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렸을적에...

新 청고을 이야기(2)...

푸른나귀 2008. 9. 19. 10:55

 

두번째글; 바위 이야기...

 

              예로부터 청고을은 三多鄕이라고 불렀다는데, 이는 양반(班多), 돌(石多), 상소문 많은 것(言多)

              때문에 三多鄕이라고 불리워졌다고 전해진다.

              양반은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고, 돌이 많은 것은 유명한 오석이  이곳 인근에서 나오고 있음을

              뜻하고, 또한 말이 많은것은 지조가 굳은 선비들이 바른말과 상소 많이했기 때문이란다.

              이중에 특히 돌이 많은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자면 성주산 최고봉인 장군봉의 바윗덩어리가

              굴러내려 밭고랑에나 논두렁 그리고, 동네 어귀에 산재되어 어릴적 고을마다 전설에 서려있는

              한두개의 바위를 놀이터 삼아 오르내리곤 하였다.

              성주산의 바위는 태고적 퇴적암이 바다에서 융기되어 마치 콘크리덩어리처럼 점토속에 강자

              갈이 박혀 있는듯한 형상을 하고있다.

              물론 땅속엔 고생대 아열대성 식물들이 퇴적된후 지각작용으로 융기되어 석탄으로 되돌아 오니

              한때는 산업화의 밑거름이 되어 주기도 한 자연의 커다란 선물이었다.

              이에 유년시절 고을마다 서려있던 바위 이야기를 추려본다...

 

       하나; 仙 바위(산바위,산바우,산발바위)

               원무루에서 남동쪽으로 성주산을 바라다 보면 밤나무단지 위로 중계탑이 보이는데, 그밑에

               선(산)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청고을에선 가장 전설을 많이 품고있는 바위로써 예전엔 민둥산이라서 뚜렸하게 그 모습을

               바라다 볼수있었으며, 청초학교 정문을 들고나는 어린 아이들의 큰바위 얼굴이 되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은 나무들이 우거져 면소재지에서도 잘 볼수 없으며, 갬발저수지에서 성주산 오르는 등산

               로길에서도 잘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옛날 그곳에 암자를 짖고 지내던 산녀가 이 나라 왕비의 병이 중하게 되어 유명한 의사와 갖은

               약재를 써도 병의 차도가 없다는 소식을 듣자  선바위에서 흘러내리는 약수를 바치어 낫게

               되었다는 전설을 품고있는 바위로써 지금도 지그시 청고을을 바라보고 있다.

               몇해전, 성주산 등정길에 낙엽속에 뭍혀있는 산바위앞 좁은 터를 훓터 보았었는데, 어릴적

               암자가 있던 터는 흔적을 찿을수도 없었으며, 이끼낀 바위틈새로 흘러내리던 약숫물도 보이지

               않으매 그 앞으로 펼쳐진 청고을의 모습만 바위에 기대어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였다.

 

       두리; 말(馬)바위

               청고을에서 화성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아래 왼쪽편 큰 소나무밑으로 둥글넓적한 바위가 있다.

               소릿골이 예전부터 큰 인물이 날곳으로 전해지는데 이곳에 살았던 광산김씨중 한 장수가 한양에

               과거시험을 가려던중 집앞에서 만난 아랫지역 과거볼 사람들과 활쏘기 시합을 하였다고 한다.

               활쏘기 시합은 하늘에 대고 활을 쏘아 내려오는 화살을 말의 입으로 받게 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말들이 화살을 받아 물었것만, 이동네 출신의 김씨장수는 실패 하였다.

               화가난 장수는 그말을 단칼에 목을베고 바위를 들어올려 그 밑에 말을 뭍어주었다 한다. 

 

        서이;달걀바위

               특히 청고을에는 김성우 장군에 의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저 오고, 그의 흔적에 의한 지명의 유래가

               많은것은 전무후무할것이다.

