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비오는날의 수채화...

푸른나귀 2007. 9. 6. 20:23

   

 

   

          그칠듯 그치지 않고 주적거리며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도 초등학교와

          농협사잇길로 차를몰아 천천히 들어선다.

          결혼하고 다음해더인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셔 원주에서 버스를 몇번이나

          갈아타고 밤늦게 청라버스정류장에 내려 이길을 걸어갈적에 벌판에

          수많은 개똥벌레들의 군무에 외할머니의 죽음보다도 깜깜한 밤하늘의

          축제에 희미하게 보이는 이길을 싱그럽게 걸었던 기억이 앞섰다.

          한편으로는 벼이삭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지나간 추억의 파노라마를 펼치면서 논두렁길을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

          자니 손과 발과 마음이 떨린다.

 

          안골로 들어서면서 외갓집에 외숙모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고, 그 동네

          맨 윗집에 아버님과 글방집으로 향하였다.

          어릴적에는 대문이 매우크게 보였었는데 지금도 그대로 이건만 똑바로

          서면 머리가 닿을것만 같이 보였다.

          대문을 여는 삐걱소리에 사랑방에서 승희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나오신다.

          승희의 할아버님과 증조부님께서 이고을 학동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고

          한학을 공부하시던 그 사랑방을 두분께서 지키시고 있었다.

          큰절을 올리고 무릎꿇고 앉아 있으니 편히 앉으라는 말씀에도 그 어릴적

          갓쓰시고 위엄있으셨던 글방선생할아버님의 모습이 그대로 기억되어

          무릎을 펴지 못하였다.

          아버님과 승희아버님은 초등학교 동창이며,처조카 사이로 막역한 사이

          이기에 이야기의 끝이없다.

          슬며시 밖으로 나와 안뜰로 들어서니 예전 큰일이 있을때 과방을 차리었던

          부억위 다락문이 눈에 들어오고, 명절때면 인사하러 사랑방에 들른후에

          안방으로 들어 갈적에는 대청마루에서 슬며시 훔쳐보던 승희의 모습이

          떠올라 빙긋히 헛웃음이 나온다.

          집앞의 커다란 은행나무 두그루도 여전히 그 큰집을 지키어 주고 있었다.

          안골동네 모두를 들러보지 못하고 내현리 경로당에 들러 막걸리 두어말값

          드리는것으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번덕지에서 대전 아줌씨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님 모시고 너희집에 갈터인데 어머님,아버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느냐

          고... 아마 고등학교 방학때쯤 뵙고 이제까지 그집앞을 몇번이나 지나치면

          서 향상 죄지은 기분이 들었었는데, 빗님이 내리시는 덕분에 벌초도 일찍

          끝내고 상경하는 길도 그다지 밀리지 않을것이라는 짐작으로 내친김에

          들러 가리라 생각을 했었다.

          개울길을 따라 웃갬발까지는 몇분도 걸리지 않는데 왜 그렇게 쫓기듯 횡하니

          오갔는지를 모르겠다.

          갬발저수지 아래 순옥이네 집에 들어서니 아무도 계시질 않는다.

          당황하여 순옥에게 전화를 하니 두분 모두 대천에 계시다고 잠깐 기다리랜다.

          집주변과 내살던 집을 �f터보았다.

          뒷들 돌담장과 스레이트지붕밑 흙벽은 그대로인데 앞마당엔 잡초가 무성하다.

          40년 만에 바라보는 내 실던집의 초라함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렸다.

          이생각 저생각으로 상념의 나래를 펴고 있을때 두분께서 급히 들어오신다.

          아버님과 두분은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으시다가 눈가를 글썽이신다.

          아래윗집으로 그렇게 친하게 사시다가 세월의 무상함으로 인하여 젊음이 사그

          라진 작금의 세월에 지친몸을 자식들 걱정과...

          어느 부모라고 그런 세월을 어렵게 헤쳐 나오질 않았을까마는 마주잡은 손이

          떨어지질 않는다.

 

          비오던 전번주 휴일날...

          나는 수채화를 한폭 그리면서 두 여인을 생각했다.

          수줍으로 가득했던 서천사는 노 승희...

          사나웠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김 순옥...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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