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55편 ; 숭엄산(성주산) 백운사

푸른나귀 2019. 8. 4. 10:33


1. 들어가며


 여름 휴가철이 되어 심연동 골짜기에 차량들과 사람들이 가득하다.

 폭염으로 산행 하기에는 부담스럽고 엄두가 나지 않아 한번 들려 보리라던 백운사로 발길을 하였다.

 성주사지에서 청라터널을 향해 가다보면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 심연동 계곡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곳부터 계곡마다 천막을 치고 좌대를 설치하여 손님 끌기가 한창이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백운사 입구 마을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토굴 새우젓을 파는 점포가 앞에 보이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산길을 따라 700여 미터를 올라가면 천년고찰 백운사를 만날 수 있다.


 백운사라는 절 이름은 전국적으로 많은 사찰의 이름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성주산의 백운사는 통일신라시대 성주사에 속한 부속 사원이었으리라 추측 되는데, 현재는 조계종 마곡사의 말사로 운영이 되고 있다.

 절 바로 밑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키고 일주문을 대신한 돌탑을 바라보니 오래 된 고목들이 천년의 세월을 말해주는 양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방문객의 지친 몸을 쉴 수 있게 벤취를 마련 해 놓았다.

 절의 중심지에는 대웅전을 대신하여 극락전이 들어서 있는데, 뒷편 성주산 능선의 고갯마루와 낮게 드리워진 하늘의 공간이 하늘의 뜻을 산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되는 오묘하고도 신령스런 느낌을 주기에 그지없다.

 극락전에 들어가 부처님을 뵙고 우측에 걸려있는 탱화를 구경하고 극락전을 한바퀴 돌아 보았다.

 충남유형문화재 제 233호인 보령백운사 목조보살좌상과 충남문화재자료 제433-1호인 영식필 산신도 백운사본이 극락전에 모신 것인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확인하여 보니 아니었다.

 실물을 다른 곳에 보관을 하였다면 안내판에 상세하게 안내를 하여 주는 배려를 해 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웠다. 다음에 한번 더 가서 확인 해 보아야겠다. 극락전 우측으로 무염당(無染堂) 이라고 당호를 쓴 것을 보니 성주사를 세운 무염대사의 호를 당호를 붙였나 보다. 좌측 약간 아래쪽으로는 구산선원(九山禪院)이라는 스님들이 선을 닦는 장소가 있는데 이것도 구산선문에서 따 온 것으로 생각이 된다.

 

 종무원 건물에서 아랫쪽으로 숲길을 조금 내려오면 충남 문화재자료 제374호 보령 백운사 부도가 소나무 숲사이로 고즈녁하게 남아 있다.

 부도라는 것은 스님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조형물로 승탑(僧塔)이라고도 한다. 이 부도의 정면에 정연당(淨蓮堂)이라는 명문이 있어 그 주인공이 백운사에서 수도하다가 입적한 정연당 스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며, 지대석을 포함 해 높이가 170cm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다. 석종(石鐘)형의 형태로 표현되고 탑신석(몸체)에 주인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점이 조선 후기 부도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현장 안내문 참조)

 산허리를 꺾어 흐르는 휜구름이 한참이나 쉬어 갈 듯한 터에 천 년의 세월을 버티어 온 자비의 세상. 그 무엇을 위한 기다림으로 성주산 골짜기에 자라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