               고려말 한반도의 혼란한 정세를 틈타 창궐하였던 왜적들의 소행과, 원나라의멸망과 고려의쇄약함,

               그리고 이성계의 역성혁명인 위화도 회군등으로 혼란함에 최영장군같은 불사이군의 정신을 가진

               김장군에게는 새로탄생되는 조선에게는 불필요한 존재였느지 모른다.

               그 울분을 표출하느라 장군봉에서 큰돌을 집어 던졌다는데 그것이 자작골에 있는 둥근바위이다.

               아직도 바위엔 손자국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얼마전 경지정리로 뭍혀 있다가 다시 동네 수호신

               으로 세상의 햇빛을 보게 되었다하니 다행으로 생각한다.

 

        너이;벼락 바위

               원무루에서 갬발 샌동으로 가는 길목에 상중저수지에서 흐르는 개울물이 산모퉁이를 감아 돌면서

               넓적한 바위에 부딪혀 제법 깊은 웅덩이를 만들고 흐른다.

               전설에 의하면 왜놈들이 이 동네를 노략질 하다가 개울가에 모여 미역감는 모습을 보고 동네사람

               들이 도와달라고 기도를 하자 하늘에서 천둥이치고 벼락이 치면서 산에있던 바위가 굴러 왜놈들을

               몰살 시켰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마 선바위의 한귀퉁이가 벼락을 맞아 굴러 떨어졌음직한 위치에 있는 바위로

               우리 어릴적 그 바위에서  발가벗고 웅덩이로 자맥질 하며 바위밑 굴속에 살던 이무기가 나올까봐

               겁을 내던것도 그곳에서 죽은 왜놈들의 혼이 떠 돌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두해전 여름장마때 신작로길을 지나다가 그곳이 산사태가 난것을 바라보기만 하였었는데, 그 벼락

               바위가 어찌되었는지 궁금하다.

               벼락바위는 이야기 하는사람마다 지정해주는 위치가 다르기도 한것은 구전에 의해 잊혀져 가면서

               우리들 생활속에 멀어져 가기 때문일것이다. 

 

       다섯; 집진 바위

               은선동 저수지위로 늦은목 고개를 들어서면 산모퉁이를 돌면 거무스름한 바위가 꼭 숲속의 초가집

               처럼 보이게 된다. 

               예전에 그고갯길을 지나던 이들이 산모퉁이를 끼고 돌면서 소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바위가 몇해를

               지붕을 해일지  않아서 시커먼해진 초가집지붕처럼  보이면 안도의숨을 쉬면서 고갯길을 넘었을것

               이다.

               그 바위를 집진 바위라고 한다.

 

       여섯; 굉(굄,공깃돌)바위

               수랑뜰을 거쳐 휘개동네를 휘감고 지나는 개울물은 청천 저수지로 흘러든다.

               북쪽의 얕은산에 기대어 새터땅을 품고 흐르는 형상을 이루는데 그곳에 이 바위가 있다.

               내가 어려서 듣기로는 성주산 너머에 엄청 힘이 좋은  공주가 공기놀이를 하다가 뒤집어 잡던중

               놓쳐서 이곳에 떨어졌다고 들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달걀바위의 전설처럼 장군봉에서

               한 장수가 이곳으로 던졌다고 하는 전설 또한 가지고 있었다.

               둥그스름하고 집채만한 돌이 산모퉁이 개울물 위로 작은돌에 괴어져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으니

               굄돌 또는 굉돌, 공깃돌이란 이름들만으로는 세월에 비해 작은 전설이 아닐까???

 

       일곱; 맺음말

               동네마다 논두렁 옆에, 받고랑 사이에 수많은 바위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야기와 전설이

               없고 이름이 없는 바위가 있을까???

               하지만 빈곤한 내 작은 지식으로 청고을 바위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았다.

               세상이 좋아 책상앞에서 인터넷을 두드려보면 발품 팔지 않아도 이야깃거리를 만들수있다.

               언젠가 다시금 좀더 자료를 수집하고 답사를 해보고 나서 잊혀버렸던 전설속의 바위들을

               찿아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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