 대체로 효자와 효부의 효행 내용도 전국 어디서나 일정한 내용으로 비슷하니, 추천 할 당시의 상소문도 일정한 요식 행위를 거쳐 이루어졌음을 간파할 수 있다.

   


2. 효자 서한경(徐漢慶) 비각


             * 위치 ; 보령시 청라면 옥계리 242

             * 시대 ; 1722년


  서한경(徐漢慶)의 본관은 달성이고 자는 공근(公謹)이다. 부친의 병환이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병을 왼쾌하게 하였다. 또 부친의 병환에 잉어가 먹고 싶다 하니 집 앞에 있는 샘에 나가 효심으로 기도하니 잉어가 용출(聳出)하여 달여 들이니 병이 쾌차하였다.

 1722년(康熙61) 처음 정려를 세웠다. 현액에는 효자학생서공한경지려(孝子學生徐公漢慶之閭)라고 적혀 있고, 비석에는 효자공근서공한경비(孝子公謹徐公漢慶碑)라 적혀있다. (현장 안내판 발췌)

 비록 문화재로서 등록이 되지 않은 유물이지만 우리가 후세에게 영구히 잘 보전 전승하여야 할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