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73편 ; 무염국사 공부길 따라 떠나는 답사(3. 영제 만고사)

푸른나귀 2023. 10. 21. 21:15

1. 들어가며

 

    보령의 향토연구자들은 무염국사가 스승 마곡보철을 마곡사에 머무는 보철 스님일 것이라는 가정하에 중국 최초의 선종사찰이라는 마곡사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마곡사라는 절은 찾지 못하였고, 현재 설화산의 옛이름이 마곡산이라 불리었으며, 그곳에 마곡사라는 이름과 비슷한 만고사(萬古寺)가 있고, 만고사의 일주문에는 '중원제일선림(中原第一禪林)'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기에 이곳을 무염국사가 선종 10조의 심인을 받은 마곡사이거나, 마곡사가 훼철 된 후 근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만고사가 창건된 연대는 854년(당대중 11년)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무염국사가 귀국한 이후의 일이라서 확실하게 무염국사가 이곳을 거쳐간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다보불탑(多寶佛塔)의 안내판을 보면 다보불탑이 처음 세워진 것이 북위 정광3년(522년)으로 기록 되어 있고, 명나라 대(1556년)에 대지진으로 무너진 탑을 묘봉 스님이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무염국사가 전탑을 돌며 기도를 하였을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만고사(萬古寺)는 산서성 영제시 설화산에 있는 절이다. 동관을 지나 황하를 건너면 설화산 기슭 아래 좁은 마을길을 지나가자 풀숲으로 뒤엉킨 일주문이 보인다. 오래도록 신도들이 찾지 않았는지 한적하기만 한데, 오늘은 그믐날이라 근동의 신자들이 기도를 하러 온 차량들이 이따금 보인다. 중국에서 가장 조용한 절이라더니 스님들은 보이지 않고 관리인들과 보수공사 중인 장비들만 오고간다. 사찰 맨 뒤에 위치한 무량전을 휘장을 치고 공사 중이었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불교 사원의 배치형식이 아니어서 어색하기만 한데 초입 관음보전 좌우로 종루와 고루가 배치되어 있다. 종루에는 커다란 종이 걸려 있는데 종을 매다는 용뉴는 두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고, 종의 표면에는 시주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종과는 달리 바닥에 움푹 파인 울림통이 없어 종소리가 다를 것 같은데 종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타종 도구를 묶어 놓았다. 고루에는 아쉽게도 북이 걸려있지 않았다.

 여성스러운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을 지나 수륙전(水陆殿)에 들어서니 부처님의 열반을 형상화한 와불이 있었다. 신장이 15m라고 하고, 전당 내에 33존불이 벽면을 채워 부조로 조성되어 있다. 굉장한 규모인데 대부분의 부처상은 점토로 만들어 채색을 하였다. 수륙전 앞으로 거대한 전탑이 세워져 있는데, 절에서는 탑이 부처님과 동일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텁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부처님의 말씀을 모시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탑이 대부분 석탑인데 비해 중국의 탑은 벽돌로 만든 전탑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성이나 집들이 조적식(벽돌식) 구조인 것을 보면 재료의 구입이 용이하고 시공의 편리성 때문인가 보다. 우리나라에는 전탑이 여주와 안동부근에 일부 남아 있지만 흔하지 않다.

 후원에 세워진 다보불탑(多寶佛塔)도 전탑으로 세워진 13층의 탑으로 웅장하기 그지 없다. 다보불에는 4가지 보물이 내장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옥불, 사리, 금판심경, 옥함이라고 한다. 다보불 맨 꼭대기엔 푸르름을 자랑하는 초목이 언뜻 보이기도 하는데 일제가 침략했을 당시 포탄을 맞아 일부 파손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격변기 문화혁명시절 전탑이 파손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곳이며, 무량전은 부처님과 아미타불을 모시는 곳이라 한다. 이곳 무량전은 천정의 구조가 격자틀이 없어서 무량전이라고 한단다. 만고사의 맨 뒷편에 위치한 무량전은 보수공사 중이어서 들어가보지 못하고 나오는 길에 옆에 붙어있는 도교사원에 들렀다.

 

 불교가 인도를 떠나 티벳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당나라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웠지만, 당나라 후반기 훼철을 당하면서 몰락의 위기를 맞이하고, 아직도 그 부흥기를 다시 맞이하지 못하는 것도 사회주의 제도 때문인가 생각해 보지만, 도교의 융성에 비교해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무염국사가 선종을 익히기 위해 중국 대륙에서 26년 간 선종의 대가들을 찾아 수도를 행하였던 곳. 

 그곳을 찾아 떠난 길에 만고사의 담장 위에 덮인 기왓장들이 한마리 기다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꾼다. (보령문화 제28집, 보령문화연구회, 2019, 279~322쪽, 성주사 무염국사의 구법행로 답사(신재완) 참조) 

 

 

   @ 풀숲으로 덮어쓴 만고사 일주문엔 '중원제일선림(中原第一禪林)'이라 표기되어 있다.   

   @ 오랫동안 폐사 되다시피 한 만고사가 관광객들이 점차 많아지는지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 사원 입구에 세워진 만고사의 내력 비각 '영제만고사복건선당비기(永濟萬固寺復建禪堂碑記)'

   @ 만고사 절 입구에는 도교사원과는 달리 사천왕상이 절을 지키고 있다.

   @ 소림사 달마대사의 제자가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기에 담벼락엔 각종 무예의 동작들이 각인되어 있다.

   @ 우리나라의 범종과 중국의 범종의 차잇점을 설명하는 문화원장. 종을 매다는 용뉴의 용이 중국은 두마리이고 한국은 한마리이다. 종소리의 울림통인 바닥의 구덩이가 없는 것도 중국 범종의 특징이다.

    @ 관음전에 보시고 있는 관음보살의 불상은 여성스럽지만 중국스럽게 화려하다.

   @ 관음전 앞에서 바라다본 다보불탑(多寶佛塔)

    @ 전탑의 위용을 자랑하는 전탑. 맨 꼭대기엔 전돌 틈새에 뿌리박고 생명이 자라고 있다.

   @ 다보불탑의 1층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 다보불탑의 설치 연혁. 북위 정광3년(522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1556년(명가청34년) 대지진으로 붕괴되어 보수하였다는 내용이다.  

   @ 수륙전(水陆殿) 내에 누워있는 와불

    @ 와불 주위로 부조된 보살 상들

    @ 사원 담장의 기와를 용으로 형상화하여 화마를 쫒아내는 역술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 만고사의 한켠에는 도교사원으로 내주고 있었다. 중국의 신앙은 불교보다 도교가 민중들 깊숙히 담겨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