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을 들으면 그해 겨울 가장 길었던 하룻저녘이 기억된다.
삼일간의 근무를 마치고 하룻동안의 휴식을 취하려 집에와 온종일 잠으로
때우고 있었는데 새�駙� 어머니께서 날 깨우신다.
전날밤 박대통령이 서거하였다고 빨리 복귀하란다.
자대에 복귀하여 보니 동료들은 밤새 한숨도 붙이지 못하여 쾡하니 충혈된 눈으로
초비상 사태를 맞이하고 있었고 부대안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국가 비상사태에 이르러 한낮 사병에 불과한 내가 그흐름속에 휘말리어
어쩔수없이 겪어야 했던일을 회상해본다.
군화를 벗지도 못하고 쪼각잠을 청하면서 몇날을 지냈는지 모를즈음
비서실에서 권총 한정과 실탄 다섯발,소총한자루에 실탄 스므발을 단독군장으로
고참병과 졸병 각 한명을 차출을 명하여 준비를 하였다.
도심지에서는 실탄을 장착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의아해하며 비서실에
도착하여 보니 즉시 짚차에 승차 하랜다.
사령부를 빠져나와 채5분도 안돼 도착한곳은 광화문 네거리 국제극장뒷편
고급주택가에 자리잡은 안가(총수가 잠깐 휴식을 취하거나, 수사실로 이용)였다.
우리가 도착하기 바로전에 김*규가 이곳에서 다른곳으로 이동하였다는
당번병의 말과 언제 중정에서 그들의 총수를 구출하기위해 이곳을 처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불과 백여미터 전방의 중정 정동분실 빌딩에서는 창문마다 불이 밝게 켜져있어
혹여 정말로 처들어올 역적모의를 하지않나 싶었다.
점점 어둠에 이곳은 적막함을 더해갔다.
통행금지 시간이 넘어 차량의 소음도 멋고,정원엔 초겨울의 스설한 바람에
마른 마지막 오동닢들을 떨구어 그 소리마져도 마치 사람의 발자국소리 같이
담장그늘아래 은폐하고 있는 우리둘의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하였다.
가슴속에 품은 권총에 손을 뗄수도 없는 두려움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만약에 담넘어로 침입자가 나타난다면...
그들이 나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한다면...
오늘밤이 내게 마지막 밤이 된다면...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초롱초롱 서울하늘을 수놓고 있건만,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어수선하기만 한 이시대에 내가 이곳에서
마지막 밤이되어 부모에게도 전하지 못하고,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사라지게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손목시계를 바라보지만
그놈의 분침과 시침은 멋어 있는것만 같았다.
동쪽하늘에 여명이 밝아오고 드믄드믄 차량의 소리가 들려옴에
밤새도록 어둠의 나락 끝에서 빛을 보듯이 안도의 긴한숨을 들이쉬고
이젠 살았다는 안도감에 졸병과 둘이 숙소병의 방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몇일후 한남동 총장공관에선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해 오월 광주에선 군화발자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년후...
원주의 대학건물을 세울적에 학생들이 광주사태(오월의 민주항쟁)기념
데모를 벌리며 학생회관에서 해외필름을 입수하여 영상기록물을
돌리고 있기에 한번 들어가 구경을 하면서
처참하게 학살되는 광주시민과 계엄군의 잔혹한 만행을 보게된다.
학생들과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다를수밖에 없었다.
계엄군도 우리와 같은시기에 군에 간탓으로 그곳에 있었을뿐이며,
내가 그당시 분실에서 담장으로 넘어오는 침입자가 있었다면
상부의 명령이 없었더라도 내가 살기위해 사격을 가했을것이다.
혹여 그것이 무언의 사살명령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제는 그렇게 무시무시했던 군부의 세월이 아니며,
민주주의가 완전히 뿌리내린 세월이기에
자식을 군에 보내더라도 그런 경험을 할수도 없는 세상이다.
'유신의 국군'이란 군가가 박통이 죽자마자 없어지듯
국방의 의무는 어쩔수없는 젊음의 짐이기에
헤쳐 나아가야 하며,
추후에 그리움의 추억 한페이지를 장식하는것이 아닐까???
2006.03.11.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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