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렸을적에...

新 청고을 이야기(1)...

푸른나귀 2008. 9. 15. 20:38

 

첫째글; 고갯길 이야기...

 

           청고을 남동쪽에 위치한 성주산 장군봉(680M)에서 서쪽으로 구비구비 용트림을 하면서

           산맥은 10여KM를 달려 성주터널위에서 옥마봉 줄기와 마주친다.

           또한 동북쪽으로 한줄기 산맥을 형성하여 가라앉듯 치솟아 백월산(575M)을 이루고 고개

           를 숙이어 스므티 고개를 만들어주고선 오서산(790M)를 향해 달린다.

           오서산과 성주산으로 둘러쌓인 하나의 분지로 발달된 청고을은 예전부터 이웃동네를

           연결하는 고갯길이 발달되어 있었다.

           지금에야 자동차로 금새 넘어 다닐수 있어 그 고갯마루의 이름도 잊혀져 가지만 분명

           우리들의 어린시절에도 살아 숨쉬던 고갯길을 한번 회상해보고, 혹여 내가 알고있던

           것들이 착각에 의한 잘못 인식된것이 아닌지, 혹시 내가 모르는 고갯길을 넘나들었던

           지역동무들의 고갯길 이야기도 덧붙여 준다면 좀더 청고을을 알게되는 계기가 될듯하다.

           이야기의 전개는 스므티고개에서 성주산 줄기를 따라 굿고개로 해서 북쪽 오서산의 아랫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는 형식으로 전개 하려하나 느르실고개 너머 동네 옥계쪽은 지식의

           한계에 이르기에 지금은 남겨두기로 한다.

 

  하나; 스므티 고개

          소릿골이란 지명이 소나무가 빽빽하고 울창한 골짜기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듯이 스므티

          고개에는 얼마전까지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했었다.

          화성을 거쳐 청양으로 넘어가는 이고개는 예전엔 얼마나 숲이 우거져 있었는지 한낮에도

          산도적들이 우글거려 고개밑 주막에서 장정 스므명정도의 길손들이 모여야 함께 이 고개를

          넘을수 있다해서 스므티 고개라 한다.

 

 두울; 다리티(월티) 고개

         다리티라는 지명은 달이뜨는 고개라는 뜻으로 청고을에서 가장 먼저 달빛에 젖는 동네이다.

         이고개는 상중저수지위로 청양군 사양면으로 가는 길목으로 고갯길을 바로 넘으면 옛날

         인간의 한계를 넘어 광산에 매몰되었다가 생환된 양창선의 비봉광산이 있는곳이다.

         기록에는 이 고개가 매월당 김시습이 한을 품고 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하는데, 이치적으로

         는 늦은목 고개가 아닐성 싶다.  매월당이 생의 끄트머리 부분을 무량사에서 보냈기에

         외산면으로 통하는 늦은목고개가 무량사로 통하기에 유력해 보인다.

 

 세엣; 늦은목 고개

         상중저수지위로 한참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지금 양송이 재배하우스 위쪽에서

         월티재와 나뉘는 갈랫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찿기 힘들다.

         부여군 외산면으로 통하는 고갯길로 고개가 길고 목이 느리게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몇해전 외산면 지선리가 고향인 갑장(같은나이)을 만났었는데 그친구 대천고등학교 다닐

         적에 그 고갯길을 넘어서 상중에서 버스를 타고 대천으로 통학을 하였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하여도 살아 숨쉬던 고갯길이었는데 두해전 그길을 찿다가 포기하면

         서 무척 아쉬움에 어쩌질 못하였다.

 

 네엣; 먹벵(먹방)이 고개

         갬발 저수지 위에서 성주산의 낮은곳을 넘어 성주 먹벵이로 가는길이다.

         먹벵이 바로 아레에까지 광산이 있어 트럭들이 그곳까지 오르내리기도 하였었는데

         몇해전 동무들과 성주산 종주를 하면서 보니 흔적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고갯마루에 광부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에 방부제가 발린 말목(지주목) 두어개가 밖혀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 손잡고 성주사지 공양갈적에, 봄 산나물 채취하러 쫒아갈적에, 나뭇등걸 하러갈적에,

         또한 우리동무들 성주탄광에서 간드레불 밣히며 넘던 고개이다.

 

 다섯; 백제고개

         향천리동네에서 성주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성주산 종주하다보면 바윗돌이 세월에 이끼를 머금고 넘나들던 고갯길의 흔적이 조금은

         느껴진다.

         청고을에서 성주사지를 가는데에는 가장 완만하기에 소풍길에도 이길을 택하였는가 보다.

         나는 이고갤 넘어보진 못하였지만 많은 동무들이 이고개를 넘어 소풍갔다온 이야길 하였다.

         백제시대부터 첩첩산중 명당자리에 큰 가람이 성주에 있었으니 우리 어머니들이 불공드리러

         넘나들었을 터이니 그 고개도  백제시대부터 있었을 것이다.

 

 여섯; 굿고개

         청천 저수지로 길이 막히고 휘둘러 돌아가는 굿고개가 청고을 가는 주통로가 된지 오래다.

         양조장 건물이 그대로인데 막걸리를 맛본지는 오래이다.

         비포장 신작로길 따라 대천장에 엄니 치맛자락 붙잡고 우마차뒤를 따라걷던 그모습이

         지금도 자동차를 몰고 넘으면서도 기억에 남는 고개이다.

         고인돌이 남아있으니 선사시대부터 이곳이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동네임을 알수있다.

         대체로 고갯마루엔 성황당이 있어 서민의 애환을 빌던 당나무가 있었을것이고, 아마

         그곳에 굿판이 벌어지던 곳이기에 이름붙여진것 같다.

 

 일곱; 휘유 고개

         오래전 조선시대 한 장수가 바위를 메고가다 그 고개에서 휘유하고 한번 쉬었다갔다해서

         붙여진 고개이름으로 당안동네 서쪽으로 원자울이란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서 넘는 고개

         란다. 나는 수랑뜰에서 개울따라 좀 내려가다 징검다리를 건너 휘유개마을 지나 장골로

         넘어가는 고갯길인가 하고 생각 하는데 확실하지 않다.

         그 장수가 메고가다 놓고간것이 새터건너편 굉돌(괴임돌)로 알고 있으나 그것도 정확하지

         않기에 첨언이 필요하다.

         동네 지명이 백토가 나온다 해서 백현리라 하고 휘유고개를 백토고개라 부르기도 한다.

 

 여덟; 은 고개

         당안에서 복골목쟁이를 지나 길고 넓은 골짜기를 만나는데 이곳이 음현리이다.

         음고개,음현이라고 부르고 아트막한산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고개가 많으므로 딱히 어느

         한곳을 칭하지는 않는것 같다.

 

 아홉; 맺음말

         동네마다 작은고갯길,높은 고갯길 힘들어 하면서도 평지로 빙둘러 돌아가는 것보다

         고갯길로 가면 빨리 목적지에 갈수있기 때문에 고갯길이 존속되었고, 예전엔 문화와

         문물의 주요 통로가 되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수천년의 세월을 뒤안길로 하고 사라지는 추억속의 길이다.

         불과 얼마전 우리세대들이 이어가다가 끊어버린 인간사이기도 하다...

         그 추억들을 생각하며 청고을 이야기 몇편을 내 나름대로 엮어볼 요량이니 혹시 내가

         잘못알고 있는것에는 한마디 조언을 감사하게 생각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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