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바램
주산(主山)의 줄기가 슬며시 흘러내리는 언덕 언저리에 남동쪽으로
너른 벌판이 바라보이고, 한쪽켠으로 작은 개울물이 지즐대며 여울
지는 작은 터를 찾아서 초막하나 지어 여생을 보내고 싶다.
산에서 내려오는 정기를 슬며시 받아 들일수 있도록 배꼽아래 정도
의 낮은 돌담을 치고 여남은 그루의 오죽(烏竹)을 심어 소슬거리는
소리에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돌담장 안으로 작은 둔대를 두어 질팍하게 구운 몇개의 항아리에
갖은 장을 담아두고 한해를 즐기수 있도록 하고, 장독대 틈서구니엔
봉숭아꽃, 채송아꽃처럼 키 작은 화초를 심어 툇마루창을 열면 시원
한 산들바람과 꽃향기를 맡으며 한낮의 오수를 즐길수 있었으면
좋겠다.
집앞 한켠에는 감나무 두어그루 심어서 연록의 연한 이파리와 하얀
감꽃, 빨갛게 익어가는 홍시를 바라볼수 있도록 하고 대추나무와
석류나무도 몇그루 심어보고 싶다.
앞마당에 조그마한 화단 하나 만들어 봄에서 가을까지 피고지는
화초와 야생화를 뒤섞이게 하여 꾸며 보고 싶다.
화단 주변에는 강돌을 주워와 화단 주변을 예쁘게 나열하고,
자그마한 웅덩이를 만들어 연꽃을 심고 금붕어도 몇수 들여서
한가히 유영 하는 모습을 즐기고 싶다.
계곡에서 끌어들이는 파이프는 대나무로 연결하여 웅덩이로
떨어지는 물줄기의 소리에 취하고도 싶다.
집앞 울타리는 두지 않고 밭두렁 몇개를 만들어 채마도 심어보고
싶다.
서산으로 붉은 노을 뉘엇해지면 황금벌판을 바라볼수 있고, 하얀눈
소복히 내리면 찐 고구마 한소쿠리 담아 긴긴 겨울밤을 오손 도손
이야기하며 보내고 싶다.
멀리서 찾아오는 동무들과 담근술 한잔에 지난 날들을 나누면서
인생을 이야기 하고 싶다.
2,현실
무릇 산자들을 위한 택지 선정이나 죽은자들의 유택을 선정하는데엔
흡사한 점들이 많다.
우리 정서속엔 풍수에 대한 의식이 은연중에 스며 있기 때문일것이다.
유택의 활은 담장이요, 봉분은 주택이며 상석놓인곳은 앞마당이다.
망부석자리는 유실수의 자리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초막을 짓는다 해도 한 삼백평의 대지는 있어야 할것이고 초막은
이십평 정도이면 충분 헐것이지만 서민들에게는 이만한 정도를
소유한다는 것도 적은 비용이 드는것이 아니다.
노후를 위한 살집이라면 그렇게 화려하고 멋있는 별장이나 팬션의
개념으로 살림집을 꾸밀 필요는 없다고 본다.
죽어서 가지고 갈것도 아니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필요도 없기에
부부가 함께 할수 있는 동안만 빌려쓸수 있는 대토와, 폐농가를
얻어서 꾸며 볼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살다가 혼자가 된다면 조용히 양로원으로 들어 가는것도
그시대엔 보편화가 될것임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3,약속
언젠가는 돌아 가리라고 마음속에 담아놓고 살아 왔지만, 도심속
삶에 엉키어 살다보니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우선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에도 수년이 걸렸다.
이곳저곳의 터를 보아 왔지만 흡족한 곳을 찾지도 못하였다.
경제적인 여유도 어쩐지 탁 풀리지 않았었다.
부모님과 자식들의 끄나풀도 언제 정리될지를 알지 못하였다.
이런것들을 어느 누구처럼 과감하게 모든것 떨쳐버리고 실행
하지도 못 하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내 힘들게 숨쉬고 기어 다닌다 해도 내 태어난 초향(草鄕)에서
초막짓고 누룩빗어 술 담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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