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1978.04.24.그리고12861982 라는 숫자???

푸른나귀 2007. 6. 24. 17:26


       연순아씨 아들이야기를 읽고 한참이나 배꼽을 잡았다.
       그처럼 세월이 흘러 우리의 아들들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려
       대열속으로 하나둘씩 들어가고 나오니 우리에겐 벌써 서른해전의 일이건만
       바로 엊그제의 일같이 느껴짐은 무엇때문일까???
       온양의 한 학교운동장에서 조기꾸러미같이 열을지어 입영열차에 오르던날
       어머니는 한참이나 자식을 �i아오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우리가 그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 자식군에 보내며 갖는 느낌이
       예전 부모들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한번 회상하여본다.



       이따금 마눌님의 주민등록번호와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여
       몇일간 등돌리고 잠잘때도 있었건만 입영일자와 군번은 아마
       내가 무덤속으로 들어갈때까지 잊혀지질 않을것이다.
       그처럼 청춘의 나이에 갖은 애환속에 삼년간을 보내고
       사회의 적응에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었는지는 몰라도
       기초적인 밑거름이 된것이라 의심하지는 않는다.



       빡빡 밀어버린 머리로 차창에 기대어 창문밖 언덕에 핀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눈가에 이슬이 맺힐려는 찰나에서부터 나는 내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었고
       수행조교들의 자식이었다.
       천안으로해서 논산 연무대까지 이놈의 입영열차는 왜이리 늦게 가는지...
       훈련소에선 어머니를 그렇게도 많이 불러 보았다.
       군대 갔다온 놈들은 모두 효자 된다더니 맞는 말이다.
       여친들은 무조건 아들 군에 보내시게나!!!



       배출대에서 운 좋게도 장군의아들과 국회의원의 아들사이에 샌드위치되어
       서울 광화문 네거리 경복궁 앞에서 근무하게 되고 초년에는 군기에
       무척이나 힘들게 복무를 하였지만 중반부터는 순탄한 한 편이었다.
       중고등학교때 서오능에 소풍을 몇번 가본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무시무시한 **교육대가 있는줄은 몰랐었다.
       그곳의 구대장은 북괴의 공적일호가 우리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예비군 끝날때까지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었다.
       비록 삼년동안 유격훈련한번 못해보고,사격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전방의 철조망 구경한번 못해보고 전역을 하여 아쉽지만
       수도권 중추신경을 지키는 의무를 하였다는데 자부심을 갖는다.



       남들이 유격받던이야기 축구한이야기들을 떠들땐 할말이 없다.
       하지만 30년이 다 되었으니 기무부대에서 잡아갈일은 없을것이고,
       그시절 고뇌하며 서울에서의 군생활을 했던 넋두리를 몇편으로
       쪼개어 피력하고자 한다.
       남친들도 군대 이야기를 읊을테니 두루두루 엮어 가보세나...
       그러면 한 삼십년 젊어지는것 아니겠는가???
       여친들은 아들생각 한번 더하고...




                                    2006.03.08.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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