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58편 ; 보령 산수동 소나무

푸른나귀 2019. 8. 18. 19:49

 

1. 들어가며

 

 지난번에 장현리 귀학송을 보고와서 한번 가보려 마음 먹었던 충청남도기념물 제 179호로 지정된 보령 산수동 소나무를 친구 두 명과 함께 답사를 하였다.

 보령시내에서 21번 국도를 따라 광천쪽으로 가다가 주포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여 마강2리 마을회관 앞에서 우측 도로로 진입을 하고, 갈현리에 접어들면 우측으로 아트막한 언덕 위로 작은 소나무 군락처럼 보이는 산수동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지방도를 따라 차량으로 이동할 적에 소나무의 낮은 키로 무심코 스쳐 지나가기 쉬울 것 같기도 하다. 소나무 옆으로 농가가 한 채 있으므로 주의하여 찾아가야 하고, 차량을 댈 수 있는 주차장이 없으므로 길 한켠에 비켜 대서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밖에서 볼 때에는 소나무 줄기를 받치고 있는 철제 지주들이 마치 소나무의 본줄기 처럼 보여 작은 소나무 군락 처럼 보이고 별로 볼품이 없는 모양으로 비친다.

 대체로 이름 있는 소나무라고 하면 소나무의 줄기 하부가 두툼하여 연륜을 나타내고, 높은 키를 자랑하여 위용을 나타나게 하며, 세월의 풍상으로 뒤틀리고 휘어짐으로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소나무는 외모로 보아선 아주 민밋하게 생겼다. 그리하여 이 앞 도로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빼앗지 못하는 모양이다.

 

 보령 산수동 소나무의 안내판을 읽고 주위를 한번 돌아보았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소나무 줄기가 오랜세월 동안 뒤틀리면서 하늘을 오르는 형상이 마치 여러 마리의 용들이  운집하여 꿈틀거리는 듯 하다. 소나무 껍질은 용의 비늘처럼 두껍게 더깨를 이루면서 꿈틀거리는 역동성을 더해줘 주체를 못 할 형상이다.

 마치 수목원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 분재를 확대 해 놓은 듯, 참으로 오묘한 뒤틀림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신들이 만들어 낸 천상의 소나무 분재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역시 안내문에서 보듯이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영험하고 신령스런 존재로 신앙의 대상이었음에 틀림이 없겠다.

 

 안내판 설명서에 의하면, 강순장군이 여진정벌과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이곳의 땅을 하사 받았다고 기록 되어 있으니 여진정벌은 1460년 도부터 5년여에 걸쳐 종성절제사로 근무를 하면서였고, 이시애의 난은 1467년도에 진북장군으로 어유소와 남이장군과 함께 반란군을 평정하였으니 대체로 산수동 소나무는 이 시기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니 소나무의 수령이 약 550년으로 계산이 된다.

 강순장군이 1468년 신천부원군에 봉해지고 영의정에 올랐으나, 유자광의 무고에 의해 남이장군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었고,  약 350년이 지난 후인 1818년(순조18)에야 그의 누명이 풀렸으니 보령 산수동의 소나무도 강순장군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강순장군이 누명에 벗어나기까지 억울함과 원통함을 백성들에게 알리려는 듯, 비틀리고 꿈틀거리며 350년을 강순장군과 함께 하였나 보다.

 

 이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오천향교를 찾아 볼 수 있으니, 오천향교와 조금 더 가서 충청수영성과 연계하여 돌아보면 좋을 듯 하다. (제 97편 ; 미산 강순장군의 묘 연계)

 

 

2. 보령 산수동 소나무

 

    * 지정 ; 도기념물 제179호 (2009년 10월 20일 지정)

    * 위치 ; 보령시 오천면 갈현리 산28

 

 이 소나무는 조선 초기의 명장으로 북방의 여진을 징벌하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신천부원군 강순(康純)장군(1390~1468)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토지를 둘러보고 심었다고 전해진다.이 마을에서는 예부터 영험이 깃든 소나무로 알려져 나무 앞에서 정성껏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고, 이 나무에 해를 끼치거나 가지를 꺾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산수동 주민들은 이 소나무를 방솔이라 부르며, 해마다 오월 초에 제물을 갖추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제를 지낸다. (현장 안내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