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79편 ; 내현리 우천선생 사은비

푸른나귀 2024. 3. 18. 18:06

 ◎ 우천 노정우(又川 盧貞愚)선생 사은비

   

       청라면사무소에서 청소 쪽으로 난 609번 지방도를 따라 1.0km 쯤 가다보면 우측으로 안골동네가 보인다.

 원래 이곳은 교하노씨의 집성촌으로 근래까지도 타성씨는 들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보수적인 동네였다. 동네의 맨 윗쪽에는 그 집안의 종손이 사는 집이 있는데 그곳의 사랑채가  예전에 한학을 가르치는 서당이 있었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각 고을의 젊은이들이 사서삼경의 한문학을 배우기 위해 서당을 찾았으며, 우리 어릴적에 보아온 모습은 갓쓰고 회초리 들고 근엄하게 앉아있는 훈장님과 그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흔들며 큰소리로 글읽던 학동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훈장님 사후에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이 사은비는 청고을에서 특이하게 한학자 스승을 기리는 비이다.

 애초에는 원모루에서 안골로 들어서는 소로옆(지금의 농공단지 옆)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농경지가 정리되면서 다락골로 들어가는 농로사거리의 현재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내현리 출신의 소설가 김종광이 유년시절을 그려낸 ' 별의 별- 나를 키운 것들'을 읽으면서 공덕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발췌 해 실어본다. 나와는 14년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급변하지 않고 느릿하게 변화가 오던 시절이라 그런지 동질감을 느끼게도 한다. 

 

@ 참고자료

  ◎ 위치 ; 보령시 청라면 내현리 464-3 (내현 버스정류장 건너편)

 

  ◎ 공덕비

       새마을운동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구멍가게인지 술집인지 헛갈리는 그 집의 주인 할머니가 왜 '마님'이라고 불리는지 알지 못했다. 동네에 서당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일제시대에 무슨 서당이 있었다는 겨?"

 어른들이 말하는(이미 돌아가신) '훈장님'댁이 도대체 어느 집인지 알지 못했다. 

 훈장께 뭐라도 배운 어른들은 그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했다. 경지정리 사업이 끝나고, 구멍가게 건너편 두어 평 땅뙈기에 공덕비를 세웠다. 

 보령 남포에서 아주 좋은 돌을 사왔고, 저명한 석수장이에게 맡겨 글자를 새겼고, 울력으로 비를 세웠다. 나무 울타리까지 두른 뒤에 동네잔치를 벌렸다. 훈장님이 서거한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잔치 마당에서 마님은 달맞이꽃처럼 조용히 울었다.

 훈장님께 천자문을 배운 이들 중에서 특출하게 영민했다는 고주망태 아저씨가 비문을 지었는데, 골자만 추리면 이와 같았다. 

 ' 무지몽매한 아이들에게 문자와 지식과 지혜를 전해주어 이 마을의 주인으로 옳게 서게 하였으니 이 모두가 스승의 은혜입니다!'

 마님은 경찰이던 외자식(훈장님의 아들)이 시위 진압 중에 죽자, 당신 역시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수리사에 들어가 죽는 날까지 불공만 드렸다.

 마님이 구멍가게를 떠나자, 구멍가게는 더 이상 사람을 불러 모으지 못하는 꽃과 같았다. 게다가 거의 모든 범골인에게 자전거 아니면 오토바이가 생겼다. 버스도 다니게 되었다. 면 소재지로 시내로 나가는 길이 쉬워졌다. 술 장사도 안되고 담배장사고 안되고, 되는 장사가 아무것도 없게 되자 새 주인은 가게를 때려치우고 말았다.

 옛 추억을 찾으러 왔던 이들은 마님이 아직도 계실까, 버스 정류장 아래 문씨네 집 대문을 어렴성 없이 두드리고는 했다. 문씨는 환장하려고 했다.

 " 나는 얼굴도 모르는 할마시 때문에, 아주 죽겠구만. 여기서 뭔 술집이 있었다고 지랄하는 놈들이 왜 이리 많어. 과자 사러 왔다는 치매 할망구들로도 돌 판이구만."

 하루에 다섯 번 버스가 드나드느데, 버스 시간 한참 전에 와서 멀거니 기다리는 늙은이들 중에는 " 아이구, 날도 더운디 마님네 가서 아이스께끼라도 하나 빨고 가야 쓰겄다!" 하고 문씨네 대문 앞까지 갔다가 "아이구, 내가 정신이 나갔네, 언제 적 구멍가게여!" 제 기억을 탄하는 이도 있었다.

 정류장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아무개 훈장님 공덕비', 그 낡은 시설을 보고 궁금해하는 타지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이 동네에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 살았던 모양이네요. 대관절 뭐 하신 분이래요?"

 비문을 읽어보면 알 일이지만, 한자 아는 사람이 드문 시대가 되었고, 안다 해도 술술 읽어내기 어렵게 마모된 글자가 여럿이었다. 

 안타깝게도 아는 늙은이는 설명할 기력이 없었고, 좀 아는 중늙은이는 " 나두 잘 모르구유. 뭐, 훈장님이 계셨다던데..."했고, 젊은이는 "우리도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노인 분들이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라고 대답했다.( 별의 별, 김종광, 문학과지성사, 2015, 221~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