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집앞 골목길을 나서는데 낮 익은듯한 한 아주머니가 우리골목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동안 왜 그렇게 횡한 골목길을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누구였던가에
생각이 미칠즈음은 전철역에 다다랐을 때였다.
우리집 건너편으로 세번째 집에 살다가 이사가신 혜림이 할머니였다.
아이들 학군때문에 그집 며느리가 이사를 간다고 하였던것이 오래전의 일이었는데
혹시 동네에 마실을 왔거니 생각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마눌님에게 혜림이 할머니가
집앞 골목을 바라보며 계시더라는 말을 건네자 시큰둥하게 말을 받는다.
" 혜림이 할머니는 이따금 혼자서 이골목에 오시는데 좀 이상해... 인사를 드리고
뭘 여쭤봐도 행동이 이상해... 치매증상이 있는것 같기도 하고..."
이 골목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오고 이사를 가면서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적에는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골목에 가득 했었고, 부인네들은
서로 골목길에 돗자리 펴 놓고 담소하며 놀기도 하였었다.
남정네들이야 출퇴근시간 잠깐 만나는 어른들에게 눈인사를 하는것으로도 골목안이
정감이 흘렀었다.
시멘트블럭의 연탄아궁이로된 기와집은 시내 철거민들을 위한 낮은 민둥산을 깍아
10만 신정단지를 박정희시절에 만들었고 서울의 서민들이 모여들어 동네를 형성하였다.
이제는 토박이로 살던 그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그들의 애환마져도 사라지게 되었다.
벌써 스므해가량 이곳에 살다보니 그 정경들이 눈에 선하다.
그 정경 그모습들을 이젠 기억하고 있는 골목동네 사람들도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이 골목이 내 자식들에게는 어린시절의 편린이 남아있는 고향일진대 그 어떤 이익을
쫓아 어른들은 떠나고 낯선이들이 다시 돌아옴을 반복한다.
뉴 타운이 조성된다고 하여 발빠른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오면서 이제는 내게도 낮선
동네로 변하여감을 의식하게 된다.
혜림이 할머니도 자식과 며느리가 알지못하는 그 어떤 이끌림에 이골목을 잊지못하고
한참이나 멍하니 지난세월을 추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골목이 없어진후에 나도 이 부근을 배회하며 내 기억속의 내집을 그릴지도 모른다.
내 할머니의 기억도, 내 신혼시절도, 내 젊은날의 초상도 망각하게 될것이다.
골목길...
겨울바람이 스쳐지나가는 이골목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한부분을 기억하고
집앞 골목길의 생명이 내 인생의 많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것을 알고나니,
다른사람들에게도 큰의미가 있었던것이라 혜림할머니에게서 읽게 된다...
늦은시간 골목앞에서 날 기다리시던 할머님의 기일날에 넋두리한번 해본다.
고향선산에서 이 골목길을 잘 �O아오셔서 한술 제대로 뜨시고 가셨는지???...
가로등 불빛 아래로 그 흔적이 있을것 같애 유심히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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