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자료모음

선영지 탐방...

푸른나귀 2016. 5. 20. 17:59


 500년 역사를 가진 조선시대가 멸망의 길로 자초하게 된데에는 민생을 걱정하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 하려는 권력들의 파당싸움이 가장 큰 역활을 하였다.

고려말에 역성혁명과 세조의 왕위찬탈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한명회,·권람,홍윤성,정인지,신숙주,·조석문,·정창손,·최항등이 정권을 잡아 훈구파를 형성하고, 역성혁명과 왕위찬탈에 항거한 사육신및 생육신들은 향리로 숨어들어 사림파를 형성하게 된다.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남효온,조광조에 이어지는 사림파는 조선초기 훈구파에 눌리어 중앙정치로 진입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학풍으로 왕도정치, 경학의중시, 향촌자치제를 정하고 훈구파와 맞서게 되는 실력을 길러간다. 성종때부터 사림파는 중앙정치에 참여하게 되나 연산군에 이어 명종때까지 50년 동안에 무려 네차레의 사화가 겹치면서 중종반정에 이은 선조가 왕위를 오를때까지 정쟁은 계속되었다. 이로인해 국토와 백성은 피폐해지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자초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영정조때의 탕평책에 조선중반기 중흥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조선시대는 파당 당파로 얼룩져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

작금의 시대에도 정치권력을 차지한자와 빼앗으려 하는자가 이전투구를 벌리는 모습이 민의를 모으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눈앞에 두고 싸우는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음에 개탄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역사는 흐르고 그 흔적들은 남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옳바른 삶인가를 전해주기에 위안을 삼는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선생이 영남학파의학통을 이으면서 동방의 5현자(정여창,김굉필,조광조,이황,이언적)로 추앙을 받으며 제자들을 양성하던 장소이다. 서원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서원철폐를 감행하던 시기에도 살아 남은 몇안되는 서원으로 세계문화유산(경주시 안강읍)으로 지정 되어 있다.

선조임금께서 옥산서원의 현판을 아계 이산해(사육신 이개의 종고손, 토정 이지함선생의 조카,숙부에게서 학문을 익힘,충남 보령)에게 쓰게 하였고, 몇해후 구인당이 소실되자 추사 김정희에게 다시쓰게 하여 전면에 부착하도록 하였다.



                                                                                옥산서원 전경

                                                            옥산서원 현판(추사 김정희 글)

                                                            옥산서원 현판(아계 이산해 글)



                                                                   세심대 (퇴계 이황의 글)

                                                                           옥산서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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