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뒷골목엔 아주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
정년퇴직을 한 쥔 아저씨와 환갑을 넘긴 아주머니가 교대로 계단밑 조그마한 공간에
앉아 오가는 손님을 정겹게 맞이한다.
목욕탕 특유의 물때 냄새가 곰팡이 냄새 비슷하게 코끝을 스치지만 그 냄새가 도리어
나를 묶어 두기에, 여전히 휴일이 되면 그 곳을 찾게된다.
그 목욕탕 쥔장은 주변 사우너나 리모델링한 목욕탕들에게 손님을 빼앗겨 몇번이나
그만두려 했으나 나처럼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 손님의 얼굴때문에 그만두지 못한다고
도 하였었다.
지난 일요일에 농막에서의 하룻동안 삽질에 괭이질을 하여 찌부드한 몸을 풀고,체중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확인도 할 겸, 김해 비행장에 근무하면서 외박나온 아들놈과 같이
동네 목욕탕을 향하였다.
샤워를 하고 따뜻한 온탕속에 둘이 함께 들어가니 물이 욕조를 철철 넘쳐 흐른다.
제법 탕속에서 아들놈의 애비를 위한 건강걱정, 일걱정,가족걱정들을 주섬주섬 이야기
하는 폼새가 애비의 품을 떠날때가 가까워짐을 느끼게 한다.
아들놈 돐이 지난 다음부터 매번 같이 이 목욕탕을 이용했는데 그 놈과 부자의 정을
느끼게 하는 정도와 그 놈이 성숙 해져감에 뿌듯 하면서도 내 자신이 작아짐을 느끼게
하지만, 아직 내 어깨가 넓다는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려 은근히 애를 쓴다.
간지럽듯 등을 밀던 꼬마 녀석이 어느새 장성하여 살짝 밀어도 아프지만, 시원하다고
더 쎄게 밀라고 허풍떠는 애비의 등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할까???
허름한 동네 목욕탕을 내가 즐겨 찾는데에는 내게 주어졌던 작은 행복이 서려있었기에
전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이 목욕탕이 없어질때까지 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아들놈 대신 손주놈 데리고 등밀어 주는 재미로 찾게 될지도
모른다.
타일조각이 떨어지고, 샤워 가랑이 시원치 않고, 한증막이 비좁아도, 플라스틱 의자가
깨어저 궁둥이를 물려도 나는 이곳을 서른해동안 다니고 있다.
언제까지나 때밀이 수건 하나 들고 가볍게 갈수 있는 그 목욕탕이 그 자리에 그 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동네엔 붉은벽돌 굴뚝이 있는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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