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75편 ; 청라 김성우 장군 추모 제향

푸른나귀 2023. 11. 6. 16:54

1. 들어가며

 

     양력 11월 1일 11시에 추모 제향 행사가 시작 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인 1(하나)를 의미한다는 진행자의 말처럼,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는 과정에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으로 승화한 장군의 넋을 기리고자 장군봉이 바라다 보이는 발산에서 추모행사가 열렸다.

 발산(鉢山)을 지역 사람들은 '바래미' 혹은 '바리미'라고 불리었다. 발산이라는 지명이 국내에서도 여러곳에 산재하는데, 이것은 둥그스름하고 밋밋한 동산의 형태를 가진 지형을, 즉 절에서 승려들이 쓰는 밥그릇 바리때를 엎어 놓은 형상의 지형을 말하는데 우리땅 이름이 한자화 하면서 발( ; 바리때 발)로 변형된 것으로 본다.

 제향을 지내는 동안 청천저수지에서 라원 들판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이 골바람이 되어 현수막과 화환을 쓰러트리고, 주차장에 설치한 천막들이 날아갈 정도로 매서웠다. '바래미'라는 이곳의 지명이 바람골이어서 그리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봄이면 묘역에 인동의 아주머니들이 고사리 꺾으러 올라다니는 묘역은 원래 산의 형태가 발산(鉢山)처럼 봉긋하게 생긴 곳을 찾아 묘를 썻는지, 아니면 전해지는 말처럼 지겟짐으로 퍼 날라 산을 만들었는지 환갑이 넘어서도 궁금하다. 주변 지형을 보면 자연적으로 야산 밑이 붕알처럼 붕긋하게 솟아올라 무덤을 썻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보령에는 아직도 김성우장군에 대하여 전설 속의 인물이라거니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라거니 설왕설래가 존재한다.

 이런 비판 속에서 김성우장군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오고, 연구논문들과 학술회의들을 발표할 수 있도록 자자체가 지원하여 살아 숨쉬는 김성우 장군이 되길 항상 기원한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우리역사에서 빼앗기는 것을 처다보고 있듯이, 야사(野史)라고, 정사(正史)에 실리지 않았다고 방관하는 것도 후손으로는 태만한 짓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끌어다 만드는 왜곡의 사관을 가져서는 더욱 안될 일이다. 김영모의 '김성우 평전'을 뛰어넘는 그런 논문을 기대해 본다. (참고자료 ; 보령의 흔적따라 제20편, 제77편)

  

  

   @ 청라면 라원리 발산에 설치 된 김성우 장군 추모 제향 현수막

   @ 추모제향을 지역 군부대의 예총의식에이어 불교의식과 유교의식에 따라 진행되었다.  

   @ 발산 김성우 장군 묘역에서 진행되는 추모 의식 진행모습

    @ 보령시 주최로 주관은 김성우 장군 추모제향 추진위원회와 보령문화지킴이 봉사단이 하였다.

   @ 장군 묘역 앞으로 주차장 뒤편에 사당이 건립되고 묘역 정화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