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녘에 눈발이 살짜기 비치더니 오후엔 이슬비로 바뀌어 소리없이 내린다.
봄이 오는 모습을 창밖으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기에 김일성이 죽던날의 백령도땅을 그려본다.
군 시설물 현대화의 일환으로 백령도에 근무하는 장병들 가족을 위한 아파트
공사에 대대적인 사업이 시행되어 많은 인력과 자재들이 투입 되었으나
열악한 환경과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관계로 모두들 그곳을 가기 싫어해
어쩔수 없이 이몸도 열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기호배를 타고 그곳에 내렸었다.
지금은 네댓시간 걸리는 쾌속선을 타고 날이 좋으면 하루에 두번의 운항편이
있지만, 예전엔 그렇질 못하여 미국에서 비행기 타고 오는편보다 더 늦게 육지에
돌아올수 밖에 없다고들 하기도 하였다.
밤새 배멀미끝에 용기포 부두에 도착하니 보이는것은 한치앞도 알아볼수 없는
해무(바다 안개)와 얼룩무늬 해병들뿐...
석달간의 지루한 백령도 생활이 부두의 해무많큼이나 어려울것이란 것을
미루어 짐작 할수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 코란도 짚을 끌고 두무진 해군부대이며, 연화리 공군부대,
북포리 해병대,진촌리 해병대 숙소를 수도없이 덜컹거리며 비포장 도로를
쳇바퀴 돌듯 하여야만 했다.
그래도 짬짬이 백령도의 구석구석을 �f터볼수있기에 지금은 그곳을
그리워 하는지도 모른다.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가 이곳을 중히 여겼고, 고려를 세운 왕건도 이곳을
시발점으로 전라도땅에 뿌리를 내릴수있어 삼국을 장악할수도 있었으며
중국과의 주된 교역로로 인하여 심청의 전설이 내려오기도 했다.
초기 예수교 전파의 경로에 포함이되어 아주 오래된 중화동교회가 아직도
선교활동을 하기도 한다.
하기사 패총등 선사시대의 유적도 있으니 유구한 세월속에 서해바다를
지키고 있었슴을 자랑한다면 한점 모자람이 없을것이다.
두무진 해변에서 배를타고 해안을 돌면 파도에 깎인 절묘한 서해의 해금강을
맛볼수있으며,바닷속 맑은물 아래 해삼이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게되고
바위틈 사이로 피어난 빨간 해당화는 아직도 뇌리속에 선명하다.
콩돌해안에 자그마한 돌들이 파도에 깎이어 좌르르 소리를 내며 영롱한
오색빛을 발하기에 눈과귀를 멀게 할수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심청이 연꽃되어 떠내려온 연화리 바닷가...
세계에 나폴리해안과 이곳뿐이라는 사곳 천연 비행장...
심청각에 오르면 옹진곶이 한눈에 들어와 단숨에라도 헤엄쳐 건너갈수
있을것 같은 북녘의 땅...
한밤 꽃게잡이 배들의 휘황찬란한 바닷등불들...
고을 고을 농사터에 보릿이삭이 너울대던 황금의 벌판...
어느산속이나 펼쳐져 있던 야생란의 군락지...
파도가 만들어낸 희귀한 수석들...
방파제 끝에 낙싯대 드리우기만 하면 물던 우럭...
돌처럼 단단해 결국 되쳐먹던 자연산 전복...
배터에나가 꽃게 한바구니 사서 양은솥에 삶아 밤새도록 발라먹던일...
백령도 하나뿐이던 목욕탕(남여가 하루씩 격일제로 목욕함)까지...
김일성이 죽었엇던날...
마눌님은 전화로 빨리 들어오라고, 죽더라도 가족이 함께 하자고
애걸 하였었건만, 십여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행동을 취할지???
봄이오면 그시절이 그리워지고 한번 가보리라 마음만 있고
행동으로 취하여 지질 않는다...
2006.02.28.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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