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81편 ; 청라 사내사(舍乃寺) 흔적 답사

푸른나귀 2024. 4. 27. 19:41

1. 들어가며

 

   보령문화연구회에서 2024년 4월 27일(토)에 백월산 아래에 위치 하였다는 사내사(舍乃寺) 추정지를 답사하였다. 

 1715년 충청수영성 자료에 의하면 충청수영의 속사(屬寺)로 청양의 장곡사(長谷寺), 임천의 보광사(普光寺), 한산의 고석사(孤石寺), 보령 오서산의 성당사(聖堂寺),  백월산의 사내사(舍乃寺), 남포의 영흥사(永興寺)로 기록되어 있다.

  보령문화연구회에서 2022년 11월 사내사 사지 1차 답사를 하였으나 지표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번 답사로 사지로 비정되길 바라는 바였다. 

 

 새내라는 지명은 라원리의 동북쪽, 즉 백월산의 서남쪽으로 펼쳐진 완만한 능선의 깊고 평편한 경사지이다. 전면으로 성주산 장군봉이 바라다 보이고, 멀리 청천 저수지까지 넓은 전망이 보이는 곳으로 예부터 산골살림을 하던 주민들이 살았던 공간이다. 상중저수지에서 우측으로 성태산과 문봉산 사이로 난 늦은목고개를 통하여 부여군 외산면으로 통하고, 중앙으로 성태산과 백월산 사이 다리티재를 통하여 청양과 공주로 통하는 교통과 문물이 연결되던 길이었다. 새내 골짜기를 통하여 소릿골과 화성을 통하는 고갯길이 있기도 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남포와 보령을 잇는 이인도와 부여와 예산을 잇던 금정도를 연결하던 소로의 역활을 하였다고 본다.

 

 주민들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진주강씨 묘역이 있는 자리는 옛 주거지가 있었으며, 옛 절터로는 큰절터와 작은 절터가 있었는데 큰 절터는 진주강씨 묘역에서 200~400m 윗쪽으로 소나무가 우거진 넓은 골짜기에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답사 전전날에 그 지역 출신 친구와 함께 골짜기를 훓터 보았다. 이곳저곳에 연락을 하면서 겨우 비슷한 곳을 찾아 답사일에 다시 가보니 석축의 상부 토사가 석탄가루가 산재해 있었다. 근대에 광산개발로 인한 석탄과 버럭을 쌓아 놓은 석축으로 판단되며 산재한 돌을 볼때 상부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거주지로서는 불안한 위치로 판단들을 하였다. 큰 절터의 흔적이 다른 곳에 존재하는지는 가시덤불이 우거져 추후에 낙엽이 지면 다시 답사를 해 보아야할 것 같다.

 

 다시 진주강씨 묘역으로 돌아와 회원들과 전면의 대나무 숲을 뒤지며 잠시동안 지표조사를 하였는데, 와편이 상당하게 나온다. 제법 형태다운 숫키와와 암기와 와편이 발견 되었다. 7~80년대에 이곳에 살던 주민은 분명 기와집을 짓고 살 형편이 아니었을텐데 점토를 구워 만든 기와편이 발견된 것을 볼 때 조선시대 이곳이 사내사(舍乃寺)의 절터였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늦가을에 큰 절터를 다시 찾아보고 그곳에 와편이 나오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2. 참고자료

 

     @ 위치 ;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 산 10번지

 

   @ 사내사(舍乃寺)의 추정지로 추정되는 청라면 나원리 산 9번지에 설치된 진주강씨 추모비가 설치되어 있다.

   @ 진주강씨 추모비 앞 대나무 숲의 지표조사 중 발굴된 옛 기와의 암숫기와 와편들

   @ 백월산 주봉 아래 해발 380m 부근 경사면의 옛 큰절터로 추정 되었던 지점

    @ 뒷쪽 석축벽으로 개략 2.0m 높이에 길이 10.0m 정도로 추정함

   @ 하단부 석축구간으로 높이 1.0m 로 추정 됨.

   @ 충청수영에서 속사(屬寺)로 운용하였던 절 다섯곳 중 한곳으로 지정된 사내사의 기록.

    @ 사내사 답사 참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