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자료모음 7

《성호선생사설》과 울릉도

1. 《성호선생사설》 천지문(天地門) 3 「울릉도」 안용복이라는 자는 동래부의 전선(戰船) 노군(櫓軍, 노 젓는 일을 하는 군사)인데, 왜관에 출입해 왜말을 잘했다. 우리 숙종 19년(1693)인 계유년 여름에 울릉도에 표류를 했는데, 일본 배 7척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때 얼마후 왜인들이 섬을 다투는 논쟁을 일으키자 안용복이 왜인과 더불어 논쟁하며 따졌고, 왜인들이 노하여 잡아가지고 돌아가서 오랑도(五浪島)에 가두었다. 안용복이 그 오랑도주에게 "울릉(鬱陵), 우산(芋山)은 본래 조선에 속했습니다. 조선은 가깝고 왜는 먼데 어떤 이유로 나를 가두어 잡아두고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라고 하니 도주가 그를 백기주(伯耆州)로 보냈다. 백기도주가 빈례(賓禮)로써 대우하며 은을 주었지만 번번히 사양..

백운거사 이규보

1. 농민의 눈물을 시에 담아낸 이규보 망년회 회원들은 불우한 가운데에서도 한 시대를 진작 시키는 문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는 의식은 부족했다. 또 중국의 고사와 문체를 따르기에 열중하여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비평을 듣는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한 문인은 이들보다 훨씬 길게 활동한 이규보이다. 이규보의 아버지 이윤수는 여주의 토착세력인데 개경으로 와서 낮은 벼슬을 종사하였다. 이규보는 개경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릴적 이야기를 쓸 때 개경을 배경으로 하였다. 이규보는 20세 이전에 과거를 세 번 보았으나 번번히 낙방하였다. 한미한 집안 탓도 있겠지만 그의 말대로 술을 퍼 마시며 방탕하게 생활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세 초반에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좋은 자리를 주지 않아 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