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 하다가 청계천 다리 위에서 웅성거리는 한무리의 인파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당의 차기 대선 후보자가 국민화합 차원의 행보로 그곳을 방문하려다 결국 쫒겨 나가다시피 돌아서는 모습이었습니다.
태풍 볼라벤의 위력때문에 온종일 긴장하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같이 앉아있던 대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에게 무심코 "너는 전 태일이 누군지 아니??' 하고 물어 보았는데 대답이 아주 간단합니다. "아~니"
누구인지 되 묻지도 않고, 관심도 아주 없다는듯 하기에 거기서 한동안 대화가 멎는 어색함을 맛 보았습니다.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까지 경재개발이라는 기치를 세우고, 물적 자원이 아무것도 없는 이땅에 오로지 풍부했던 것은 인적자원 뿐이라 정권을 이끌어가는 정부는 자본가들과의 묵언의 규합으로 힘들게 보릿고개를 넘기며 허덕이던 농민들의 이농을 부추겨 도시로 끌어 들이게 됩니다.
그들은 결국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 되어 가발공장, 피복공장, 방직공장등으로 스며들게 되고, 지금의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인적자원이 되어 산업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 되고 자본가의 부는 점차 쌓여가 대 재벌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에 반해 노동자들은 궁핍에 더욱 빠져들게 되고, 암울한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절규하게 됩니다.
그 시절 전태일은 70.11월 "근로 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사랍답게 살고싶다"며 청계전에서 그들을 향해 분신 항거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이제까지 조직적이지 못하던 노동자들이 일부 도시선교회,지식인들과 규합하여 권리를 찾는 노동운동이 발전하게 됩니다.
유신이 선포되고 79년 8월 마포 신민당사에서 항거중이던 YH무역의 여공이 경찰에 쫏겨 추락사 하고, 김 영삼총재가 제명 되면서 그 영향으로 부마항쟁으로 치닫고 결국 10.26 사태로 그 정권은 붕괴되면서 격랑의 시간이 계속 되지만 정치권력과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틈새는 줄어들 여지가 없나봅니다.
저 멀리 월남땅에서 피흘린 육칠십대, 지구 반대편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땀흘린 오륙십대, 열사의 나라에서 땀흘린 우리세대, 청계천 시장골목 다락방에서 미싱을 돌리던 형제들,.. 구로동 공단에서 한올한올 머릿카락 역던 누이동생들...기름범벅 얼굴에 부속품을 만들던 친구들...
스위스은행의 비밀계좌에 있는 돈이 수조가 넘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돈들이 그 피땀이 아니었으면 한다.
차기 대선 후보자가 그들의 피와 땀을 이해하고 포용할수 있는 가슴을 가질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내것이라고 형제지간에도 아귀다툼을 하는 재벌의 추태를 바라보면서 씁쓸해 한다...
우리세대의 젊은 초상화를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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