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렸을적에...

新 청고을 이야기(4)...

푸른나귀 2008. 9. 26. 15:58

 

 

 넷째글; 김성우장군과 그에 얽힌 지명

 

            작년봄에 동무들과 성주터널위에서부터 장군봉까지 10여Km 종주를 하던중 향천리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봉우리에 오르자 전에는 없었던 안내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향토사단의 부대장이 이곳이 실제 김성우장군이 왜적을 크게 물리치는데 지휘를 하였던

            장군봉이라 주장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땐, 이지역 부대장이 자신의 편협한 지식으로 성주산의 주봉인 장군봉을 임의대로 옮겨

            해석하였다고 좀 얺잖게 생각 하였었다.

            하지만 근래에 김성우장군의 흔적을 쫒아 찿아 다녀보니 그 입간판의 내용이 상당히 사실

            에 근접한것 같다고 느껴진다.

            이에, 지금까지 얻은 지식으로 청고을의 전설로만 들어왔던 위대한 인물 김성우장군의 행적

            을 쫒아보고, 장군에 의해 얽혀진 지명들을 정리해 본다.

 

      하나; 김성우장군의 생애

              장군은 고려말 충숙왕때인 1327년에 개성에서 태어나 1392년 청고을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약관 18세에 절충장군(정3품)으로 제수받고,도만호겸 전라충청양호초토사를 지내셨다.

              도만호라함은 가옥 만채를 다스리는 지방 수령을 말하며, 전라충청양호초토사란 고려말

              정세불안을 틈타 왜구들의 노략질이 서남해안을 따라 험악해지자 왕명에 의하여 임명된

              호남의 육해군 지휘관을 말한다.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는데 호남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우시고, 특히 보령 앞바다로 침입

              해오는 왜적들을 지금은 청천저수지로 수몰되어버린 갬밭(지금의 갬발과는 위치가 다름)

              들에서 크게 섬멸하셨다 한다.

              고려말, 임금의 이름에도 忠자를 사용하여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에 충성을 맹세할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원나라가 점점 쇠퇴하여가고, 공민왕은 원의 멸망을 감지하면서 원이

              요청한 홍건적의 난을 평정할 인물로 최영(1316~1388)을 보내어 원의 속셈을 무마시키고,

              북쪽의 실지회복에도 힘을 쏟았다.

              최영과 고려가 맞서 싸워야 했던 적은 원나라만이 아니었다. 북에서는 홍건적이, 남에서는

              왜구들의 침략이 대단하였다.

              김성우장군은 최영장군의 영향하에 왜구들을 섬멸하는데 큰 영향을 받았을것이고,

              신흥 젊은장군 이성계(1335~1408)의 위화도회군으로 인한 고려왕국의 멸망을 한탄하였을

              것이며, 그 세력들에 동조를 하지 않다보니 그들에 의하여 숙청대상이었을 것이다.

              서기1392년은 조선의 개국원년이며, 김성우장군의 몰(歿)년이다.

              김성우장군은 이성계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이성계를 치려했으나 세의 불리로 이성계가 보낸

              군사들을 죽이고 성주산(군드리 모랭이?)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탓하며 애마를 죽이고 자신도

              그곳에서 자결하였다고 한다.

              김성우장군의 4세손중에 우의정이 나셨고, 4세손 여식이 한산이씨에게 시집을 가서 토정 이

              지함(1517~1578) 선생을 나셨다.

 

      두리;왜적이 들끓었던 지리적 배경

             그 당시의 지리적 배경을 지금의 상황에서 시간을 초월하여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려말이면 지금의 간척지는 갯벌로 읍내까지 바닷물이 오갔을것이고 청천저수지는 너른 벌판

             으로 곡창지대였을 것이다.

             충남의 서해안은 안면도로 둘러쌓여 천수만의 바다가 고요하여 왜구들이 침범하기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진이나 예산등은 낮은 구릉으로 논농사를 지을 충분한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어려워 황무지에 가까웠기에 보령지역보다 안보상 위해는 덜하였을것이다.

             하지만, 보령땅은 대천천이 내륙으로 깊숙히 들어올수있는 길목이 되었을것이고, 오서산과

             성주산의 깊은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지금의 청천저수지부근과 대천천주변의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줘 왜적들에게는 노략질의 중요한 위치에 있게 하였을것이다.

 

     서이;왜적들을 섬멸한 장군의 계략

             장군은 이 지역의 지형적인 특성을 잘 이용하여 일찍이 향천리부근을 요새화 하였다.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창고를 세워 군량미를 비축하고, 복병을 두고 왜적이 몰려올것

             을 예견하고 미리 모든준비를 하였다.

             서천과 웅천 앞바다로 올라온 왜적들이 북으로 좀더 많은 노획물들을 차지하려 백성들을

             죽이고,마을을 황폐화시키면서 보령땅으로 밀려들었다.

             물론, 전라도땅에서 혁혁한 왜구섬멸의 공이 큰 김성우장군을 치려는 왜적들의 야욕도

             크게 한몫 한것이다.

             대천 앞바다에서 대천천을 타고 올라오는 왜구들과 웅천쪽으로 들어온 왜구들이 합세하여

             큰 세력으로 보령땅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김성우장군은 지금의 청천저수지 댐이 있는 협곡을 통과하게 적들을 유인하여 넓은 평정리

             갬밭으로 몰려오는 적들을 복병이에 숨겨두었던 군사들로 가두고 사방에서 몰아쳐 치니

             갬밭뜰을 새카맣게 왜적들의 시체로 쌓이게 하였다.

             육백여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청고을의 전설로 남아있을 정도의 혁혁한 승리로 남아있다.

 

     너이; 김성우장군이 남긴 지명

             @시루성이; 시루생이라 불리기도 하며 장군이 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돌성이 시루처럼 생겼다해서 이름 붙여지고, 지금은 토성이 조금 남아있다고 한다.

             @ 불무골;   장군이 대장간을 만들어 각종 무기를 생산하였던 골짜기이다.

             @  창터;     창대라고 하며, 장군이 군량미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다.

             @복병이;    복벵이라 불리기도 하며 장군이 왜적을 섬멸할 복병을 숨겨둔곳으로 장골쪽 입구

                              지금의 저수지에 수몰된 지역이다.

             @갬밭뜰;   지금은 거의 수몰된 평정마을 아래로 장군에 의해 왜적들이 몰사당해 개미가 새카맣게

                             몰려들었다해서 개미밭뜰이라 불리워졌다한다.

     다섯; 맺음말

              이처럼 역사속의 위대한 한 인물이 전설속에 뭍이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다 사라져감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언젠가 한번은 자료를 찿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김성우장군에 대한 조각 조각들의 이야기를 카페나 블로그에 엮어 놓은것을 반갑게 보았다.

              누군가가 김성우장군의 일대기를 논픽션으로 나래를 편다면 훌륭한 역사소설이 될것같다.

              올봄에 동무들과 오서산 등반을 할때 동무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다.

              "청고을 문화유적 답사를 걸어서 하고 싶다. 저 소릿골 김성우장군 묘 참배와 매월당 김시습의

               다릿티재, 그리고 향천리 김성우장군의 흔적들... 토정 이지함선생의 사당들을 돌아보고싶다."

              그 꿈이 내년봄엔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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