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외 유적지 탐방

제15편 ; 중정 기념당(대만 1)

푸른나귀 2023. 1. 14. 16:20

  1. 들어가며

 

   새해를 맞이하여 늦깍기로 함께 공부했던 학우들과 3박 4일간의 겨울여행을 다녀왔다.

   타이완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와 아주 가까운 우방국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았던 국가였지만, 냉전시대의 종식하고 자유시장경제를 우선시하는 북방정책에 따라 우리가 소련과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로 한동안 냉랭한 관계를 가졌던 마음 아픈 나라로, 경상남북도와 제주도를 더한 면적을 가진 섬나라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전국민 2천 4백만여명 대부분은 해안가에 형성된 평지에 거주하기에 실제의 인구밀도는 대단히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오위안(桃園,도원) 국제공항의 상공에서 바라본 타이완의 첫인상은 곳곳에 유수지가 많이 분포되어 있어 무엇일까 궁금하였다. 화련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농경지 주변으로 양어장이 곳곳에 설치되어 양식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까닭이었다.  타이완은 이모작이 가능하여 정월달인 현재 트랙터로 모내기 위한 써래질을 하고 있었고, 농경지 침식을 가져오는 농가주택이 불법적으로 증가되어 정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시내 중앙에 위치한 장개석(장제스,張介石) 총통을 기념하여 세워진 중정기념당은 타이완 초대총통으로 추대된 장개석의 사유지를 그의 아들 장경국(장징궈,張經國)에 의해 타이페이 시민들에게 돌려주었다. 이에 시민들은 자발적인 기부를 통하여 공원을 조성하고 장개석 총통을 추모하는 공원으로 만들었다. 그러한 이유로 공원을 출입하는 시민들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며,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지않기 때문에 필요 운영경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정문 양쪽으로 국립극장과 콘서트 홀을 세워 대관료로 유지한다고 한다.

 대지의 총면적이 25만km2으로 타이페이 시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원으로, 중앙의 89단 계단을 올라가 세워진 76m에 이르는 2층 규모의 대리석 건물은 1980년도에 세워졌으며, 남색 지붕과 백색 대리석 벽체와 어울려 웅장함을 보여준다. 기념당 내부에는 장개석 총통의 동상이 중국 대륙을 향해 근엄하게 앉아 있는데, 이는 회복해야 할 본토에 대한 갈망을 표하는 것 같다.

 

 장개석 총통은 신해혁명을 주도한 손문(쑨원,孫文)의 후계자로 1928~1949년까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주석을 지냈으며, 1949년 이후에는 타이완의 국민당 정부 주석을 지낸 인물이다.

 1926년 중국북부의 군벌들을 제압하고 중국대륙 전역을 장악하였고,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공산당과 협력하여 일본침략군과 함께 싸우기도 하였으나, 1946년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이 시작되어 결국 국민당이 부정과 부패로 인민들의 지지가 공산당쪽으로 옮겨가자, 1949년 대륙 전체를 모택동(마오쩌뚱,毛澤東)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국민당 잔여부대를 이끌고 상하이를 경유하여 타이완으로 도착한 장개석은 국민당 지도자들과 함께 중화민국을 건국하고 본토를 회복하기 위하여 무던한 힘을 쏟았으나 1975년에 사망을 하면서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타이완으로 정부를 옮겨서도 한동안 세계 제2차대전 승전국으로써의 상임이사국으로 행사를 하였으나, 1979년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중공)과의 핑퐁외교로 국교가 수립되면서 고립무원의 정세가 지속되었다.

 

 장개석 총통은 국민당을 이끌면서 우리나라의 임시정부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대만으로 물러서면서 대륙에서 가져온 많은 자산과 인력으로 중소기업을 장려하여 크게 번영을 하였고, 우리나라의 한국동란과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는 아마 장총통이나 박대통령이 일본 유학이나 일본군에 근무하였던 공통적인 분모가 있었기에 서로 통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미치게된다. 타이완의 곳곳마다 작은 규모의 공장들이 산재하여 있는 모습을 보니 그들이 좁은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만약에 한국동란 당시 북한에 의해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고, 바다로 내몰리어 제주도에 대한민국정부가 세워졌더라면 이들만큼이나 생명력을 유지하였을까 하는 의구심과, 미국에 의한 핵우산과 동맹국관계가 미국의 실리를 위해 버려진다면 대만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하는 생각에 미치게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시진핑은 타이완의 독립을 절대 용납을 못하고 무력도 불사하겠다는 논평을 수시로 내놓고 있지만, 타이완 정부는 본토에서 건너온 국민당 계파와 독립을 원하는 민진당 계파간의 갈등 또한 우리의 정세와 엇비슷하다.

 타이완의 자유광장에 들어서면서 태평양을 향한 중국의 집념에 대항하는 대만인에 대한 잡다한 상념들에 휩싸인다.  

 

2. 참고자료

 

     @ 방문일시 ; 2023년 1월 4일 오후

     @ 본토에서 국민당정부가 쫒겨날 당시 국민당 정부 제72사단은 버마를 통하여 태국의 북부 일명 트라이 앵글 지역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태국정부내 확산되던 공산당을 타파를 위하여 공헌을 하였으며, 이에 태국정부는 그들에게 국적을 주고 안주할 수 있게 지원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들은 태국의 소수민족으로 그들의 문화를 지키며 태국 속의 작은 중국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테마여행' 중에서)

 

 

   

   @ 타오위안 국제공항 계류장

   @ 장개석 총통을 기리는 자유광장 입구

   @ 자유광장 내부 전경

   @ 대만 국민이 존경하는 장개석 총통의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