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글

고조선 연구(古朝鮮 硏究) 상, 하

푸른나귀 2022. 10. 11. 21:09

1, 들어가며

 

    저자 윤내현은 1939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으며,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임하였으며, 문광부 문화재의원, 단군학회 회장, 남북역사학자 공동학술회의 남측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중국의 원시시대」,「한국고대사신론」,「상주사(商周史)」,「중국사(전 3권)」,「고조선 연구」,「한국열국사 연구」,「고조선의 강역을 밝힌다」등 한국의 상고사에 대한 연구저서를 많이 발표하였다.

 

 우리나라 고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학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 이견을 좁히지 못하여 일반 대중들은 혼돈스러운 우리역사에  의구심을 갖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역사를 관심갖고 연구하는 사학계는 대체로 세 분류로 나뉘게 되는데, 강단학계라 칭하는 주류사학계와 비주류사학계, 그리고 비주류 중에서 재야사학계로 나뉠 수가 있겠다.

 

 주류사학계로 불리는 학파는 이병도를 원조로 하는 일제 강점기 일본학자들에게서 사서를 받은 부류로 대부분의 사학(史學) 강단은 이들의 후계에 의해 이어지고 있으며 강단에서는 굳건한 사학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민족중심의 역사관을 가진 재야사학자들을 꼽을 수가 있는데, 주류사학자들의 사고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우리역사가 왜곡된 식민사관의 역사라며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고 웅대한 한민족의 꿈을 실현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며 역사를 보는 시각을 주류사학계와 대치하고 있다.

 비주류사학자 중에는 역사 왜곡이 일어난 사유를 검토하고 올바른 역사의 근거를 연구하여 다시 바로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학자들로 단채 신채호를 원조로 삼는다.  주류사학의 식민사관을 타파하고, 재야사학의 민족주의적인 정도를 달리하며 정진하는 학자들이 또한 한 부류를 차지한다.

 

 1980년대 중엽 일반 대중에게는 대동이족에 대한 책들이 민족의 참역사와 정신적 뿌리를 찾고자하는 열의에 돌풍을 일으켰다. 김정빈의 장편소설 '丹', 김태영의 '다물', 박문기의 '맥이', 임승국 번역의 '한단고기'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한 영향으로 강단 사학계를 벗어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를 바라다보는 시각이 변하였고, 우리의 고대사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학술단체들도 생기게 되었다.

 이들 책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된 서적은 '환단고기'인데 이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에서 주류와 비주류를 분리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주류사학계는 '환단고기'가 근래에 쓰여진 위서라고 단정을하며, 사학적 자료로서 일고의 가치없는 허구의 창작품이라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재야사학자들은 '환단고기'는 근래에 쓰여진 것이 맞지만, 전혀 새로운 창작물이 아니라 전부터 전해오던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 한 저술이라는 믿음으로 한민족의 웅대한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을 주장한다.

 비주류사학자는 '환단고기'는 역사서로 완전하게 인정하지는 못하지만, 옛부터 전해오다 일제강점기에 없어진 각종 고서들을 인용하여 쓰였기에 긍정적인 부분들은 인정하여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비주류사학계의 인물로는 신채호의 고조선론을 이어 받은 정인보, 윤내현, 복기대, 신용하로 이어지는 줄기로 대고조선론자라고도 칭한다. 

 윤내현이 '고조선 연구 상,하'편을 편찬하여 한민족의 뿌리를 신화의 세계에서 역사의 세계로 복원하고자 노력을 한 대저작이다. 그의 말을 인용하여 보면 '고조선은 원래 단군조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단군조선의 존재를 부인하고 기자조선을 고조선이라 부르는가 하면, 중국의 이주민과 토착세력이 연합하여 어떤 나라를 세웠을 것으로 가정하고 그것을 고조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단군조선의 존재를 인정하는 학자들까지도 단군조선과 위만조선, 한사군을 합해 고조선이라 부름으로써 고조선이라는 용어는 의미가 선명하지 못하게 사용되고 있다....'라며 머리말에 기록하였다.

 

 고조선의 실체에 대하여 강단사학에서 가르친 기억이 우리에겐 없다. 그저 삼국유사에 단군설화가 실려있는 전설적인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이며, 기껏해야 '8조법금'이 고조선에는 있었다는 정도일 뿐이다.

 단편적으로 들었던 고조선의 실체를 이 책으로 좀 더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국내에는 전해오지 못하여 직관적으로 간과할 수 없지만, 비록 중국땅에 있었던 왕조들의 타인 기록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실정에서 고조선의 실체를 찾아 구성해야 하는 일은 쉽지가 않은 일일 것이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고조선의 전부가 아니고, 고조선에 귀화한 일부 중원의 세력으로 보고, 우리 고조선이라는 문명의 실체가 지속적으로 한반도와 만주대륙을 포함하여 북경 가까이까지 세력을 구축하였다는 논조는 우리의 상고사를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작자가 이 책에서 주장한 내용 중에 두어가지를 뽑아 본다면,

 '고조선의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이었다. 서쪽으로는 북경 근처의 난하 유역에 이르렀고 북쪽은 아르군 강(액이고납하(額爾古納河)), 동북쪽으로 흑룡강(黑龍江) 유역, 남쪽으로는 한반도 남부의 해안선에 이르렀다. 그리고 고조선은 서기전 24~23세기 무렵에 건국되어 서기전 1세기 무렵에 붕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은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한반도와 만주에서 발견된 이 기간의 청동기와 초기 철기의 유적과 유물은 모두 고조선의 것이다.(고조선 연구 상, 윤내현, 만권당, 2019, 35쪽)

 '고조선의 국가 구조를 중국의 상이나 서주와 같은 봉국제도로 본다면 위 인용문에 나타난(제왕운기 첫머리) "그 가운데 사방 천 리"로 표현 된 조선은 고조선의 최고 통치자였던 단군의 직할국이며, 그 주위에는 단군이 제후들에게 위탁하여 통치하도록 한 제후국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단군의 직할지였던 조선의 주위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에는 많은 제후국이 존재했다고 보아야 하므로 위 인용문이 말하는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 것이 된다. 그런데 제후는 고대에 중국에서 사용했던 칭호이며, 한국에서는 그것을 거수(渠帥)라고 했고 그 나라를 거수국(渠帥國)이라 했다. 따라서 한국사에서는 거수와 거수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겠다. ...(중략)...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신라, 고구려, 남옥저, 북옥저, 동부여, 북부여, 예, 맥, 등은 고조선 붕괴 후 한반도와 만주의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던 나라들이다. ...(중략)... 이러한 나라들이 모두 고조선의 후계 세력들이었다면 고조선 시대에 이들은 모두 고조선에 속해 있어야 하므로 고조선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의 넓은 지역을 포괄하고 있어야 한다.'( 상기책, 325~329쪽)라고 주장한다.

 작자는 고조선의 실체를 부인하고 한국사를 왜곡했던 일제의 한민족의 민족의식 말살기도에 부응하는 사학계를 비판하며,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조선의 역사가 가볍게 취급되지 않기를 갈망하고 있다.

 

 지나간 역사의 옳고 그름은 사학자들이 사료의 부족함을 불구하고서라도 연구하고 찾아내야 할 몫이다.

 역사를 너무 확대해석 하는 것도 경계하여야 하고, 식민사관에 젖어 왜소하게 축소하는 것도 경계하여야 한다.

 보통사람들은 사실에 근거한 실체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싶을 뿐이다. 

 

 

 

    @ 고조선 연구 상, 하 ( 윤내현, 만권당,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