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외 유적지 탐방

제61편 ; 대흥 동서리 미륵불(예산 6)

푸른나귀 2024. 3. 19. 19:26

1. 들어가며

 

 아침부터 봄비가 주적거리며 내리기에 밭일을 멈추고, 미루었던 내포지역 2차 미륵불 답사를 진행하였다.

 화성에서 619번 지방도를 따라 23km 정도가면 예당 저수지를 끼고 좌측의 도로변에 위치한다. 나무 홴스 안에 서 있는 이 미륵불은 마을에서는 망태할아버지로 불리우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제를 지낸다고 한다. 

 미륵은 전면의 저수지를 향해 동향으로 서 있는데, 원래 송림사라는 유적에서 일제시대에 대흥면사무소로 옮겨지고, 그후 대흥초등학교 교정으로 다시 옮겨진 후, 일제말기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나 근래 도로확장으로 조금 뒤로 물러선 현재의 위치로 수없이 옮겨짐을 당해야 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불상인지, 문인석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미륵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좌대는 최근의 자연석을 바닥에 놓고, 미륵의 높이는 2.0m이고, 어깨 폭 0.5m, 몸통 두께 0.4m, 얼굴크기가 0.5m로 4등신이다. 전면 얼굴은 조각하기 쉽도록 화강암 중 연약한 암으로 조성했는지 풍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  눈, 코, 입을 구분할 수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머리에 쓴 보관은 문양이 있었을 것이지만 보이질 않고 상부가 평편하다. 이는 보관 위에 보개를 얹을 수 있도록 조성한 것 같다. 보개돌은 아마 소실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후편의 가사옷 소매의 선을 보면 오른손을 올려 가슴부분으로 향하였는데, 이는 오른손이 시무외인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이되고, 왼쪽 소매는 직선으로 내려간 것을 보면 왼손은 여원인을 수인으로 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전면 목부분의 삼도가 보이지 않고, 손의 형상이 많이 홰손되어 두 손을 모아 홀을 쥐고 있는 문인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사의 옷주름선이 홰손으로 전면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보관의 형태로는 문인석에서 자주 나타내는 사모와 관대가 아니라서 불상으로 추측이 되지만, 전면부 중앙의 위에서 아래로 봉긋하게 긴 칼이나 몽둥이를 나타내는 것 같아 무인석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천진난만한 미소가 무인석이 아님을 나타난다. 

 

 

2. 참고자료

 

   @ 위치 ; 예산군 대흥면 예당로 897-1

   @ 지정 ; 비지정 문화재

 

  ◎ 망태 할아버지 석상

     주민과 마을의 상징적이고 정신적 지주인 망태 할아버지상은 매년 2월 초하루 주민 모두 마을제를 올리고 마을의 안녕을 빌었던 곳으로 오랜 역사적 배경과 스토리텔링을 찾아 관광객들도 자주 들르는 대흥의 명소 중 하나이다.(현장 안내판 참조)

 

  

   @ 예당저수지 앞 619번 지방도로 변에 위치한 동서리 미륵불의 전경

   @ 약간 머리 부분을 숙인듯한 형태의 우측면 전경

   @ 뒷모습으로 보면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왼손을 내려트린 형상으로 보여 통인(通印)으로 추정된다.

   @ 음력 2월 초하루에 동네사람들이 제를 지낸 흔적으로 북어, 실타래, 시루떡과 지폐를 매단 모습이다.

   @ 하부의 옷주름과 손의 모습 등은 풍화로 인하여 명확하지 않다. 

   @ 동네에서는 망태할아버지 석상으로 불리고 있다. 이 동네에서는 아이들 훈육차원에서 망태할아버지를 보령의 광천쪽다리에 견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